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관련자료


작성자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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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정정능 중위와 띤빈전투
<16>정정능 중위와 띤빈전투
“적이 사격하면 정면 돌격하라”

수도사단 1연대 5중대 3소대장이었던 고 정정능 중위는 1966년 3월 24일 벌어진 띤빈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전사하기 2개월 전인 비호6호 작전에서도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일찍부터 용맹을 떨친 장교였다. 띤빈전투에 앞서 정중위의 상관이었던 5중대장 박동원 대위는 고보이 평야 대부분이 무릎까지 빠지는 늪지대라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 때문에 체구가 작은 베트콩은 비교적 자유롭게 기동할 수 있었지만 늪에 빠진 한국군은 꼼짝없이 베트콩의 표적이 됐던 것이다.박대위는 부대 주변 농지를 매수해 훈련장으로 활용하면서 피나는 훈련에 돌입했다. 배낭을 메고 늪지를 구보로 통과하는 훈련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왔다. 부여된 거리를 단숨에 돌파하는 중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훈련이 거듭되면서 각자가 요령과 기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는 “적이 사격하면 엎드리지 말고 즉각 응사하며 돌격하라”는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전투는 은폐해 있는 적이 먼저 사격해 오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훈련을 가장 잘 소화한 소대장이 바로 정소위(당시 계급)였다. 훈련을 거듭한 중대는 3월 24일 새벽 맹호5호 작전을 위해 고보이 평야로 출동했다. 날이 밝으면서 인접 6중대에게 발견됐던 베트콩 1개 분대가 정소위가 있는 3소대 전방에 나타났다. 정소위는 즉각 중대장에게 보고하는 한편 1개 분대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베트콩은 늪지와 논두렁 등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며 띤빈마을로 도주했다.

그 같은 상황에 대비해 중대는 늪지 통과, 돌격 등의 훈련을 거듭했기에 정소위와 소대원들의 추격은 거칠 게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1개 중대 이상의 베트콩이 띤빈마을에 요새 진지를 구축해 놓고 한국군을 유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베트콩의 기도를 간파하지 못했던 정소위가 마을 입구에 도달하자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3면에서 총탄이 비 오듯 날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위기에 빠진 정소위가 그곳에서 후퇴한다면 병력 전체가 몰살될 형편이었다. 그는 “적이 사격할 경우 즉각 돌격으로 격파하라”는 평소 훈련지침에 따라 응사와 함께 적의 참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돌격하던 분대장 이향근 하사가 베트콩 한 명을 사살했다. 최용호 상병도 세 명을 백병전으로 처치했다. 그러나 정소위가 다음 참호를 점령하기 위해 뛰어드는 순간 총탄이 그에게 집중되면서 흉부와 복부가 관통된 정소위는 선혈을 뿌리며 쓰러졌다. 소대장의 뒤를 따르던 이성만·박용성 상병도 육박전을 벌이다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베트콩과 함께 산화했다. 그 와중에 정소위는 분대장 이하사를 불러 “적의 참호를 빨리 탈취하라, 그리고…”라며 끝을 맺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돌격을 계속한 이하사는 저항하는 베트콩을 사살하며 그들의 외곽 참호를 모두 점령했다. 확인된 베트콩 시체는 11구였으며 포로 한 명, 그리고 경기관총과 탄약 등을 노획했다. 그후 소대는 중대장이 급파한 부중대장 정주영 중위와 합류했지만 정소위는 출혈 과다로 숨지고 말았다. 정부는 전사한 정소위의 용맹과 솔선수범을 기리며 그에게 충무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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