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자유게시판
작성자 정수기
작성일 2007-04-04 (수)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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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편 (펌글2)용량초과로 인하여 ...
-누가 유신을 함부로 말하는가?--

현재 열우당과 그 추종자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평가할 때 현재의 가치기준밖에 적용할 줄 모른다는 점에서 가히 단세포적인 두뇌를 가진 집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이 아니라면,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가치관으로 평가하여 나약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현 세대들을 세뇌하려는 모리배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가들이 '유신'을 악의 대명사처럼 폄하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신헌법'이란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총칼로 겁박해서 강제로 통과시킨 대악법으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칭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은 '유신독재'란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다.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유해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가령, 60-70년대에 버스안에서 어떤 어르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치자. 그 당시에는 유쾌하진 않았을 지 몰라도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거나 잘못된 걸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젊은이가 '아저씨, 버스에서 담배피우시면 안됩니다'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용기있는 사람이다. 현재의 잣대로는 아무리 나이드신 어른이라도 버스안에서 담배피운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은 시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유신통치는 독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재'란 것은 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통치자가 강제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좋은 예이다. 정치깡패들을 동원해서 국민을 겁박하고, 불리한 지역에서는 투표를 방해하고, 투표함 바꿔치기 같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했기 때문이다.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1972년 11월에 실시되었다. 투표인명부에 등재된 투표인수는 15,676,395인 이었고 이중 91.9%에 해당하는 14,410,714인이 투표에 참여하였으며, 이중 찬성이 91.5%에 해당하는 13,186.559표로서 유신헌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세상에서 국민의 90%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권에 대해 '독재'라고 매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지 않을까? 집권후, 10년간 자유당 잔재를 청산하고 5000년 유산인 가난을 몰아내준 지도자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사리판단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더란 말인가?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주도하에 산업전선에서 피땀흘려 일하며 세계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직업도 없이 민주화운동 한답시고 국가에 저항하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든 사람들을 국민들은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자칭 '민주투사'란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물론 국민소득 1만불 시대인 현재의 상황에서는 유신통치와 같은 형태가 허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재야운동가들 중에 인정받아야할 분도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다만, 진정한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을 받을려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 당시 산업전선에서 묵묵히 일하셨던 분들을 먼저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열우당과 민노당의 자칭 '민주투사'들은, 극소수에 속했던 자신들의 생각은 옳고 대다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틀렸다는 아집과, 피해의식에 따른 보복심리로 과거사 전체를 부정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들인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에겐 박대통령 시절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인 평가도 금기시 되어 있다.

요컨대, 현재의 잣대로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평가하려는 외눈박이들은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세월이 갈수록 그 당시에 사셨던 분들이 자꾸 돌아가셔서, 진실을 말해줄 분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 심히 유감스럽다. '유신'이란 것이 현재 정권을 잡은 모리배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헌정질서를 유린한 악이 아니라, 그 당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에 두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분명한 사실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정치인이 한나라당에서조차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90년대말 경제위기 때 재야운동권의 큰 어른이신 백기완 선생의 말씀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도 박대통령은 나같은 사람은 핍박했어도 나라전체는 잘살게 해줬는데 지금 이놈의 정권은 뭐하는 집단인지 모르겠다.' 불행히도 권력에 눈이 먼 작금의 열우당 시종잡배들에겐 자신들이 가장 존경했던 어른의 말씀조차도 공허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고 있다.

 

 

[펌] 박정희를 다시 생각하며...

 

