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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선호
작성일 2006-02-05 (일) 10:24
ㆍ조회: 289  
베트남전교훈역행하는 한국정책
베트남전쟁의 패인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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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끝난지도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엄청난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 특히 전사상자(고엽제 후유증 환자 포함) 2만여명은 일단 국가 유공자로 처리되었지만, 5만여명의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는 아직도 전상자로서의 대우를 못 받고 있으며,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인 다우엘 케미칼과 힘겨운 피해보상청구소송에서 겨우 2심의 부분승소판결을 얻어내었지만 여전히 갈 길 이 멀고 험란하다.,
국내법에 의한 전상자로서의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기 위한 피눈물나는 권익투쟁도 계속되고 있지만 관계법안이 국회정무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여야 및 이해 당사자간의 갈등으로 본회의 상정을 위한 최종안 마련에  큰 진전을 못보고 있음은 좌파 세력들이 주장하는 민주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우선 대우해야 한다는 정치논리에 의한 견제작용이 장애의 큰 벽이고 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차제에 미국의 입장에서 본 베트남전쟁의 패인을 객관적으로 재음미함으로서 한미간의 혈맹관계를 재확인하면서 공동운명체적 맥락에서 한국군 참전용사 중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고엽제후유의증환자에 대한 한미정부의 대승적 차원의 국가지원시책 마련과 상호협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쟁에서 결코 패하지 않았으며, 정치 ,경제 및 군사적으로 국가이익을 성취하였고 세계평화에 기였다고 자부하는 바 한미 양국의 참전자의 공훈에 대한 재조명과 이해가 절신한 것이다..

* 정치 정략적 측면의 패전 요인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패인에 대하여 참전교훈을 바탕으로 초래된 자업자득의 실패 결과를 정치 정략적 차원에서 두 가지 상이한 잘못의 탓으로 돌리고 있음을 본다. 첫째 미국의 개입목적과 국지적인 정치 군사적 여건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도, 만일 국가전략 자체의 오류와 전략수행상의 잘못을 피할 수 있었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옴으로서 미국의 개입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란 입장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개입근거와 관련하여 베트남의 정치 군사적 조건이 미국의 개입과 원칙에 위배되었으므로 개입자체가 잘못이었다면, 다른 전략을 구사했더라도 미국의 개입목적은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란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다음과 같이 애당초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전쟁을 시도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와 정치체제 그리고 베트남 사회는 그 본질상 미국이 압도적인 대규모로 개입 지배하거나 아니면 미국의 보호령으로 만들지 않는 한, 그들 독자적으로나 미국의 지원만으로 는 독립을 보존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반정부 전복활동에 취약한 상황이었다.
  미국군대는 적의 전복 행동에 대항하여 전투할 수 있도록 적절히 편성 장비 훈련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을 군사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제압 또는 괴멸시킬 수 있다고 믿고서 국민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를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전에 의한 소모전으로 말려 덜어가 적의 게릴라전에 발목이 잡힌 채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만 부담해야 했다.
  미국은 단계적 확전과 점진적 제한전쟁을 임기응변적으로 폈지만 군사적 효용성이 없었으며,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급속한 확전과 단계적 종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것도 아니다. 베트남 국민에게는 약주고 병 준 꼴이 된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미국화 기간 중 국가이익이 중대하게 위협당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외면한 채 전승에 필요한 추가적인 대규모 전투력과 기간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납세자이며 전사상자의 가족인 국민에게 정당화시키고 납득하게 할만한 합리적인 논리나 호소력을 결하고 있었다.    

* 군사 전략적 측면의 패전 요인

초대 주월 미군 사령관을 지낸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은 정치인의 실책으로 미군이 패전전략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혹평한 바 있으며 와인 버그 전 국방장관도 1980년에 "앞으로 우리는 전쟁에 이길 계획을 갖지 않는 한 1960년대처럼 미군을 함부로 전장에 투입하는 어리석은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전 육군 대령이며 영향력 있는 수정주의자인 섬머즈(Harry Summers)는 미국의 패전요인을 군사 전략적 측면에서 자기의 참전 경험을 토대로 하여 다음과 같은 4지를 특이하게 지적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이 지나치게 유격전과 대 분란작전에 치중함으로서 전략적 공세를 제한 당하여 수세적 소극적 작전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군사작전에 대한 정치적 규제가 과도하여 전략적 전술적 승리의 기회를 일실하였다.
  적의 전쟁잠재력 원천인 북베트남에 대한 항공폭격을 존슨 대통령이 일시 중단시키고
베트남의 평정에 매달리게 함으로서 게릴라전의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미군이 맡은바 임무를 감당할 수 없었다.
  비겁한 정치인들이 1975년에 공산주의세력에 의한 마지막 총공세를 당하고 있는 베트남을 약속한 바 데로 지원하지 않고 손을 놓게 함으로서 10 여 년간의 공 던 탑이 일시에 문어지고 말았다.

