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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공산
작성일 2007-08-29 (수) 16:28
ㆍ조회: 1190  
시인 송명호 "국군은 학살자"
written by. 김남균
"국군은 친일파 쓰레기 집합소…, 인민군은 선량한 군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저질비방시(詩)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시인 송명호(사진) 씨가, 이번엔 국군을 비하하는 글을 올려 또 논란을 부르고 있다.
 송 씨는 27일 자신의 블로그(http://blog.ohmynews.com/songpoet/)에 올린 『동의보감, 인민군, 정약용』이란 제목의 글에서, “국군에게 사살 당하였으면 억울한 죽음이나 훌륭할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인민군에게 희생되었으면 일생을 살면서 악덕으로 소문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민군은 내려오면서 지역사회에서 덕망이 높은 사람은 보호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악질 지주, 친일파로서 악명이 높은 자, 경찰이나 군인으로서 악명이 높은 자만 골라서 처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인민군에게 죽었다 하지 마시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당신의 조상을 비웃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 “인민군=선량한 군대”이고 “국군=잔인한 학살자”라고 했다. 모택동의 군대가 장개석 군대를 이긴 것은 ‘민심’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면서, “모택동식 군율을 알고 있었던 인민군이 지나간 곳은 마을이 멀쩡했으나, 국군은 소를 잡아 먹기 일쑤였으며 마을 처녀들에게 성폭행까지 일삼았다”며 “국군은 친일파 쓰레기들의 집합소”라고 했다. “심지어 6.25 전쟁 중에 우리나라의 처녀들을 노획하여 정신대처럼 성노예로 삼았다는 기록까지 있다”고까지 했다.
 
 그는 계속해서 같은 날 올린 『학살의 주체, 미군인가 인민군인가』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6·25당시 인민군·좌익에 의한 양민학살로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미군이 저지른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송 씨는 작년 5·31지방선거 지원유세를 하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테러를 당하자, “박가년 거시기가 찢어졌다”며 통쾌해 하는 내용의 자작시를 인터넷에 올려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박가 년 @지는 손에 달렸다지”라는 제목의 이 자작시에는, 원문을 그대로 옮기기 민망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박 전 대표 뿐 아니라 고인이 된 그의 부모들에 대해서도 원색적으로 비난했는데, 특히 육 여사 피격 사건이 “지 남편(박정희) 꼬붕들이 쏜 총에 맞아 꼬꾸라진 것”이라며, “박정희 마누라가 뒤질 때 얼마나 기분이 째지던지 나는 만세를 불렀다. 못 마시는 소주를 사서 나발을 불었다”고 했다.
 
 법원은 이같은 글에 대해 ‘명예훼손’ 죄를 적용, 벌금 1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송 씨 그 자신의 말대로 “벌금은 내지 않아도 되고 2년 후 모든 기록이 소멸되는, 결국 2년 후에 무죄가 되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송 씨는 지난 5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표현의 자유”를 역설했다.
 

이하는 송 씨가 27일 올린 두 편의 글 전문이다.
당신의 상식 <2> - 학살의 주체, 미군인가 인민군인가
 
원산폭격을 기억하는가. 나는 70년대 군 생활을 하였다. 상병들은 졸병들에게 원산폭격이라는 기압을 주었다. 두 다리는 어깨 넓이로 벌린 채 머리를 맨 땅에 박는다. 두 손으로 땅에 대어 머리의 고통을 덜게 하여서는 안 된다. 두 손은 열중 쉬어 자세와 같이 허리에 대고 있어야 한다. 소림사 무술 같은 이 자세는 짱배기가 아파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기압을 주는 자가 원산폭격 실시라는 말이 떨어지면 재빨리 이 자세를 취한다. 늦게 하거나 남보다 일찍 쓰러지면 고참의 발길질을 각오해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기합의 형태를 왜 원산폭격이라고 하는가. 6.25 미란(美亂) 때에 미군은 원산에 대규모 폭격을 하였다. B29라는 대형 폭격기가 공업도시 원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원산과 평양은 대규모 폭격으로 경사진 땅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평평해졌다. 6.25는 미국에 쌓여 있는 재고 무기의 쓰레기장으로 한반도를 선택한 거 아닌가. 밤낮으로 수개월 동안 폭격을 한 이후에야 원산에 상륙한다. 당신 원산 사람들은 숨을 곳이 없었다고 한다. 토굴을 파고 우물에 들어가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원산폭격이었다. 이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한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폭격이 없는 곳으로 피신하려는 생명의 본능이었다. 허나 미군의 악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부여대 피난하거나 배를 타고 내려오는 북조선 동포들에게 마구잡이 폭격을 또 퍼부었다.
 