저는 젊은 20대의 경제학을 전공한 여성입니다. 
태어날때 부터 가난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경제발전"이라는 말은 가슴에 다가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한국은 이 정도로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윗세대 분들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보다 못살았던 세계 최고의 거지국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런 말을 학교에서 배워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쓰여진 정치학 책 몇권과 인터넷에 떠도는 쪼가리들을 읽고서는 세상에 대해서 다 아는 것 마냥 떠들고 다녔습니다. 
20대 초반 특유의 정의감으로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해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짓밟을수록 내가 "멋있고""진보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을 보면 "인권을 탄압하면서 유신독재를 했던 파시스트를 어떻게 옹호하나요?"며 거품 물고 비판하는 반박글을 많이 썼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옹호하는 교수님를 향해서 수구꼴통 교수라며 욕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며, "독재자를 숭배하는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보라. 한국인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을 보여준다"라며 경멸했습니다. 
대학교육이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내가, 박통교에 빠져있는 무식한 늙은이들과 보수꼴통들을 깨우치게 만들고 계도해야 겠다는 책임감까지 느꼈습니다. 
왜냐면 박정희=파시스트 악마였고 박정희야말로 한국을 망친 챙피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알게 되고 "그래도 대단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구나" 정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경제발전은 다른나라도 다 이루는 것이며 오히려 정경유착과 재벌만 키운 나라를 망친 경제발전이었으므로 박정희시대의 경제발전은 IMF의 원인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 것은 시야를 넓혀 외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입니다. 
한국이 당시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살았던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 신생독립국들 중에 한국이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던 거지국가가 앞서있던 아시아 국가들을 제치고 과거 조공국가였던 중국도 너끈히 누르고 경제강국으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같았습니다. 
그때서야 우리 윗세대들은 "보수 꼴통"이 아니라 한국역사상 가장 급격한 발전을 일으킨 "위대한 세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세계적 정치인들이 박정희를 어떻게 보는 가를 알게 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 최고 인기 정치인인 등소평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등소평이 박정희모델을 추종해서 따라하고 포항제철을 부러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캠브리지의 수재이자 싱가폴의 아버지인 리콴유를 알게 되면서 리콴유가 박정희에게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양에서 똑똑한 촌철살인 발언으로 아시아의 입으로 불리는 마하티르는 공개적으로 "나는 박정희를 존경한다. 
박정희처럼 되고 싶다. 말레이시아 비전인 "look east policy"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박정희의 경제정책과 어법까지도 따라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의 무샤라프도 "나는 박정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박정희 대통령처럼 되고 싶다" 라며 흠모하고, 지금도 몽골, 카자흐스탄 대통령등등 외국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박정희를 대단하게 평가하며 따라하려고 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흔들렸습니다. 
내가 "파시스트 악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롤모델"로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후진타오가 이례적으로 박대표를 만난 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졌지만 후진타오는 대학때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 직접 공부까지 한 사람이고, 후진타오 이외에도 중국정치인들은 박정희 대통령 전기를 읽고 따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 하여 중국대학에 수업에 박정희 강좌를 개설한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제가 촌스럽다고 무시했던 "새마을 운동"은 후진국들의 성공적 발전모델로 인식되어 이라크, 몽골, 콩고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도 한국에 새마을 운동 사절단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말합니다. 
"한국만큼 극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은 원래 부자나라였지만 한국은 전쟁을 겪은 이후 잿더미에서도 저렇게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후진국들에게 우리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준다" 
외국의 경제학 책들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제 3세계 국가들에게 하나의 최상의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 불평등 정도도 낮으면서 100년 걸리는 산업화를 20년 이라는 단기간내에 이루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전쟁국가에서 20년만에 제철, 자동차, 조선업을 생산해 내는 중공업 위주로 바뀌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경제사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불릴만 하다 "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한국의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외국에서는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하고있는 것인지를. 
개인적으로 업적은 대단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에 대한 지나친 "숭배"나 "영웅화"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혼자서 도로를 짓고 혼자서 공장을 돌리고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발전이 국민들의 노력만으로 저절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도 무식한 소리입니다. 
경제발전에서는 리더의 역활이 대단히 중요하며, 특히 농업국에서 중공업 위주로 산업이 재편성 된 과정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추진력이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너무나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백낙청, 이대근, 안병직 같은 과거 좌파경제학자들까지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저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님 아버님 고 박정희 대통령께, 철없던 시절 아버님을 미친듯이 욕하며 저주했던 저의 무식함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경제성장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 진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외국에서 평가를 듣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외국배낭여행을 가서도 'south korea'라고 하면 무시받지 않고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추진력, 그리고 윗세대들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안병직교수 ‘마르크시스트→뉴라이트’ 사상전환 첫 고백
 
"집권 운동세력 나라 위기몰아”
 
 
  •  “南北현실 외면 ‘통일지상주의’ 어불성설” : 한국좌파 경제학의…
  •  安교수의 ‘캐치 업 이론’ : 70년대 이후 운동권 사상논쟁의 한축…
 
