(구) 자유게시판
작성자 정근영
작성일 2007-01-05 (금) 09:22
ㆍ조회: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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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 가슴에 와 닿아 올려봅니다.
 
내용 보훈 관련 정부정책 입안자 및 교원 승진 규정 입법 예고 관련 국회위원 여러분들께 !

꾸벅 ! (새해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시지요 ?
항상 애쓰시고 수고하시는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최근에 입법 예고된 교원 승진 규정을 확정짓기 전에 지금부터 제가 써 올리는 글을 읽고 나서 제 넋두리라고 치부하셔도 좋으니, 꼭 한 번 읽어 보고 참고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984년도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직에 발을 들여 놓은 지 7개월 후 국방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육군 보병으로 입대하였다가 전투 훈련 중 상이를 입고 전역한 40대 후반 평교사입니다.
그 당시 교사 초봉이 각종 수당을 합해 30만원 정도였었는데 입대한 후에 제가 군에서 받은 현금은 이등병 월급 3,000원 정도(소대비 50% 갹출 후 손에 받은 돈은 기껏 1,500원)였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기분이 참으로 묘했습니다. 엄연히 교직에 제 실력으로 들어간 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려 목숨까지 저당을 잡히고 받은 갖은 전투 훈련의 댓가치고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시 동기 여교사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정과 비리로 군역을 면한 현직 교사들(현직 교사 중 의외로 상당수가 군역 면제 처리 받은 사실은 학교 현장에서 뒤늦게 알았음)은 후방에서 편안하게 평상의 안락을 모두 누리며 얼마(약 100배)를 받을 텐데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그런데 저같이 국민의 4대 의무를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이 겨레의 떳떳한 스승이 되고자 교사 임용 후 입대한 현역군인들은 혹독한 각종 전투 훈련에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적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살벌한 병영 생활(당시 복무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알 것임 !)에 녹초가 된 후 받는 돈이라니 저들의 100분의 1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물론 숙식비, 피복비 등은 계상에서 제외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 잘은 모르겠지만 약 월 5-6만원 정도나 되겠지요 ).
그 당시 사회에서는 이런 말조차 나돌고 있었지요. 병역 면제- 신의 아들, 방위 - 장군의 아들, 현역군인 - 어둠의 자식들 ! 왜 우리 같은 국가에 충성을 다한 대한의 남아들이 그러한 자조어린 넋두리를 외쳐야 했을까요 ?
사실이지 그 당시 전후의 군생활의 실상은 일일이 거론하면 잔소리가 되겠기에 낱낱이 기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 만큼은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습니다.
가혹한 구타와 살벌한 병영 분위기 그리고 혹독한 전투훈련 등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 아닌 추억이지요.
당시 1년에 각종 전상 및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청년 군인들의 수가 약 1개 대대 병력 정도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 대학 동기와 후배 중에도 군에서 사망한 이가 있고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 막내 아우분과 저희 외숙모의 동생도 군에서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렇게 심심치 않게 있으니 그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지금같이 민주화된 시점에서도 연 200여명 가까이가 해마다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한 나라의 구국간성을 육성하기 위해 각종 전투 훈련과 군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러한 것은 어느 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이정도인데 심각한 장애를 입고 온전한 몸을 잃은 이들 또한 제법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보훈 대상자인 국가 유공자들이지요.
엄격한 기준에 치밀한 심사 후 공헌도 및 상이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지지요.
과연 이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되어지고 있으며 또 어떤 심정과 생각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을까요 ?
저 개인은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984년 10월 4일에 입대한지 15개월 만에 대간첩 전투 작전 훈련 중에 심각한 상이를 입고 전역한 국민의 한 사람이랍니다.