▲ 함흥에서 학살된 민간인 시체를 우물에서 건져 올리고 있는 국군의 모습.
 
@@ 이른 바 보수꼴통들은 저 사진의 시체가 김일성의 지시란다. 인민군이 왜 사람을 살해하고 힘들게 우물에 넣겠는가. 우물에 시신을 넣으면 물을 마시지 못한다. 인민의 저주를 받을 일을 왜 하겠는가. 게릴라전은 민중의 자발적 의사 없이 수행될 수 없는데 말이다. B29의 폭격을 피해 허겁지겁 우물 속에 들어갔으나 비행기의 기총소사를 피하지 못하고 죽은 거 아닌가.
 
미국의 전술은 뻔하지 않는가. 엄청난 폭격을 퍼부은 후에 지상군이 상륙하는 것이다. 이들은 원산에 상륙한 이후에 한국군에게 시체를 정리하게 하였다.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아비규환 아닌가. 그리고 사진은 찍는다. 인민군이 떠나면서 학살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미국방부에 보고한다. 자 아래 사진을 보라. 인민군이 총을 쏘는 모습은 단 한 장도 없다. 저 사진을 보면서 여러분은 누가 학살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여러분이 믿는 상식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기록은 믿을 수 있다. 천만에 점령군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고할 뿐이다. 그 보고마저 없애지 않았기에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너희들 학살자들이여. 저 살해 현장은 너희들 승전의 자랑이었겠지. 그래 학살을 자랑스럽게 기록한 너희들의 심성을 잘 알것다. 피에 굶주린 학살의 기록을 남길 만큼 너희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았구나.
 
6.25 미란(美亂)의 민간인 학살은 12만여 명이라고 한다. 인민군이 학살하였다고 한다. 웃기지 말라. 국군과 미군이 저지른 만행이었을 뿐이다.
 
▲ 한국전쟁 기간동안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 당한 민간인은 총 122,799명(‘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위 사진은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로 학살당한 함흥 주민들의 모습으로 사진에 보이는 동굴에서만 300여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폭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으나 입구가 막히어 죽은 시신에 분명하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막힌 동굴 입구를 파내고 시신을 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입구를 파낸 흙이 높지 않는가. 사닥다리까지 있을 만큼. 포격을 피하는 주민들은 신속히 달아니가 위하여 입구를 평지와 수평이 되게 만들 것이다. 웬 사닥다리.
▲ 6.25 전쟁 당시 함흥시에서만 모두 1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인민군의 학살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 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자 이 사진을 보라. 누가 총을 쏘았는가. 시체만 보일 뿐이다. 원산폭격의 야만성을 말해 주는 확증이다.
 
당신의 상식 <1> - 동의보감, 인민군, 정약용

수년 전 나는 <동의보감>을 꼼꼼하게 읽어 볼 기회를 가졌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이 달래인가 마늘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급기야 차이나에서 1596년에 간행된 <본초강목(本草綱目)>까지 훑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명(明)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차이나를 돌아다니면서 찬술한 책이다. 놀랍게도 동의보감은 본초강목을 거의 베끼다시피하였다. 더구나 <본초강목>과 달리 인용한 책을 거의 기록해 두지도 않았다.
 
대단히 실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책으로 차이나 일본에까지 전해지고, 그곳에서 간행된 책으로서는 원효의 저작과 <동의보감>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실망감은 컸다.
 
