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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종상
작성일 2009-07-30 (목) 17:59
ㆍ조회: 733  
터키여행지의 설명....

[ 여행중 찍은 사진을 올리며  설명이 부족하여  옮겨 왔습니다]

 


 

 

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매혹적인 대작품

지상은 자연의 힘, 지하는 인간의 힘이 만들어 낸 도시,

 

 

 

 ▲ 카파도기아 경관 1

  

카파도기아(현재명:네브쉐히르 Nevsehir) 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다. 괴레메를 중심으로 한 카파도기아 지역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기에 충분한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담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자연의 조화로만 이룰 수 있는 이 카파도기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1. 카파도기아의 위치와 지형

 

고대 역사서나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이 카파도기아 지역은 현재 터키 공화국의

소아시아 반도(일명, 아나톨리아 반도) 중앙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평균

고도는 해발 1,000m로서 주변의 높은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과거 화산을 분출시킨바 있는 에르지예스 산(3,914m), 핫산 산(3,264m),

괼류 산(2,143m)등의 높은 산들이 카파도기아를 굽어보고 있다. 오랜 옛날에 이들

산들은 차례로 용트림을 치며 용암을 분출시켜 주변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 카파도기아 경관 2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 바람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매혹적인 대작품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화산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 지역이 강도가 약한 사암으로 되어 있었으나,

화산에 의해 그 위로 강도가 강한 검은 용암이 뒤덮어졌다. 세월의 비, 바람은

강도에 따라 이 지형을 깍고 다듬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특수한 경치를 이

카파도기아 지역에 선사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지형은 인간들이 손쉽게 거주할 수 있는 거주지를 제공해 주었다.

즉, 그들은 이 천연의 바윗속에 있는 약한 사암을 파내기만 하면 훌륭한 집이

되었다. 그 겉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용암은 지붕이나 벽이 되어 주었다.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기초공사나 골조공사는 필요 없었다.

 

2. 카파도기아의 역사적 배경


 

주변의 매혹적인 경관은 이미 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고대의 신화나 전설에도 자주 오르내렸을 뿐 아니라, 이른 시기부터 인간은

이곳에 거주했다. 고고학적 발굴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뚜렷한 문명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500-5,500년 경의 신석기 시대로서 소위 차탈회육(CATAL HOYUK -

코냐 남동쪽 Cumra옆)문명이다. 이들이 남긴 벽화는 인류 최초의 벽화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고대문명은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핫티(HATTI)및 내사(NESA)문명을

이어받아 내려오다가 결국 중동 및 소아시아 반도의 융성한 힘이었던

힛타이트(HITTITES, 헷족속)제국에 융합된다.

 

 ▲ 겨울 풍경

 

힛타이트인들은 인도-유러피언 계통의 일파로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이 지역에

이주하기 시작했고, HATTUSAS(앙카라 동쪽 Bogazkale옆 지역)를 수도로 하여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약 700년간 훌륭한 문화를 이룩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당시의

유적들은 현재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일명, 힛타이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1,200년 경 힛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후 소아시아 반도는 암흑기에 접어

들었다. 동부는 우라투(URATU)왕국, 남동부는 新힛타이트 왕국, 서부는 리디아

(LIDIA)왕국, 중부는 프리지아(PHRYJIA)왕국이 차지하면서 서로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역사적 기록으로 최초로 남기 시작한 것은 동쪽으로부터의

페르시아 제국이 침략하면서 부터이다.

 

기원전 6세기 중반 페르시아의 시투스 대왕은 순식간에 소아시아 반도 전체를

통일, 점령함으로써 카파도기아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그 후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카파도기아는 헬레니즘 문명을 맞이해야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자 아리아라테스 2세가 카파도기아 왕국을 세움으로써

왕국이 멸망한 기원전 2세기말까지 카파도기아는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대제국인 로마제국에게 A.D 17년 영토를 내어주고 말았다.

 

로마나 그 뒤를 이은 비잔틴 제국의 어느 황제들도 이 지역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곳은 단지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관계로

대상들의 숙소가 되었을 뿐, 역사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격의 특수한 지형은 기독교인들에게 훌륭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로마제국의 박해(A.D 54년 네로 황제 - 콘스탄티우스 황제 304년)를 피해 약

250년간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 이후 7-9세기까지의 아랍인들의 침략을 피해

이들은 이곳에 굴을 파고 거주하면서 암굴 속에 새로운 기독교 문명을 남겨놓았다.

그들은 지하도시에 기도처, 동굴교회, 주택, 학교, 신학교 등을 만들어서 생활

하였는데 예배처소 및 교회들만 해도 1,000여개가 있었다.

 

 ▲ 지하도시의 구조

 

그 이후 비잔틴 제국시대에는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교회가 점점 타락해지자

초대교회의 신앙을 따르던 수도사들이 이곳에 다시 와서 수도원을 건설하며 경건

생활을 계속하였다.

