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태

1. 서 론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는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로 나눌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서로의 가치속에 내재되어 있다.

  정신적 가치가 결여된 물질적 풍요는 결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수 없을뿐만 아니라 지켜질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차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념적 가치를 상실했을때 과연 국가로서의 공동체가 생존할수 있을까?

  국가라는 공동체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영역(지연), 혈연 뿐만 아니라 관습과 정신등 공동운명체로서의 일체감을 기반으로하여 성립될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체감 (ldentity : 정체성)은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국가라는 조직체가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줄수 있다고 믿을때,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국가를 가장 안전한 조직체로 받아들일때 유지될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라는 조직체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위한 힘을 필요로 한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유해야 될 이러한 힘은 오늘날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뒷받침 되고 있다.

  국가보훈이란 제도도 국가안보를 위한 도구의 하나로 제도화 되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더욱 힘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국가의 힘은 국가의 물리력 만으로는 엮을수 없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목숨을 던져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없을때 국가의 물리력은 결집될수 없다.

  국가를 지키겠다는 국민정신이야 말로 국가의 모든 물리력을 하나로 묶어주는 아교풀과 같은 것이다.

  국가보훈제도는 두가지 측면에서 국가의 제도로서 유효성을 가진다.

  첫째 보훈대상자들이 처한 현실문제의 해결이며,  둘째 국가보훈제도를 통해서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치창출이다.

  국가가 처한 현실적 문제이든 국가가 가고자하는 이상적 목표이든 국가보훈제도의 기본적 목표는 가치지향적인 개념 즉 ‘보훈의 이념’으로 표현된다.

  이논문에서는 국가보훈제도에 대한 가치논의를 통해서 국가 보훈제도의 이념적 가치를 도출하고 동시에 국민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국가보훈제도의 이념적 가치를 국민정신으로 확산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 가치의 개념과 사회적 기능

  인간의 삶은 개인의 삶이나 집단의 삶을 막론하고 더 좋은 것, 더 낳은 것, 더 바람직한 것을 추구한다.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이 인간의 마음속이든 세상 그 어디에든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좋은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쫓는 자연스러움을 보이게 되고, 바람직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쫓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는다. 특히 바람직하고 옳은것에 대하여는 단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가치란 이와같이 좋은것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그 어떤 사물, 상황, 행위, 또는 관념등을 말한다. (견학필외, 1994, p.11)

  가치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삶의 주어진 조건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한, 일체의 가치판단을 보류할 도리가없다. 모든사물들을 그저 냉정한 사실로서만 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가치의식의 안경을 통해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치야말로 인간의 모든 제도를 탄생시키는 토양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모든제도는 좀더 나은세상,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가치판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회학과 문화 인류학에서는 가치내지 가치관을 사회현상의 구심적 역할이나 문화내용의 핵심적 요소로 간주하고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위해 있게되고, 또 있어야 하는 바람직한 사회관계의 표준내지 생활원리’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Keesing, F.M. 1962, p.161)

사회적 의미를 갖는 문화내용 요소로서의 가치관은 문화적으로 전승되는 것이긴하나, 실제에 있어서 사회구성원 각자의 사고와 행동등 심리적 특성으로 내면화되어, 구성원 개인의 사회적 행동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와같은 가치개념은 심리적 기준등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제반 사회제도속에 제도화 되어있다. (견학필외, 1994, p.23)

  가치가 사회적 힘을 가졌다는 근거는 사회와 관습이 개인으로 하여금 지배적가치를 내면화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효를 강조하는 가치가 존중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인은 누구나 개인의 성격속에 효도를 중시하는 가치의식이 내면화 되어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적 가치가 개인을 초월하여 일종의 사회적 사실로서 실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야말로 사회적으로 학습될뿐만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된다.

  또한 한 시대나 사회에 풍미하는 시대정신이나 국민정신이라는 것도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체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3. 국가보훈의 이념적 가치와 국민정신과의 관계

  (1) 국가보훈의 이념적가치

  국가보훈의 이념적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국가라는 단위의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개인이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사회의 위협, 즉 혼돈을 뜻하는 무정부상태를 그리고 있다. 감내할수 없는 혼돈상태로 말미암아 인간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해 어느정도의 자유를 희생할 동기를 갖게되며 이같은 과정에서 정부와 국가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Barry Buzan/김태현, 1995, P.64)

  홉스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국가를 원하는 이유가 ‘외국인의 침입 또는 서로의 상해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하여 자신의 산업이나 지상의 과실(果實)로 스스로를 살찌우기 위한것’이다. (Thomas Hobbes/Carl cohen 1972, P.275)

  로크(John Locke)의 견해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부에 귀속시키는 크고 주된목표는 무정부상태에서 매우 불안한 자산 예를들면 생명, 재산, 자유등을 지키기 위한것’이라한다. (John Locke pp.406-407)

  이들의 견해를 종합해 볼때 국가는 사람들이 사회 또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에 대해 적정수준의 안보를 달성하기위한 메커니즘으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론이다. 즉 국가의탄생 배경에는 국가안보라는 개념이 깊속히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보훈의 이념적가치는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국가안보의 이념적 가치가 국가의 본질적가치 즉 국가의 생존과 번영 이라는 목표를 지향한다면 국가보훈의 이념적가치 또한 국가안보의 이념적 가치창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국가보훈의 이념적가치가 이러한 당위적 가치만으로 단순정의 되어서는 정부행정의 한 분야로서 보훈행정의 위상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 좀더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국가보훈의 이념적 가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단위만을 분석해서 그 당위성을 찾는 것으로 만족할수 없다.