1970년대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5일 “지금 집권 민주화 세력이 한국 사회를 구렁텅이로 이끌려하기 때문에 뉴라이트 운동에 나서게 됐다. 한국이 위기이기 때문에 무리하게라도 얘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사상 전환 과정과 배경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안 교수는 특히 70년대까지 신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따라 한국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하다가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경제를 살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 교수는 “요즘 한자리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와 운동도 같이 하고 내가 기른 사람들”이라며 여권의 핵심인사들을 실명거론하면서 “이들이 노무현 정부를 건달정부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위해선 한미공조를 통한 국제협력노선이 최선인데 참여정부는 민족자주쪽으로 경사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이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민족자주를 내세우며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것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계산에 말려드는 꼴”이라고 비판한 뒤 통일운동을 펴는 학계의 원로교수들도 실명거론하면서 “북한현실을 외면하고 민족을 사지로 몰고가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학계의 박정희 전대통령 재평가론에 대해선 “과거 그를 타도해야 할 독재자로 봤지만 이젠 한국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로 본다”면서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여 중진자본주의로 나간다는 캐치 업(catch up)이론에 입각해 보면 박정희의 경제개발이론은 탁월하며 박정희식 군부 독재가 아니었다면 경제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혁당 조작이라고? 그게  조작이다
이영민 /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 대변인
국정원의 과거사 「眞實위원회」는 「진실 왜곡위원회」라야 맞다
2005년 12월 7일 이른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과거 1. 2차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국가기관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함부로 범죄자로 단정해 버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이 명확하다고 발표하였다. 국가기관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함부로 범죄자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는 얼마 전에도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하여 코미디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여 전 국민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그때도 그들은 아무 증거도 없이 박 대통령의 개입설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었다. 몇 달 간격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물 쓰듯 하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이제 그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한 번 파고 들어가 보자.
김형욱은 역대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 국정원장 포함)중 최장기간동안 재임한 기록을 세웠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해임당한 후 미국에서 반 체제활동을 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인 만큼 그의 회고록에는 박 전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이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조작됐다는 말은 없고 다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심증은 뚜렷하지만 물증은 없었던 까닭󰡑에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던 7년 동안 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사건이라고 털어 놓고 있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의 발표야말로 조작이며 터무니없는 허위임이 분명>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주범인 金培永(김배영)은 체포된 후 일단 무혐의로 풀려난 틈을 타서 또 다른 공범인 미 체포된 禹東邑(우동읍)과 이북으로 도주하였고 지령을 받고 다시 남하하였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 당시 그는 공작금과 난수표,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북괴로부터 지령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인혁당이 북한과 연결된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조작이라는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의 발표야말로 조작이며 터무니없는 허위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수사한 이 사건에 대하여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기소를 거부하는 등 공소를 엄격히 하였다. 당시 이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였던 이용훈. 여운상(여운형의 친척) 검사가 물러나는 등 진통을 거듭한 끝에 처음에 구속기소 되었던 26명중 13명은 검찰이 공소취하, 공소장변경등으로 석방되었고 기소되었던 13명 중에서도 副責(부책) 도예종에게 징역 3년, 양춘우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것 외에 나머지 11명에게 모두 무죄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이것으로써 당시 빠져나갈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갔고 최소한의 인원만이 처벌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가 이 사건 전체를 조작되었다고 결론내린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작되었다는 것인가. 당시 도예종은 10년 후 다시 인혁당을 재건하려다가  체포당해 기어이 사형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 당시에 이들의 구명운동을 하다가 추방당했던 시노트 신부는 2005년 4월 3일 방영된 MBC TV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자신은 인혁당이 무고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으며 다만 형이 너무 무겁다고 말하였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즉 당시 인혁당 구성원들의 구명운동을 했던 외국인 신부조차도 인혁당의 무죄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확답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인혁당 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2차 인혁당 사건 당시 함께 체포되었던 이철. 유인태 등 민청학련 구성원들은 중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석방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인혁당은 북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조사결과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의 발표대로 이 두 사건이 모두 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굳이 민청학련은 풀어주고 인혁당은 사형을 집행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왜 똑같은 국사범이라면 한 쪽만 봐 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도대체 누구를 조사했고  무엇을 조사했단 말인가?>