전역 후 교직 사회에 복직을 하였지만 수 개월 동안(복부에서 수술 후 5개월이 지났는데도 그 때까지) 상이처에서 피고름이 새어 나왔지요. 경력이 미천한 군의관들의 실력 덕분(?)으로 가끔은 미처 빼내지 못한 실밥까지 나오고는 하는 수술 상처가 아물지 않아 학교에서 퇴근한 후에는 하숙집 골방에서 혼자서 자가 시술 처리를 하면서 26세의 청춘을 울면서 보내야 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의 가을 축제에서 사제동행 달리기가 있었는데 몇 안 되는 총각 교사 중의 한 명이라 빠질 수가 없어 이어달리기에 전력 질주한 후 상이 후유증으로 심장 박동이 1분에 180회 이상 지속되는 부정맥이 와서 제 왼쪽 가슴을 부여죄고 아무도 없는 차갑고 서늘한 도서실에서 의자를 이어 놓고 혼자서 안정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동안 가라앉지를 않아 학급의 종례도 못하고 얼굴은 백지장같이 하얀 상태에서 마침 찾아온 도서실 청소 당번 학생한테 학급 종례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군 입대 전에는 이런 일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 육상선수로 운동회만 있으면 단거리, 청백 계주, 단축 마라톤에 전담 대표였습니다.
썰렁한 도서실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불규칙적으로 고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제 자신을 생각해 보니 참 처량하더군요.(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이 병은 간간히 저를 큰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게 하여 승진 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아예 지우고 살았지요 - 그러다가 2005년 3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거의 완치되었으나 재발 가능성은 상존함). 크나 큰 상이처의 흉터 때문에 제대 후 결혼 상대자와 만난다는 것조차 생각도 못하고 나 같은 이는 그냥 조용히 한 몇 년 혼자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참으로 어이가 없었던 것은 결국 우리 부모님과 저의 무지 탓이었지만 전 1986년 1월에 제대한 후 2000년도까지 국가 보훈제도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도 못 했답니다.
약 15년여의 무지한 세월을 보내면서 그 어떤 혜택을 받기위한 노력과 시도조차 전혀 못하고 한탄과 시름의 우울한 세월만 지냈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서 브로커가 개입된 보훈 심사의 부정 사건을 다룰 때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라서 제가 알아 본 결과 보훈제도상 제가 해당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2000년도에 절차를 갖추어 신청을 하여 심사에 통과된 지가 이제 6년여가 되었답니다.
하기는 제 보훈 대상자 여부 심사를 받을 당시 제 옆에서는 6.25 동란이나 월남전 전상 군인들도 그때서야 신청 심사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기도 하였답니다.
법제도 상 ‘ 신청을 한 이후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라는 국법의 존엄성 앞에서 감히 두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 악법도 법이다.( 쏘크라테스 )
구차한 제 신변사를 일일이 열거한다면 저는 한 편의 소설을 쓰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구구절절한 저의 소소한 신변사는 각설하고 보훈 제도 담당자 및 교원 승진 관련 위원님들께 그동안 제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던 제안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우리 보훈 대상자들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약간의 보상금과 혜택 몇 가지로 위안을 삼으며 살고 있는데 이는 민족정기 회복과 애국 혼 고양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못 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피력하고자 합니다.
만약 사람의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할 때 음식과 의복 따위의 물질만 제공한다면 이것은 강아지를 키우며 그것들에게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 아닐까요 ?
마찬가지로 국가 보훈 대상자들에게 보상금과 명절날 선물로 주는 농수산물 상품권이나 현충일 날에 주는 롤 케이크나 한과 또는 떡이나 주거나 교통 수단 이용 혜택 정도만 주면서 국가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애국심과 명예 그리고 평생 안고 살아가는 상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아닌 것입니다.
현직에 나와 철없는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나 관리자들이 보훈 상이자라고 생각하면서 대우해 준 적이 과연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화만 치밀어오를 따름이었읍니다. 어느 버릇 없는 학생은 저를 놀리지 않나 어느 예의 없는 젊은 동료 교사는 상이로 인한 신체적인 변화된 모습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지를 않나 화가 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이 스스로를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애자(요즈음 아이들은 장애자를 ‘애자’라고 함) 선생이라 자칭하면서 제 자신의 이력을 드러내 놓는 처세술로 교직 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큰 수술을 하면 옛날 말엔 20여년 살면 죽는다는 말이 있어 저는 이제 사실 하루하루를 감사해하고 소중히 생각하면서 정말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열과 성을 다하며 삶을 후회 없이 살고자 하는 생각이 온통 가득 차 있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불만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
잘은 모르겠지만 군에서는 전투 훈련 중에 공을 세우거나 공상 처리되면 군 승급 규정에 따라 가점이나 정상을 참작하여 일 계급 특진을 시켜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논란이 많은 10% 가산점 보훈 특례로 교직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다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이후에 국가 유공자가 되어 건강하지 못 한 몸으로 승진 준비 대열에도 낙오되어 늦게나마 힘든 승진 점수 챙기기의 여정을 걷고 있는 평교사인데 때로는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못해 속상함에 우울하고 분노하는 날이 매우 많답니다.