요컨대 베트남전쟁은 잘못 이해되어 왔고, 잘못 보도되었으며 잘못 기억되고 있는 바,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시행착오를 솔직히 시인하고 그 교훈을 거울삼아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함으로서 걸프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미국의 건전한 비판문화가 한국 풍토에서는 발 부치기 어려우니 심히 아쉽다고 하겠다.

* 전쟁 지도적 측면의 패전 요인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 전쟁의 미국화 정책을 추진했던 40대 중반의 젊은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남베트남 붕괴 20주년을 맞으면서 1966년에 발간한 회고록 "베트남전쟁의 비극"이란 단행본에서 "베트남전쟁은 잘못 되었으며 몸서리치도록 잘 못된 전쟁이였다"(Vietnam war was wrong, terribly wrong)라고 잘못을 시인하고, 베트남전쟁은 방향을 잃은 목표없는 제한전쟁으로서 패전으로 끝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쟁지도를 전담했던 스스로의 시행착오를 고백하여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전쟁은 해법이 없는 전쟁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이유 5가지와 바로잡아야 할 계명의 교훈 4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함으로서 감명을 주고 있다.

첫째, 승리하지 못한 이유 :
   동남아 전채를 공산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명분
   미군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남베트남의 국경선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원칙
   남베트남이 정치적 안정을 성취하고 미국의 보호와 원조아래 자위역량을 갖출 것이란 과잉 기대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에 의한 선제공격을 할 수 없다는 대전제
   적이 장기적인 미완성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지구전을 펴 온 것을 미국이 간파하지 못한 오판

둘째, 시정해야 할 계명의 교훈
   전쟁의 성격을 오해하지 말라.
   민족주의세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외부 개입군사력의 성취가능성을 과대평가 하지 말라.
   미국의 안보가 직접적으로 위협받지 않는 한 일방적인 군사개입은 피하라.

* 남 베트남의 패망 요인

남베트남의 패망요인은 한마디로 전쟁에서 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다른 분석이 제시 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전쟁을 지도한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이 미국의 패전요인을 지적했듯이 1966년부터 국가 패망 시까지 남베트남군의 총참모장이었던 Cao Van Vien 장군이 1975년의 북베트남 총 공세 시에 남베남 군이 패전한 근본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어 관심을 끌게 된다.

  베트남은 국가의 존립이 어려울 정도로 불리한 협정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파리 협정은 힘의 균형이 공산주의자 편으로 기울도록 체결되었으며, 북베트남으로 하여금 1975년의 공세를 자유롭게 주도하도록 허용하였다.
  남베트남 측에서는 북베트남의 전면공격 시엔 적극적으로 대응 개입하겠다는 미 대통령의 약속을 국가적인 공약으로 간주하였으나,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이 명백히 휴전협정을 위반했음에도 이를 외면하였다.
  남베트남은 예기치 못한 군사원조의 대폭적인 삭감으로 인하여 군의 전투력 증강 유지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 졌으며 국민과 군의 사기에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티유 대통령의 전략적 결심은 필요에 따라 취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시기적으로 늦었다. 결국 중부 고원 일대의 제2군단 철수가 너무 조급하고 무질서하게 실행됨으로서 제1군단과 제2군단의 급속한 동시 와해로 말미암아 사이공이 위협받게 되었다.
  남베트남은 미군 철수 이후 군사력의 재정비강화가 이뤄지지 못한데다 정부는 무능과 부패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사회는 불신 부정 불안 그리고 패배주의로 만연되어 국가전체가 붕괴될 위기 상황 하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총공세를 맞아 무력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베트남화 정책이 빚은 역기능과 과오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미국식 전쟁 방식 답습,   중국과 소련의 북베트남 지원 방치,   수세적인 방어전략 채용,   신생 독립국가에서 전쟁수행을 곤란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대두,   정부와 군의 정실 인사 처리,   연합지휘체제의 미흡,   북베트남의 일관되고 확고부동한 전쟁지도,   파리 협정후의 우발사태 대비 부실.

한국전쟁 참전자들은 벌써 70대 중반에 접어 던 노년층이고, 베트남 전쟁 참전자 역시 10년 정도 젊을 뿐이나, 이들 대부분이 빈곤층에 속하는 무기력한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전상자 취급조차 못 받고 있는 고엽제후유의증환자들의 고통과 분노를 당국은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의 희생과 공로를 보상하는데는 인색하면서 북한에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이른바 민주유공자를 양산하여 그들을 상대적으로 우대하려는 현실정책은 남베트남의 패배주의 만연에 의한 국가붕괴를 답습하는 오두백마생각(烏頭白 馬生角)의 우행이 아닐 수 없다.



218.145.131.52 김하웅: 박사님의 글   이곳에서 뵙게됩니다  더욱 많은 글들 뵙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02/08-15:01]-

124.61.215.21 서백석: 참으로 어려운 시절에 전쟁에서 피흘린 전우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우리는 나라의 부름에 따라서 목숨조차 버렸는데국가는 참전 용사들에게 너무나 잘못하는 입니다 더 늦기전에 큰 관심으로 위로 받아야 당연 합니다.  -[07/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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