「과거사위원회」는 이번 조사가 국정원과 검찰, 국방부 등에 보관된 자료 위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보존 문서 중 핵심 자료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또 사건 피해자를 제외한 면담 조사자는 불과 30명에 그쳤고 특히 각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당시 대공수사과장 이용택씨를 비롯한 전직 중앙정보부 직원 8명은 모두 「과거사위」의 면담 조사에서 사건 조작이나 고문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렇다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도대체 누구를 조사했고 무엇을 조사했단 말인가.
또한 지난 12월 7일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조사의 객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이에 대해 「과거사위원회」 측은 󰡒관련자 증언은 착각이나 정치적 입장 변화에 따라 부정확해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과거사위원회」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왜곡되었다는 별도의 증거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함부로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한다면 그들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조사대상사건들과 차이점이 무엇인가. 
이번에 「과거사위원회」는 관련자 증언이나 자료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건이 박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미 「의문사위원회」 등에서 용공 조작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재심이 청구된 사건을 조사하면서 여러 시민단체가 주장한 방향으로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결론이 도출되는 상투적인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지난 번 김형욱 실종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재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그들의 활동이 진실규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며 오로지 특정인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또 다른 특정인이 바라는 바를 대행해주는 정치적 폭력청부업자로 전락하였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체성 허물기, 김대중 제2건국 운동 노무현 과거사진상규명운동으로 절정에>

작년 12월 27일 법원은 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재심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라는 점을 법원은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동안 1. 2차 인혁당 사건 모두가 조작되었음을 주장해왔던 좌익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작년 1월28일자 코나스(안보신문)의 김철 기자가 쓴 󰡐국정원 과거사, 객관적 진실규명 기대 어렵다. 진상규명 민간위원 10명 전원 민족해방(NL)계열..편향성 지적󰡑제하의 기사를 보면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위원들의 성향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하나같이 좌파를 지향하고 있는 편향적 인물들이며 지금도 국가보안법 철폐, 범민련 한총련 등의 이적단체 합법화 추진, 송두율 무죄처리등 소위 민족공조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들이 과연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에서 시작, 제2 건국→태극기 부정까지>

이것이야 말로 과거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부터 출발한 대한민국 정체성 허물기 작업이 김대중 정권의 제2건국운동(여기서부터 태극기, 애국가 부정운동이 출발하였다)을 거쳐 현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 진상규명운동으로 절정에 올랐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추진을 거쳐 다음 단계인 군축, 평화협상을 마무리하면 저들이 바라는 적화통일의 완결로 되는 것이다.
물론 인혁당이 반국가단체라 하더라도 조직의 특성상 거기에 가담한 일부는 모르고 가입했을 가능성이 있고 수사 도중에 억울한 혐의가 추가된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이 사건 전체가 정권의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국가전복 행위를 뒤덮으려는 역사왜곡이고 또 다른 범죄행위임이 분명한 것이다.
또한  필자가 한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의 이력에 대해서이다. 김만복 기조실장은 과거 부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를 지내다가 60년대 말 당시 중앙정보부가 시국사건담당부서인 제6국을 창설할 때 창설요원으로 특채된 인물이다.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을 직접 조사한 장본인인 것이다.

<과거사진실 왜곡위원회로 명칭 바꾸던지 그만 해체하던지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

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 국정원에서 해임되었다가 세종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세종연구소에 있던 이종석씨가 NSC 사무차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그의 추천으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정보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대학동문인 김승규 국정원장이 취임하게 되자 기조실장으로 임명되어 도청사건과 과거사 진실위 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물이 자기가 과거에 직접 조사한 사건을 180도로 뒤집어서 발표하는데 참여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이 조사한 사건을 자기 손으로 직접 뒤집는 사람은 없다. 이는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고 이런 해바라기성 인물이 발표한 결과가 과연 믿을 만 하다고 볼 수 있을까.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는 이제 국정원 과거사진실왜곡위원회로 명칭을 바꾸던지 아까운 국가재정을 낭비하지 말고 그만 해체하던지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                 

 


[포커스] 진실위의 역겨운 "인혁당 발표"를 보고..
- 박정희 정권의 조작보다 더 기만적인 노무현 정권의 조작..
(시대유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발표에 의하면 1차 인혁당사건은 강령과 규약이 일부 논의됐어도 채택된 적이 없고, 당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2차 인혁당(민청학련)사건 역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며 그들의 목적이 사회주의건설이 아닌 민주투쟁이라고 주장을 했다..

즉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박정희 정권이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세력으로 왜곡하여 탄압을 했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요지다..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인권유린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의 사형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증거 없이 상황논리에 따른 추론으로 확정 지어 발표를 했다.. 나는 이 발표를 보고 웃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기 때문이고,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나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실위의 발표는 나를 웃겼다.. 왜냐면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처리한 것 보다도 더 큰 왜곡과 뻔뻔한 기만이 그들의 발표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면피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먼저 인혁당 사건이 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혁당이란 인민혁명당의 약자다.. 한일협정반대데모와 유신헌법 철회 데모가 가열되었던 1974년 계엄령을 선포 하에서 발생된 두 차례의 용공 사건을 인혁당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1차 사건의 경우 당시 한일회담반대투쟁을 주도했던 서울대의 “불꽃회”와 고려대의 “구국투쟁위원회” 등을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한 공산혁명세력으로 적발한 사건이다..