가정의 고마운 아내 - 저와 결혼해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어서 밝히는 바입니다 - 사랑스런 아들, 딸의 자랑스러운 국가 유공자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각박해 져 가기만 하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이 나라의 현직 교직사회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승진 전쟁터에서 상처를 쓸어안고 속으로 우는 나약한 존재로 내동댕이쳐져 있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요즈음 우리의 교직 사회는 페스탈로찌같은 교사라고 하면 교육 행정 처리가 무능력한 사람이라서 아이들하고만 어울리는 교사라고 하면서 승진하지 못하면 젊은 교사들한테 조소의 대상이 되는 형편없는 낙오자로 낙인이 찍히고 학부형들한테도 환영 받지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와 같은 구차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보훈 제도 입안 및 교원 승진 규정 관련 국회위원 여러 어르신들이시여 !
두서없이 적은 글이라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전 교사 중에서 극히 일부인 국가 유공자 교사 몇 명 정도가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부정과 비리로 군대를 면제 받은 자 또는 건강에 아무런 지장없이 승진 전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이들보다 - 제가 8개교를 전근 다니는 동안 천여 명의 교사들과 친분을 나누었는데 저와 같은 국가 유공자 교사는 저 밖에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통계는 없지만 비율을 따질 것도 없이 아마 전국에서 50만 교사 중에서 기껏 수 십 여명 정도나 되겠지요. 어디서 한 번 통계를 좀 내봤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 다소간의 승진 혜택을 받아 승진하게 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란 말입니까 ?
그리고, 몸이 불편한 국가 유공자 공무원들이나 교사들은 승진 불가란 그늘진 인생의 슬픈 뒤안길에서 낙오된 자로 내동댕이쳐진 채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요 ?
이 나라의 총화단결과 국운흥왕 그리고 민족정기 확립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는 일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 백번 타당한 일이 아닐까요 ?
아울러 자라나는 2세들의 애국애족이란 민족과 국가의식 앙양에도 필수적인 사안이라고 사료됩니다.
지극히 일부인 국가 유공자 교사(또는 공무원들-요즈음 일반 장애우들도 일정 비율로 채용하라는 국가 인권위의 권장이 법제화된 것으로 알고 있음)이 열악한 처지와 신체적인 제약 아래에서 승진을 위해 힘겹게 분투할 때 약간의 정상을 참작하여 승진상의 혜택을 받게 된다면 나라의 은혜를 명심하고서 멸사봉공의 근무 자세를 굳게 지키며 일반인보다 모범적으로 공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
아울러,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으며 자라나는 2세들이 국방의 의무를 그냥 마지 못 해 치러야 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잘못 인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 까요 ?
그리고 최소한 국가 유공자들은 대부분 상이로 인한 어떤 신체적 결함과 건강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공공 기관의 기관장이 될 때 일반인들이 무시하거나 뒤에서 빈정대는 것을 근절시키는 방책이면서 그들의 희생에 가장 큰 위로 대책이 될 것이란 점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입니다.
보훈 관련 실무자 및 교원 승진 규정 담당 국회위원 여러분 !
