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관련자료


작성자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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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강재구 소령과 베트남 파병
<11>강재구 소령과 베트남 파병
흉내 낼 수 없는 殺身成仁의 전형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된 최초의 사례는 1965년 10월4일 강원도 홍천에서 훈련 중 순직한 고(故) 강재구 소령이었다.

당시 정부는 8월13일 국회에서 전투부대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자 홍천의 수도사단과 포항의 2해병연대를 베트남 파병 모체 부대로 공식 지정했다 이어서 8월17일 채명신 소장을 주월 한국군사령관 겸 수도사단장으로 임명하고 연대장과 대대장·중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관과 예하 장병을 선발했다. 병사는 신체조건·학력·가정환경 등을 고려하고 장교는 국내에서 해당 직책을 경험한 자원 중 우수자를 선발했다.

그때 파월을 자원했던 강재구 대위도 1연대 3대대 10중대장으로 선발돼 중대 편성과 훈련을 서둘렀다. 8월 중에는 주로 세부 편성과 보급품 획득 등을 위주로 준비하고 9월이 되면서 4주간의 종합훈련에 착수했다. 그처럼 강대위가 부대 편성과 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던 9월 초 그는 경기도 부평(현 인천)에 사시던 편모가 별세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당시 부대는 건국 이래 최초의 전투부대 파병을 앞두고 국가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따라 모친의 장례를 서둘러 마친 그는 3일 만에 다시 부대에 복귀해 슬픔도 잊은 채 훈련에 열중했다. 훈련이 거듭되면서 전후방 각지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병력들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게 됐고 용맹스러운 맹호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취사병도 명사수가 됐고 행정요원도 전투병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던 10월4일 훈련의 마지막 과정인 중대 훈련 과제로 수류탄 투척이 시작됐다.

부임 전 제1군 하사관학교에서 수류탄 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누구보다 수류탄의 위력과 유의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도 그는 장교 식당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자신이 교관으로 근무할 때 훈련이 미숙했던 병사가 놓친 수류탄을 발로 차내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수류탄 훈련시 유의사항을 주지시킨 바 있었다.그런 강대위에게 위기가 발생했다. 이등병이 놓친 수류탄이 하필 중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발로 걷어차낼 형편도 아니었다. 중대원 다수가 피해를 입게 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모두 피하라!” 강대위가 순간적으로 중대원들에게 내린 경고였다. 이어 그가 자신의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쳐 안았을 때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러나 강대위를 제외한 중대원 모두는 무사했다. 부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희생정신으로 보통사람이라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살신성인의 실천이었다.

그때부터 1연대 3대대는 ‘재구대대’라는 특별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육군본부와 육군사관학교는 ‘재구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으며, 그가 다녔던 모교와 순직한 홍천군 현장에 그의 추모 시설이 설치돼 그가 남긴 얼을 계승하고 있다. 또 전쟁기념관은 그를 호국인물로 선정,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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