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관련자료


작성자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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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종세 상사와 둑꼬전투
<2>이종세 상사와 둑꼬전투
한국군 작전능력 유감없이 발휘

태극무공훈장은 대부분 목숨 바쳐 전공을 세운 영웅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에서 ‘둑꼬 전투’에 참가했던 이종세 상사가 그 주인공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속해 있던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9중대가 대대와 함께 캄보디아 국경 지역 ‘둑꼬’에 투입된 것은 1966년 7월9일이었다. 그때부터 제3대대는 미군의 작전 통제 하에 국경선 일대의 정글 수색 작전에 참가했다.

작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울창한 수목이 하늘을 뒤덮어 주간에도 컴컴한 정글에서 적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현 위치 식별도 힘들었다. 궁여지책으로 지원 포병에게 연막탄을 요청해 피어오르는 연기로 위치를 확인하고 잡목 숲을 잘라 길을 만들며 한 발짝씩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전투복을 적시는 땀을 몇 번씩 짜내야 했다. 나뭇잎에 붙어 있던 거머리가 땀 냄새를 맡고 수직 낙하 기법으로 달라붙어 엄지만큼 굵어질 때까지 피를 빤 후에야 느낄 수 있었으며, 담뱃불로 지져야 겨우 떨어졌다. 그 외에 모기·뱀·이름 모를 해충이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적을 찾기보다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였다.

야간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색 중 점령한 임시 집결지는 물론 방어 태세가 보강된 둑꼬의 주둔지도 적의 대규모 습격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인내의 한계를 넘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8월9일 오후, 1박 2일간의 작전을 마친 중대는 둑꼬의 주둔지로 복귀해 전면 방어 배치와 휴식을 교대하기로 했다. 때마침 임기가 끝나 다음날 떠날 중대장은 후임 중대장과 조촐한 송별 시간을 가졌다. 중대원들도 덩달아 마음이 설레는 밤이었다.

그때 중대가 찾고 있던 적은 며칠 전부터 미군과 제3대대의 동태를 주시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9중대를 목표로 선정한 적은 그날 밤 10시40분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증강된 대대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구축한 후 기습 공격을 시작했다.

무차별 포격이 시작되면서 그중 한 발이 중대본부를 명중시켰다. 이어 사방에서 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중대기지는 단숨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심각한 것은 적의 포탄에 중대 지휘 체제가 일시에 붕괴된 것이다. 적 주공이 몰린 2소대는 더욱 심각했다. 소대장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적은 당장에라도 철조망을 뚫고 내부로 진입할 기세였다. 그때 사면초가의 중대를 구해 준 것은 아군의 지원포병이었다. 특히 기지 외곽에 포탄이 작렬하면서 적이 잠깐 주춤한 틈을 이용해 소대를 수습하며 적의 돌파를 몸으로 막아낸 이종세 중사의 활약은 지대했다.

전투는 다음날 아침 7시에 끝났다. 아군 피해는 후임 중대장 등 전사 7명, 부상 46명이었다. 전과는 사살 184명, 포로 6명이었지만 그들이 끌고 간 시체를 합하면 500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한국군의 작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전투였다. 자신감을 심어 준 쾌거였으며 우방은 물론 적에게도 한국군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해 주월사령관 채명신 중장과 이종세 중사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이중사를 포함한 9중대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부여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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