그런데 왜 <동의보감>을 말하는가. <동의보감>에 기록된 처방이 한국적 특수성에 의거하였던가. 믿을 수는 없지만 일본과 차이나에서도 이 책을 보았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보편성을 띠고 있는 책이지 우리만의 풍토에 맞는 우리만의 처방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왜 차이나의 한의사들이 이 책을 보았을까. 실제로 한반도, 만주 지역, 차이나 북경 유역의 생물자원은 얼마나 같고 다른가. 북위(北魏)의 가사협(賈思?)이 쓴 제민요술(齊民要術530-550)에 나오는 식물들은 한반도와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오늘날 색인이 없는 책이 잘 팔리듯 <동의보감>은 출전을 없앰으로써 독자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약재명이나 처방을 빨리 찾아볼 수 있게 정리하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은 편집방법에 있다.
왜 허준만 명의로 알려졌을까. 지금이나 임란 당시나 한 사람이 임상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숫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허준인가. 보기 쉽게 만든 책 탓으로 유명해진 것이고, 여기에 힘입어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상식이나 신화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진실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다산 정약용을 지식인의 표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내 눈에 다산은 격이 떨어지는 B급 지식인에 불과하다. 그는 30대에 정조의 오른팔이 되었으니 무풍의 출세가도를 달린 셈이다. 박정희 시절의 이후락이나 김종필 같은 자였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조를 중시여긴다면서 다산 평가의 참고 사항이 되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선생은 평생을 두고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퇴계는 벼슬을 72번이나 사양하였다. 그가 한 일도 정조의 수원성 만들기였으니 백성을 괴롭히는 토목공사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만든 수원성에서 국토를 유린하는 외적을 향해 총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조선을 멸망하였으니 무용지물이었다. 그를 실학자로 알고 있으나 유학이란 원래 실학이지 허학이 따로 있을 수도 없다. 더구나 광복 이후에 실학이라는 말을 만들어 그에게 덮어 씌웠다.  
 
심지어 다산 존숭자들은 그가 엉덩이에 고름을 흘리면서까지 책을 보았다고 한다. 엉덩이에 고름이 나오면 치질인가 성병인가. 나는 성병이라고 본다. 시원한 귀양지에서 밤낮으로 노는 터에 치질이 걸릴 까닭이 없다. 만약에 당시의 처방전이 남아 있다면 질병의 종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낮에는 젊은이들에게 강론을 하였으며 밤에는 기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허준 역시 모든 병을 고치는 신의(神醫)가 아니라 못 고친 병이 더 많은 평범한 한의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책을 만듦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학의 혜택을 미치게 한 공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수년 전 나의 졸저로 신문에 나고 낯선 이의 방문을 받았다. 한적을 한 보따리 끼고 온 50 가량의 기업인이었다. 자신의 조상이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라고 하였다. 그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줄 수 있겠는가라는 요지의 부탁을 하였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일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억만금을 준대도 무가치한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옹고집이 있었다. 먼저 통 큰 배짱을 부렸다. 지금은 나의 수입은 형편없지만 당시에는 그런대로 좋았었다. 나는 연 수입이 1억은 넘기 때문에 그 책의 번역에 매달리어 3개월이 소요되면 적어도 나의 일을 못한 것까지 합쳐 5천만 원은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선언하여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자신은 강남에서 직원을 수십 명 데리고 있는 기업인이라고 하였다.
 
죄송하지만 고향은 어디이며 그 책은 어떻게 가전되었습니까. 지리산 동쪽 산청이라고 하였다. 대화중에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사살되었다고 하였다.
 
그날 나는 너무 솔직하였다.
“국군에게 사살 당하였으면 억울한 죽음이나 훌륭할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인민군에게 희생되었으면 일생을 살면서 악덕으로 소문난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민군은 내려오면서 남한은 선무(宣撫)할 필요가 있어서 지역사회에서 덕망이 높은 사람은 보호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질 지주, 친일파로서 악명이 높은 자, 경찰이나 군인으로서 악명이 높은 자만 골라서 처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민군에게 죽었다 하지 마시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당신의 조상을 비웃을 것이오.”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책을 옆에 끼고는 허둥지둥 가 버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이런 것이다. 인민군은 머리에 뿔이 나고 드라큐라처럼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족속이다. 국군은 정의의 군대로서 선량한 양민을 보호하였다. 인민군=잔인한 학살자, 국군=선량한 정의의 사자의 등식을 강요받았고 그렇게 믿었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민군=선량한 군대, 국군=잔인한 학살자였다. 남쪽 인민들에게 민심을 얻어야 할 인민군이 잔인한 학살자 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모택동은 장개석의 군대와 싸워 이긴다. 그들이 이긴 방법은 전투의 탁월성이 아니었다. 장개석 군대가 주둔한 곳에서는 가옥의 기둥을 잘라 장작으로 사용하였으나 모택동 군대는 주둔지의 민가를 청소해 주었다. 모택동식 군율을 알고 있었던 인민군 지휘부가 어떻게 잔인한 학살자란 말인가. 학살을 하는 순간부터 남한의 순치는 10배 100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인민군이 지나간 곳은 마을이 멀쩡하였다. 그러나 국군은 그렇지 않았다. 소를 잡아 먹기 일쑤였으며 마을 처녀들에게 성폭행까지 일삼았다. 국군은 친일파 쓰레기들의 집합소였다. 심지어 6.25 전쟁 중에 우리나라의 처녀들을 노획하여 정신대처럼 성노예로 삼았다는 기록까지 있다.
 
