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관련자료


작성자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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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고 이상득 하사
<25>고 이상득 하사
동굴 수색 중 적 수류탄 덮쳐 전우 목숨 구해

고 이상득(사진) 하사는 고 강재구·이인호 소령의 얼을 이어받은 살신성인의 영웅이다. 그는 9사단 28연대 11중대 3소대 2분대 부분대장으로 1966년 9월 사단과 함께 베트남에 파병돼 뚜이호아 지역에 배치됐다. 당시 뚜이호아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으로 베트남 3대 곡창 중 하나였으며 어느 곳보다 베트콩 활동이 왕성한 곳이었다.

9사단이 파병된 후 어느 정도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게 되자 주월한국군사령부는 각각 분리돼 있던 수도사단과 9사단의 작전 지역을 연결시키기 위한 야심 찬 계획에 착수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게 된다’는 의미의 ‘오작교작전’이 그것이다. 뀌년에 배치된 수도사단이 남쪽을 향해 공격하고 깜란~냐짱~뚜이호아에 배치된 9사단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 두 개 사단의 작전 지역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작전이었다.

작전 시작 첫날인 67년 3월 8일 11중대에 부여된 임무는 다랑강 남쪽 락미마을을 수색해 베트콩을 색출하는 것이었다. 중대는 마을에 도착한 즉시 주민들을 강변에 대피시킨 후 가옥 하나하나를 수색해 나갔다. 마을 내부에는 곳곳에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어 중대원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때 이병장의 3소대 2분대는 나무숲에 둘러싸인 집을 수색하던 중 지하에 설치된 토굴을 발견했다. 분대장 이양규 하사의 지휘로 이병장을 포함한 4명이 주저없이 동굴에 진입, 수색을 시작했다. 컴컴하고 음침한 동굴 내부는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내부의 온기와 냄새 등으로 판단할 때 베트콩이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은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

긴장한 수색조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병장이 맨 앞에 나가고 있을 때였다. 이병장은 직감적으로 적이 던진 수류탄인 것으로 판단했지만 좁은 동굴 내부에서 피하거나 되돌아 나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수류탄이다”라고 소리침과 동시에 자신의 몸을 날려 검은 물체를 덮쳤다. 뒤이어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은 산산이 부서져 장렬히 전사했다. 이병장의 뒤를 따르던 분대장 이하사와 오정식 상병 등 3명은 이병장이 수류탄을 덮치는 순간 집중사격을 퍼부어 동굴에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을 사살한 후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동굴 내부는 메케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만 진동할뿐 적막하기만 했다. 그들은 모두 수류탄 파편에 의해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흘러내리는 선혈이 군복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나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병장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이병장의 희생정신은 65년 베트남 파월 훈련 중 부하가 떨어뜨린 수류탄을 덮쳐 부하를 구한 강재구 소령의 얼과 66년 해풍작전시 동굴 수색 중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덮쳐 대원들을 구한 이인호 소령의 얼을 이어받은 것으로 한국군의 정신과 용맹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상득 병장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또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이상득 하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업적과 함께 초상화를 제작해 해외파병실에 전시하고 있으며 지난 3월 호국인물로 선정, 추모 행사도 가졌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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