2차 인혁당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불리 우는데, 유신독재반대투쟁을 주도했던 배후세력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북과 내통하는 공산혁명세력으로 적발 된 사건이다.. 진실위의 발표는 이들이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용공세력이라는 박 정권 시절의 판결이 조작된 것이며, 북한의 방송을 몇 번 청취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공산혁명세력은 아니고 단지 한일협정과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세력이라는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진실위의 판단은 좌파들이 그토록 수구언론으로 매도하는 신동아나 월간중앙에 80년대 게재되었던 수준의 내용일 뿐이다.. 사실 인혁당 사건은 그리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또한 인혁당 사건에 대한 그간의 담론의 조작의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본질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신동아나 월간중앙의 기사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한 기사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인혁당 사태에 대해 가장 깊은 수준의 연구를 했던 것이 80년대 NL(주사파)과 PD(맑스파)로 나누어지는 당시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남한사회의 좌파세력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을 한다.. 60년대 이전 북한의 노동당을 전위정당으로 규정하는 “민주 기지론”에 의거 활동하던 남한의 좌익들은, 60년 이후의 상황변화에 따라 남한 내의 독자적인 지하당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민주기지노선 하에서 지역혁명론”을 제기했다..

즉 “남한 인민들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하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형명적 당을 독자적으로 꾸려야 하며, 이 당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혁당 사건이나 통혁당 사건 같은 박정희 시절의 공안사건을 남한 내에 전위조직을 건설하는 혁명과업의 과정으로 판단을 한다..

또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부산의 암장(마그마)그룹은 1954년 고교학습서클로 태동하였지만, 4.19 당시 또 다른 인혁당 사건의 연루자들인 도예종, 서도원 등을 만나 전위그룹을 형성하며 맑스레닌선집, 스탈린선집, 도이치이데올로기, 반듀링론, 공산당사 등 각종의 이론서와 월북작가, 역사학자들의 책을 섭렵하며 공산혁명운동을 수행하였다. 그 중에는 인혁당을 80년대 학생운동 양대세력 중 맑스파인 PD세력의 원조로, 통혁당은 NL세력의 원조로 보는 자들까지도 있었다..

또한 좌파 역사학자들은 인민혁명당이라는 이름이 베트남의 인민혁명당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들이 이러한 이름을 정한 이유는 베트남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베트남의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생각했던 남베트남 공산세력과 같이, 북한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생각하는 남한 노동당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까지 주장을 한다.. 좌파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자료는 다 인용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즉, 인혁당 사건이 당시 남한 내의 공산혁명세력이 북한 노동당과 형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남한 내의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전위 조직임은 좌파 역사학자들이 커밍아웃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진실위는 뻔뻔하기 그지 없게 이들을 공산혁명세력이 아닌 민주세력으로 둔갑을 시키며 대국민 기만을 하고 있다.. 흘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들을 복권 시키고 국가에서 보상금도 주며, 민주투사로 둔갑을 시킬 모양이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가 절차나 과정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며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형량도 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주의자들이 민주투사로 둔갑을 한다는 것은 또 한번의 기만이며 조작이고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겠는가? 물론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솔직히 까 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

쉬쉬하지만 우리사회에 모두 다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지금 현정권의 주축이 된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력들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지만, 그들이 주체사상이나 맑시즘을 추종하며 남한 내의 공산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아닌가? 부디 아니라고 하지 말기 바란다.. 나 역시 그 조직의 한 부분에 속해 있었고 경험한 사실이니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자료도 원한다면 출처를 다 알려줄 수 있다..

그런 자들이 정권을 잡고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으니,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혁명분자들 역시 민주투사로 둔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이 구린 것이 있으면 차라리 하지를 말던지, 도대체 이 기만적이고 비열한 정권을 어찌 평가해야 할까! 예측은 했지만, 너무도 뻔뻔한 그들의 기만에 치가 떨릴 정도다.. 부디 해도 해도 정도 껏 하기를 바란다..

 시대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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