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관련자료


작성자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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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박오택 병장
<23>박오택 병장
위기를 기회로… 둑꼬전투 대승 견인

수도사단 기갑연대 12중대 기관총 1소대 부사수였던 박오택 상병은 둑꼬 기지에 배치된 9중대에 배속돼 기지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곳은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 산악 지역이었다. 따라서 북베트남군(베트민 정규군)의 안방과 다름없는 곳에서 적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중대 단위로 편성된 전술기지 방호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아군과 달리 산악 정글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던 북베트남군이 아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둑꼬 기지를 습격하려는 적의 행동이 처음 노출된 것은 1966년 8월 5일 밤이었다. 그날 밤 10시쯤 2소대 정면에 매설된 조명지뢰가 터졌다. 이어서 병력이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청음초의 보고가 있었다. 중대는 즉각 박격포 사격을 퍼부었으나 별다른 징후는 없었다.

날이 밝은 다음 현장을 확인한 결과 북베트남군 시체 4구와 권총 1정을 비롯해 개인장구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현장을 방문한 미25여단장 워커 준장은 적의 대부대가 캄보디아 국경선 근처에 은거하고 있는 징후로 판단하고 적을 찾기 위한 수색정찰을 더욱 독려했다. 그에 따라 9중대는 8월 8일 아침 국경선 수색을 나가 다음날 오후 3시쯤 기지로 복귀했다.

그날 밤 9중대는 1박 2일간의 정글수색으로 모두 지쳐 있었다. 따라서 야간 경계근무는 기관총과 박격포 등 배속된 병력들의 몫이었다. 그때 기관총 부사수 박상병은 사수와 함께 제2소대 외곽 지역에 배치됐다. 그러던 밤 10시40분쯤, 며칠 전과같이 소대 전방에서 조명지뢰 1발이 터졌다.

그 후 주변은 쥐 죽은 듯 잠잠해졌으나 박상병이 귀를 기울이자 분명한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박상병은 마침 외곽을 순찰하고 있던 화기소대장 임복만 중위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중대본부의 조치는 없었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땅을 파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박상병는 또다시 임중위에게 보고했다. 중대장은 임중위의 세 번째 보고가 계속되자 마지못해 전차에 부착된 탐조등으로 전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전차의 시동이 걸리고 탐조등이 전방을 비추자마자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적의 박격포 사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중대원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둥지둥 복장을 갖추지도 못한 채 진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군의 포병화력과 기관총의 최저 표척사격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9중대는 위기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때 만약 적의 공격 기도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9중대원들이 잠든 심야에 기습공격을 허용했다면 둑꼬 기지는 최악의 국면을 맞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상병 등 청음초의 성실한 근무가 둑꼬의 위기를 승리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이다. 정부는 박상병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전투에 참가한 전원에게 일계급 특진의 영예를 부여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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