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자유게시판
작성자 백 마
작성일 2007-05-19 (토) 16:31
ㆍ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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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진짜얼굴 (9)
8) 해외 공작

“국제혁명 역량을 강화하자면 합법적인 외교 활동 못지 않게 해외공작을 잘 해야 합니다. 지금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에는 반미 성향을 가진 나라들도 있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또 친미 정권을 반대하는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에 파고 들어가 무기 자금도 지원해 주면서 해외공작 거점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 담당요원들 과 의 담화)

“쿠바혁명이 승리한 결과 우리의 해외공작 활동 무대가 넓어졌습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쿠바혁명의 영향을 받아 각종 좌익단체들의 주도 하에 민족해방,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운동단체들이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모스크바의 루뭄바 대학을 거처  우리한테 와서 교육 훈련을 받은 지도자들도 많은데, 이제는 이들이 자기나라에 훈련 교관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입니까 ? 각 나라의 실정을 고려하여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 담당요원들 과 의 담화)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승리에로 이끈 국제적인 혁명가이며 라틴아메리카의 영웅입니다.
그는 쿠바 혁명정부의 요직도 마다하고 콜롬비아로 가서 콜롬비아 혁명을 위해 무장혁명군을 조직하고 투쟁하다 희생됐습니다.
그만큼 체 게바라가 영도하던 무장혁명군은 그 어느 나라 무장단체 보다도 혁명성이 강하고 견결한 투쟁조직입니다. 이런 조직 단체들은 혁명 동지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콜롬비아는 지리적 위치도 아주 좋습니다. 이런 곳에다 공작거점을 공고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1969년 11월 상 동)

“반미 민족해방 운동을 벌리고 있는 무장단체와 혁명 조직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도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우리나라 혁명 경험을 배우기 위하여 평양으로 찾아오고 있으며 교육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교육 훈련 시설을 더 늘리고 이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중동지역에도 필요한 곳곳에 훈련 교관들을 파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혁명의 국제적 연대성을 강화하고 지지자, 동정자 대열을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1969년 11월 상 동)

9) 범민연운동

“지금 남조선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민주인사들이 각종 재야단체에 결속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역량을 총 망라하는 전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전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주동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남조선 혁명조직이 먼저 재야단체의 이름으로 발기하도록 하고 거기에 북과 해외운동 단체들이 호응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1990년 5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 실체는 뭐니 뭐니해도 역시 청년학생들입니다.
이번 8·15에는 2차 범민족대회와 함께 북과 남 해외 청년학생들의 통일대축전 행사도 거행된다고 하는 데 청년학생들의 3자 연합조직도 범민련 산하의 범민족 청년학생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범민련과 마찬가지로 범청학련에도 공동사무국을 설치 운영한다면 청년학생들의 통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습니다.”  (1991년 8월 3호청사 부장회의)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역량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을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을 사대 매국적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파 쇼 폭압기구 해체 투쟁과 함께 범민련을 통일 애국단체로 부각시키는 합법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합니다.” (1993년 8월 3호청사 확대회의)
         
“범민련 해외본부도 외형상 위력 있는 방대한 조직인 것처럼 위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각 국에 널려있는 전직 고관들을 많이 포섭하여 각종 명칭의 지역별 교포단체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감투를  하나 씩 씌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널리 선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범민련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또 앞으로 만약에 남북 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 같은 것이 열리게 될 경우에는 그들이 각 단체의 대표 자격을 가지고 참석할 수 있습니다.” (1993년 8월 3호청사 확대회의)

10) 비밀 단속

“내가 지도핵심을 육성하라고 했더니 연락부에서는 호랑이를 키웠습니다. 지도핵심 배신자가 나타난 겁니다.
기자회견 실황을 보니까 이번 거문도 사건은 어떤 우발적인 怜恣?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된 배신행위였습니다.
영웅칭호까지 받은 놈이 그렇게 배신을 했으니 이제 누구를 믿고 공작을 하겠습니까···? 연락부장은 그자를 만난 지 얼마 안됐으니까 몰랐다 치고, 지도원들은 10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 그런 요소도 발견하지 못하고  뭘 하고 있었습니까?
동무들은 그저 공작경험이 많고 훈련을 잘 하는 영웅이라고 해서 무원칙하게 싸고도는 것 같은데 그런 머리를 가지고서는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일체 공작을 중단하시오···! 그리고 전반적인 사상 검토를 하고 공작원 대열을 정리하도록 하지오."   (1976년 9월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일개 공작원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필요 없는 비밀은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며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비밀을 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는 비밀사업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
비밀단속을 그따위로 해 가지고 무슨 혁명을 하겠다는 겁니까?···
각 초대소에 비치된 비밀 자료를 당장 회수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초대소에 드나드는 의사, 운전수, 공급 지도원, 식모들도 모두 비밀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1976년 9월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다시는 그런 배신자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보복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시간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 자가 알고 있는 비밀을 정보부에 다 털어놓은 다음에는 한 인간에 대한 보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연락부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베신자의 말로가 이런 것이라는 보여줘야 합니다."  