카파도기아에 있는 대부분의 암굴교회나 그 속의 프레스코 벽화는 9-10세기 경인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11세기부터 시작된 동부로부터의 터키인들의 이주로 소아시아 반도는 이제

이슬람화된 터키인들의 영향권 아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건설한 셀축

제국(1304년)이나 오스만 제국(1453년)은 소아시아 반도내의 기독교 사회에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었다. 카파도기아의 암굴교회 벽화속에는 셀축제국의 술탄의 모습도

쉽게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카파도기아의 기독교 사회는 20세기 초까지 그들의

신앙을 비교적 자유롭게 누려 나갈 수 있었다.

 

그 후 터키공화국(1923년)과 그리스 간의 소수민족 교환 협정에 따라(1920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자의에 의해 그리스로 이주해 감으로써

오늘날은 그들이 남겨놓은 문화적 흔적만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3. 카파도기아의 유적들

 

 카파도기아의 지하도시 (데린쿠유, 카이막글리, 외즈코낙)

 

아나톨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은 7-9세기 어간 아랍 이슬람군의 침입으로 땅굴 속에

도시를 이루고 피난하였다. 이 지하도시들 중 유명한 것이 데린쿠유, 카이막글리,

외즈코낙이다. 이 도시들은 모두 8-10층의 깊이로 석회암 하부를 뚫고 들어가

만든 지하도시로서 카파도기아의 다른 지역의 동굴 마을과는 지하로 된것

이외에도 그 크기에 있어서 현저하게 다르다. 이 지하도시는 기원전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마을 주민이 증가함에 따라 규모가 커졌다. 도시 구획은 매우 복잡하여

수평과 수직으로 몇 마일에 걸쳐 있다.

 

▲ 데린쿠유 지하도시

 

거주지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 한때 혹은 특별한 시기에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스 철학자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

"집은 지하에 있고 입구는 샘같으나 아래로 내려가면 넓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고 짐승들은 입구로 내려간다. 집안에는 염소, 양, 소 등 가축들이  함께

있고 집안에 저장된 먹이를 먹으며, 또 커다란 항아리엔 밀, 보리, 콩과 보리로

빚은 술도 있었는데 보리의 알곡이 큰 항아리의 아구까지 띄어 있고 여러 개의

갈대를 바닥까지 꽂아 놓고 목이 마르면 갈대를 입에 대고 술을 빨아 마셨다.

물을 타지 않고 마시면 아주 강한 술인데, 익숙하면 아주 맛있는 음료였다."

 

안내자가 없거나 화살표를 따라 조심스럽게 가지 않으면 길을 잃기쉽다. 가끔

굴은 멋있는 방이 되기도 하는데, 벽을 깍아 침대를 만든 것도 있따. 통풍장치는

여러 층에 걸쳐있다. 어떤 것은 물이 나는 곳까지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이주해

온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까만 벽과 천정이 있는 방은 식당이나

부엌으로 쓰인 것으로 보여진다. 벽에 뚫린 작은 공간들은 찬장과 등잔 등을 놓은

곳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이런 도시가 약 30여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괴뢰메(야외 박물관)

 

괴뢰메를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역사시대의 초기부터 인간들이 거주해 왔지만,

이곳의 천연적인 지형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다.

이곳에는 1년 365일에 해당하는 365개의 암굴 교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약 30개의 암굴 교회 만이 야외 박물관(Open Air Museum)으로 개장되어 공개되고 있다.

 

▲ 괴뢰메의 암굴교회

 

이 암굴교회들은 입구와 몇개의 통풍 및 채광을 위한 구멍만이 뚫려있어서 밖에서

보면 거의 인간이 거주한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외부의 황량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거의 프레스코 벽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그러나 이 벽화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약간 서툴고 조잡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벽화 내용이나 미술양식에 있어서도 획일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비잔틴 제국의 726-843년 사이에 있었던 성상파괴주의 영향으로 벽화 예술이

상당히 퇴보되었기 때문이다. 획일성은 이 지역의 하나의 종합 수도원 시설 속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수도사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하나의 형태로

인습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성상파괴주의가 남긴 또 하나의 특징은 금지된 인물 대신에 상징적인 무늬나

과일 및 동물의 무늬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이들중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

사슴, 공작, 비둘기 등의 무늬가 벽화의 주요소재가 되었다.

 

젤베 계곡(Zelve)

 

젤베 계곡은 위르룹(Urgup)과 아바노스(Avanos)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카파도기아의 지역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종합도시로 추측된다.

 

 ▲ 젤베 계곡

 

카이막클리나 데린쿠유는 지하도시이고, 위치히사르나 오르타히사르가 지상 위의

고층 건물이었다면, 젤베는 계곡에 위치한 종합도시이다. 이곳도 역시 화산과 침식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지형에 암굴을 파고 인간이 거주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암굴의 규모나 여러가지 시설면에서 다른 지역과는 비교될수 없을 만큼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거주지는 물론 교회, 방앗간, 물 저장고 등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다.

 

젤베는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이 이루어놓은 절경 때문에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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