냉철하게 지난 역사의 잘못을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재력이나 권력이 있으면 국방이나 공공의 의무란 것은 얼마든지 피해 나갈 수 있는 것이었고 무지하고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이나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슬픈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
구국간성의 신성한 임무를 쓰레기처럼 평가 절하하여 ‘ 군대 가서 썩는다 ’든지 ‘ 어둠의 자식들 ’이라 던지 자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 시대의 풍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남북화해의 분위기에서 또한 국방의 의무를 소홀히 하려는 시대정신이 바야흐로 싹트고 있는 이 위기의 시점에 또다시 국방의 의무를 폄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남북 평화 공존의 시기라 할지라도 어느 나라든지 국방은 그 어떤 외부 세력의 침범과 국가 안위를 위해서도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자위대가 있고 삼국 통일의 주역이었던 신라의 화랑들의 뜨거운 구국애로 계백과 맞서 싸워 산화한 화랑 관창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
즉금의 남-북간 평화공존은 상호 무장해제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저들 북한의 적이 현재 화해 분위기에서는 일본이라던지 미국일 것 같지만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서해 교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중에 완전한 통일 국가가 되어서조차도 우리의 멸사봉공의 사즉필생(死則必生)의 국가관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우 필수적으로 중요한 가치 덕목인 것입니다.
보훈 관계자 및 교사 승진 규정 관련 법의 제반 사항을 관장하시는 국회의원 여러분 !
부디 냉철하게 민족의 자존과 민족정기 회복이란 입장에서 생각하셔서 제가 개인의 승진만을 위해 구걸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악법도 지켜야 하는 법으로서의 당위성을 지니며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마땅히 있어야 할 법이 없는 무법(無法)이야말로 크나큰 무지한 정책의 실책으로 국민들의 국가란 공동체의 기강을 해이하게 하여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한 나라의 보훈 정책은 그 나라의 운명과 정체감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
제대로 된 보훈 정책이 확립되지 않고 부실하게 운영되어 보훈 대상자들이 삶의 뒤안길에서 낙오된 채 살아 갈 수밖에 없다면 국가와 민족이 누란지위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 누가 국가안위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겠습니까 ?
보훈 가족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이나 취업 가산점을 주는 것은 예산의 한계라든지 형평성의 논리에 배치되는 비민주 악법이라 하면서 -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로 이미 국가 해체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임 - 근래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서 보훈 가족 공무원 임용시 가산점도 크게 약화된 이 시점에 크게 기대감만 가지고서 잘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염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보훈 대상자인 국가 유공자들의 명예심을 회복시킴으로써 참다운 민족정기 회복과 바른 국가관 확립 그리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앙양시켜 이 나라 대한민국호의 구심점이 있는 일체감과 총화단결을 위해 제대로 된 보훈 관련 입법과 공무원 승진 규정에 최소한의 우대 조항 신설을 추진해달라는 건의를 전체 보훈가족을 대표하여 본 제안을 주저함 없이 국가 보훈처, 교육부, 국회, 청화대 등의 유관 기관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바입니다.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大韓民國 萬歲 ! 萬歲 ! 萬萬歲 !
우리 祖國이 永遠하기를 神 앞에 嚴肅히 祈願드리오면서 이만 줄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大韓民國의 어느 國家 有功者 無名 敎師가
대한민국 만세를 목 놓아 외치면서 삼가 올립니다. jky.

121.132.145.219 홍 진흠: 혼자따로 기차를 타셨으리 믿습니다. 함께 하셨으면 더욱 재미있었을걸 합니다. 함께한 즐거웠던 추억 고이 간직하겠으며 자주 만나뵙길 희망합니다. -[01/07-13:47]-
58.143.100.18 강용천: 정근영전우님, 신춘섭전우님과 함께 오셨으면 더욱 좋아는데 열차표을 미리 끓어서 혼자서 오느냐고 수고가 많았습니다.다음에 의정부에서 번개팅 한번 해봅시다.정전우님. 가사내에 행운과 소망, 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01/08-10:05]-
125.178.20.21 정근영: 쌍 파울러강 전우님 그날 반가웠습니다. 몸도 불편 하심에도 불구하시고 모든성의를 다 보여주시면서,본회 발전에 이바지 하셨습니다. 초청만 하시면 달려가겠습니다.금년한해 소망하시는 일 성취하시고 건강 하십시요.jky -[01/0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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