( 1976년 11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
11) 결정적 시기

결정적 시기는 남조선혁명의 전 전략적 단계에서 단 한 번 밖에 있을 수 없는 혁명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 북한의 논리이다.
때문에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시기를 적극 조성하고 그 계기를 적시에 포착해야 하며, 일단 계기가 포착된 다음에는 지체 없이 총 공세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김일성의 전략사상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결정적 시기의 조성과 적시 포착, 이용문제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결정적 시기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정세는 오직 혁명가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숙되게 됩니다.
혁명의 객관적 정세가 아무리 성숙되었다 하더라도 혁명가들이 주동적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결정적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종 형태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적들의 강경 탄압을 유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위장하여 자해공작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위군중들이 동료들의 피를 보게되면 더 격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혁명의 전 전략적 단계에서 결정적 시기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습니다.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기 포착을 잘해야 합니다.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었다 해도 그 시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4·19 때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좋은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평양에 앉아서 무전으로 보고나 받아 가지고서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를 제때에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정세를 자체로 분석 평가하고 스스로 전략전술을 작성할 수 있는 노숙한 혁명가들을 파견하여 현지당 지도부를 시급히 꾸려야 합니다.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도할 수 없듯이 평양에 앉아서 남조선혁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혁명의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1974년 1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해외에 나갔던 전 정보부장 이 후락이 지금 충무호텔 2층 특실에서 휴양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연락부에서 그 자를 평양으로 데려 오도록 작전을 한번 해보시오,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니까 경호원도 별로 없을 것이고, 장소도 바닷가니까 감쪽같이 잡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혀를 깨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해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강력 마취제를 써서라도 내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간부회의)

“년 초부터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연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강한 탄압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유신체제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결정적 시기가 박두했다는 징조입니다.    
우리는 유신체제가 더 굳어지기 전에 선손을 써야 합니다.···남조선에서 대통령이 출두하는 행사 일람표를 보니까 해마다 8·15 광복절 경축 파-티가 경회루에서 벌어지는데 매우 흥미 있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68년 청와대 육박 당시의 교훈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잘 준비해야 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부장회의)

“지금 남조선 정세가 매우 흥미 있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구제운동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태가 장기화 되도록 기름을 치고 부채질을 해야 합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광고주들에게 공갈, 협박을 해서라도 광고 해약 자들이 더 늘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동아일보 사태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선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 동원하여 전민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

“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 하에 신 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테타입니다. 계엄사령관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 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 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79년 12월 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 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버-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1983년 9월 3호청사 부장회의)

“전두환이가 드디어 백기를 들었습니다. 4·13 호헌이요 뭐요 하다가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6·10 항쟁에 겁울 먹은 전두환 정권이 항복했다는 것을 뜻 하는 것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앞으로 있게될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우리의 민주투사들을 상도동과 동교동 쪽으로 접근시키고 김영삼과 김대중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그들의 후광을 업고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 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서울 올림픽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만큼 내외적 환경이 불리하게 됩니다···올림픽을 파탄시킬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최소한 흠집이라도 많이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조선 도처에서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든가 해서 각 국 선수단과 관광객들이 남조선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없도록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Ⅳ.  결 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김일성은 혁명의 매 단계, 매 시기마다 각 분야에 걸쳐 공식 절차를 통한 정책결정 외에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비밀 교시>를 통하여 모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김일성 비밀교시는 그들이 공개해서는 안될 그런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어디에 가서도 그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해 있고, 김일성의 교시가 곧 법으로 되는 것만큼, 김일성의 교시가 모든 사업과 행동의 지침으로 될 뿐만 아니라 절대성, 무조건성의 원칙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관철되고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는 물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노동당의 모든 정책과 노선, 특히 대남 혁명전략에 대해 연구 할 때, 그것은 응당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잣대로 하여 대공 전술적 차원에서 예리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흔히 일부 전문가들 속에서는 과거의 것은 낡은 자료라 하면서 덮어놓고 최근의 자료애만 치중하는 편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역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을 모르는데서 비롯되는 무지의 표현이다.
물론 최근 김정일의 새로운 비밀교시 자료가 있다면 그 전술적 가치가 기대될 수 있으며 우리는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에 관한 전략 전술의 기본 틀은 이미 김일성의 생존시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 결코 소흘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다방면적인 남북 접촉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정밀 진단할 수 있는 그 유일한 열쇠가 바로 김일성의 비밀교시라는 점, 우리는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는 <김일성 비밀교시>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비밀교시> 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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