6.25 전쟁 중에 인민군이 학살하였다는 시신 사진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인민군이 피살 대상자나 시신을 겨냥하고 있는 사진은 본 적이 없다. 우리들이 그동안 보아온 그토록 많은 학살 사진은 누가 저지른 것인가.
 
허준은 명의가 아니다. 동의보감은 만병통치의 처방서가 아니다.
나의 제자들은 대개 한의사들이다. 그들이 나에게 주고 가는 약을 나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들은 반증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사이건 양의사이건 의사는 인체를 탐구 대상으로 과학적 업무를 수행하는 과학자이다. 어떻게 과학자가 자신의 처방이 오류로 판명될 수 있다는 반증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그들의 덕으로 중요한 병을 고치었다. 30년 앓던 관절염이다. 공짜로 보내주는 약이라서 나중에 그 성의 때문에 복용하게 되었고 거짓말처럼 나았다.
 
이들 한의사들은 양의사들이 의료기기를 독점한다고 불평한다. 옳은 말이다. 미국 과학자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의 독점권을 인정하지 말자는 copyleft 운동을 한다. 과학 기술은 공공재이다. 혼자서 탐구할 수가 없다. 양자역학의 실험기기는 종합운동장보다 크다. 그걸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의 세금이다. 왜 혼자 독점하는가.
 
더구나 의료기기는 누가 만드는가. 양의사들이 만들지 않는다. 양의사들이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양의만 사용할 수 있는가.
 
동의보감을 편찬한 후에 어의들만 볼 권한을 갖는다면 얼마나 부당한가.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은 전기독점권을 소유하지 않았다.
 konas/김남균 객원기자(http://blog.chosun.com/hile3)


이름아이콘 짚신
2007-08-31 17:06
참...어쩌라구요 ???  지금까지 이런 인간을 두고 보고 있었으면서.....솔직히 얘기합시다. 이 인간을 내가 두드려잡았을때 ...연대 책임이라는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깜빵에 들어가는놈한테 영치금이나 사식은 어절거며 또...내가 재판을 받을적에 누가 얼마나 기억을해서 재판정에 방청객으로 나와주겠소 ??? ........청와대로 유서쓰고 자살한 모 선배님을 생각하면  ...!!!..... 웃기지 마세여....앉아서 통빡잡고 말로만 주절거리는 사람들은 당해도 백번 싸 !!!
   
이름아이콘 백마
2007-09-02 22:04
나라꼴이   기가 막히네.....
   
이름아이콘 초심
2007-09-04 08:17
이런 인물이 지금 이나라에서 버젖이 행세하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시인이란 이름으로 자칭 지식인이라고 거들먹 거리면서,
참으로 일제 치하의 의사, 열사가 그리워 집니다.
이 런자를 살려두다니......
참으로 할일은 많고 힘은 부치고, 죽지도 못하겠고 살자니 눈골이 시고
온통 보기싫은  인간들 투성이니,
할수만 잇다면 결사대라도 만들어서 이런 자들을 처형하고 싶은데.....
   
이름아이콘 홍진흠
2007-09-08 07:00
보아하니 아주 생긴 바꾸(?)하고는---(경상도 말 알란가 모르겠다)---어디 이런사람 뿐이겠습니까?
온통 천지가 뺄개이넘 들인데---초심님 말처럼 보자니 눈꼴 사납고 안 보자니 볼게없고---
주위에 있는 우리아이들 교육 잘 시킵시다. 전우님들!
   
이름아이콘 이수(怡樹)
2007-09-10 12:56
에이 천벌 받을 놈. 지가 살아 있는게 누구 덕인데 저런 망발을 하는지 미친 녀석 다 있네.
저런 놈이 쓴 시가 시가 되겠어요. 악다구니이겠지요. 대학교 강가 놈하고 혼구뚜를 대맹생일 뫄사심문 햄수다. 화가나 이빨을 갈다보니내 이빨만 아프네요. 보이지 않는 총이 있다면 드르륵 .......
   
이름아이콘 이호성
2007-10-04 00:19

이런 모욕을 당해도 우리의 군은 너무 손발이 무겁군요
쓰레기가 따로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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