  국가는 개인들로 구성된 정치적 집합체로 가장크고 잘 조직된 이상적인 공동체 이지만 국가와 개인간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개인이 안주하기에 좋은 안식처가 될 수있는 반면에 ‘국가의 힘’은 개인에게 위협의 근원도 될 수 있다.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한 국가의 제도는 불가피하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고, 국방의 의무가 전쟁수행을 포함하기 때문에 개인의 안전이라는 입장에서 볼때 오히려 큰 위협이 되지 않을수 없다. 여기서 개인의 안보와 국가의 안보간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마치 국가안보와 개인안보의 관계가 양날의 칼과 같은 관계이다.

  이같은 모순을 좀더깊이 따져본다면 개인에 대한 국가의 위협은 대체로 네가지 범주로 나눌수 있다. (배리부잔/김태현역, P.71)

  (1) 법률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서오는 위협 (2) 국가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하는 직접적인 행정․경찰활동 에서오는 위협 (3)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서 오는 위협 (4) 국가의 대외안보정책에서 오는 위협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특히 국가의 안보정책에서 오는 위협은 개인에게는 가장큰 위협이다.  무정부를 본질로하는 국제정치¹⁾에서 뿌리깊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국가간의 무력사용이다. 이러한 국가간의 무력사용인 전쟁은 국민 개개인에게는 무한한 희생을 강요한다.

  인간의 역사는 국가간의 무력사용인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은 다른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전쟁은 정치라는 펜(Pen)대신에 칼을사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클라우제빗츠의 말처럼 전쟁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역사에서 영웅적인 이야기는 모두 폭력적 침탈로부터 국가의 문화적 ․ 정치적 ․ 경제적 가치를 구해낸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군사적요소는 국가안보에 대한 관심을 지배해왔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군사적행동은 군인들의 생사를건 임무수행을 제외하고는 이루어질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군인들의 입장 또는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안보를 위한 개인안보의 위협은 생각하면 할수록 깊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도덕적 가치의 문제에 봉착한다.

  과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하는 도덕적 물음에 직면하여 ‘목숨을 바칠필요가 없다’는 대안을 제시할수 있겠는가?

  인류가 국가라는 조직체를 버리고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모든국가가 되돌릴수 없는 비현실적인 대안이듯이 ‘국가’라는 존재는 역전될수 없다.  국가가 국가일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인 안전보장제도 또한 필수불가결한 국가의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필수불가결한 국가의 제도라도 그 제도가 실행가능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모두가 그 제도를 따르겠다는 가치기반과 제도의 효용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보훈이라는 가치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제도로부터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과 국가안전보장 이라는 제도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신적기반을 창출하는데 있다.

  따라서 국가보훈의 이념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국가안보의 가치창출에 모아져야 한다.  국가의 보훈행정은

  ․  국가위기시에 목숨을 던져 국가를 보위한 대상을 명확히하고,

  ․  이러한 헌신적인 행위에 대하여 국가가 보답하고,

  ․  국민들이 국가를 위한 헌신적 행위를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  이러한 정신이 국민정신으로 확산될수 있도록 하는 이념적 가치를 지향할 때 그 사명을 다할수 있다.

 (2) 국가보훈의 이념적 가치와 국민정신과의 관계

  ‘국민정신’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1)한나라 국민에게 공통되는 고유한 정신, (2)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정신으로 정의되고 있다.(이희승, 1961). 물론 접근방법에 따라서 어원적 정의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국가지향적 개념인 사전적 정의에 추가하여 가치지향적 개념으로 국민정신을 논의하고자 한다.

  인류역사에서 수천년동안 국가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 사회 공동체로 자리잡고 있으며 국가를 대신할수 있는 조직체나 대안이 없는 한 국가의 존재는 인간삶에 있어서 절대적 존재이다.

  또한 개별국가의 차원에서 볼때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간에 공유된 정체성 즉 공동운명체적 소속감, 유대감, 응집력등 도덕적요소, 이념적요소들이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지 못할 때 국가는 의미없는 공동체로 전략할것이며, 영토나 국민등 국가의 물리적 기반도 보호될수 없다.

  즉 세계역사의 장에서 우리는 수 많은 국가가 명멸했던 사례들을 볼수 있는데, 어떠한 민족이나 국가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심으로 승화하지 못할 때 공동체의 힘과 지혜를 결집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할수 없다.

  따라서 소속감형성, 연대감조성등 애국적 가치관의 형성이야말로 국가공동체의 ‘도덕적생태학(moral ecology)' 혹은 ’정치적생태학(politica ecology)’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박효종, 2003. 보훈학회)

  이와같이 국가안보를 지향한 이념과 가치가 국민들의 도덕적 생태와 정치적 생태로서 체질화 되지 않는한 국가의 생존이 보장될수 없다고 볼수 있기 때문에 국가보훈의 이념적가치는 국민정신속에서 도덕적가치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념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애국적 헌신행위는 개인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심한 가치갈등을 낳을수 있는 것으로 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초과 의무적행위’로 볼수 있다. (박효종, 2004.2.5, 국가보훈처)

  즉 ‘친구를 위해서 죽으면 최고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친구를 위해 죽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수 없는것처럼, 조국을 위해서 죽는 것은 숭고한 애국행위 이지만 조국을 위해 죽는 행위처럼 엄청난 희생을 치르지 않는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집안을 생각한다면 조국을 위하여 죽지 않을 이유가 있고 또한 죽지 않는다고 해도 도덕적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사회적인 눈총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국을 위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헌신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값진 희생으로 자리매김할수 있다’고 하여 애국적 헌신행위에 대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초과의무적 행위인 위국헌신의 행위는 간단하게 이루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애국적 헌신행위는 개인의 노력의 차원을 넘어서는 ‘공공재(Public goods)’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국민정신으로 체화되었을때 발휘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