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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동빈
작성일 2009-03-31 (화) 18:33
ㆍ조회: 451  
IP: 211.xxx.123
세계 최강 대한민국 예비군
세계 최강 예비군- 대한민국 예비군,
                                                        

                                                                    --  
제 1 편


한국 남성으로서 군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다 경험하는

예비군 , 왜 예비 군복만 입으면 X판을 치고 싶을까?



걸음 거리는 소 걸음이 되고, 복장은 되는대로 하고 싶고,

집합시키면 줄을 맞추고 싶은 생각은 싹  없어지고,

교관의 딱딱한 말에는 무조건 하품만 나오고--



그러다 보니 예비군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저히 군사 조직이

아니라 오합지졸들이라고 자평하기도 하는데--



내가 예비군에 막 편입 되었을 때 예비군 버스 기사 아저씨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 50대 아저씨는 교육 시간에 몰래 소주 한잔 씩하고 얼굴이

불콰해서 차에 올라온 우리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 어이구! 인간들 ---- 그래도 군복을  입었으면 군인 흉내라도 내야지

   장개석 군대도 당신들 보다 나을 거야-- ”

알고 보니 그 분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다.



[그 무렵에 장개석 군대라는 말은 오합지졸 상태의 부대를
 일컫는
별명이었었다고 한다. 일본군의 영향인 듯하다.]



하긴 현역 때 칼 같은 군기 아래서 절도 있는 생활을 했던

우리 자신들도 꼴불견인 우리 너절한 모습을 보고 군기가

이렇게 없어 가지고  전쟁이 나면 예비군이 몇 백 만이 된들

어느 곳에 써먹을 것이냐고 마치 남의 나라 군대 보듯이 자조하듯이

뇌까리던 생각도 난다.



하지만 실전이 터지면 대한민국의 예비군들이 위에서 걱정하듯

정말 그런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일까?



그러나 ---그런 염려는 절대 없을 것이다.



전쟁 많이 해 본 이스라엘군에서는 예비역이 전투력의 중추다.

예비군의 진가는 특히 1973년 욤 키프르 전쟁 때 빛이 났다.

이스라엘 군 현역들이 아랍국들의 기습에 된통 얻어맞고 비틀거릴 때

새로 소집된 예비역들이 반격의 주역을 맡아서 전투의 양상을

거꾸로 바꾸어 놓았었다.



지난달 그 전투 성격에 논란이 많은 가자 지구 전투에서 예비군이

중요한 전투 후반에 투입되는 진행상황이 보인다.


욤 키프르 전쟁중 시나이 반격전. 수에즈  운하를 건너온
이집트 군을 이스라엘 군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영토로
들어가서 이집트 3군을 포위하는 작전으로 소집된 예비군 기갑부대가

큰 역할을 했다. 1분 25초 쯤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가  소집된
맹장 아리엘 샤론 장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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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이전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그 기술은 몸에 붙어버려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잊혀 지지가 않는 법이다.



패잔병 같은 차림새라고 복장을 말하고 군기를 말하지만 예비역이

군대에서 청춘을 보내며 몸에 익힌 전기는 조금의 교육으로도

금방 다시 되 살아 날 것이다.



예비군 한 사람 한 사람은 한 때는 그 내무반이나 부대에서 신병들에게

소 두목 의 카리스마로서 군림하던 조직‘원로’였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카리스마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 2년 넘게 익히고 닦은 전기와 리더십이 바탕이 되어 형성 된 것이다.



말 한바와 같이 사례 소개로서 한국 예비군의 숨은 실력을
증명해보이겠다.

여기 대한민국 예비군이 창설되고 반년도 안 된 40년 전인 1969년 가을,

실전에 투입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경상북도와

강원도 예비군의 대 활약을 소개한다.



말해 둘 것은 이들이 별다를 특수 훈련도 받지 않고 실전에

투입되었을 뿐더러 그들이 대적한 적들은 북한 군부가

북한군의 명예를 걸고 선발하고 육성해서 남파시킨

일기당천[一騎當千]의 특수 부대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드린다.



예비군은 한창 경제 개발에 몰두한 한국국민들에게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 도발했던 1.21사태가 방아쇠가 되었다.


124 부대의 김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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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습격조가 거의 소탕된 1968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 국방을 천명하고 그 해 4월1일 향토 예비군을 창설했다.



그리고 6개월 조금 넘어 1968년 10월31일 김일성은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을 통해 백두대간인 태백산맥에

무려 120명의 무장 간첩들을 또 다시 풀었다.



이하 그 당시의 명칭대로 무장 간첩들을 공산비적,

즉 공비[共匪]라고 부른다.



즉각 태백산맥은 삼엄한 전시체제가 되고 대부대가 동원되어

간첩들 소탕에 들어갔다.



현역들과 꼭 같이 실전에 동원되었던 지역 예비군들은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하자면 아래 전과표에서

무기라고는 기관총도 없고 심지어 수류탄도 없었던 예비군들이

단 M1 한 정으로 거둔 전과를 보시기 바란다.



정규군과 같이 당연히 상위에 당당히 랭크되어 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최강 예비군 대한민국 예비군이라고

붙인 것에 이의가 없으실 것이다.



울진 삼척지구 부대별 전과 기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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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산골 예비군 들이 펼친 대단한 활약은 같이 작전한 군부대나

언론, 기타 관계기관의 최고의 찬사를 받았을 뿐더러 언론과

전 국민들로부터 극찬과 열렬한 성원이 쏟아졌다.



이미 그해 초, 엉성한 기획으로 청와대를 습격하겠다고

31명의 김 신조 일당을 동원했다가 전멸 당하고도 아직도 유격대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북한은 10 개월 뒤인 1968년 10월 31일과

사이 11월 1일,이틀 간에 걸쳐 간첩 모선에서 발진했던

8척의 고무보트를 탄 15명 한 팀의 여덟 개 팀 120명 간첩들이

경북 울진과 그 바로 도 경계선 넘어 강원도 삼척군에

상륙하여 태백산맥으로 숨어들어갔다.



나는 이들 울진 삼척지역 간첩들은  김일성이가 직접 남파를
지시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다가 1.21 사태가 났고 그 도발도 대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도발은 절정을 이룬 울진 삼척의 공비 침투사건으로 이어졌다.


김일성은 그 절정을 이룬 도발을 또 다시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만주와 지형이 만주와 비슷한  태백산맥으로 겨냥했다.



침투 간첩들의 주어진 업무는 태백산맥에 주민들을 포섭해서

공산 혁명지의 근거지가 될 촌락들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 무렵 대한민국의 이성이 있던 사람들이 들었다면 김일성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을 것이다.



아무리 우둔해도 그 무렵의 남한 사정을 아는 대남 공작 책임자라면

이런 꿈같은 생각을 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인의 장막에 쌓여서 현실 감각이 둔해진 김일성만이 한국이

아직도 한국 전쟁 전후의 지리산 지역에서와 같이 빨치산 행동이

가능했다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명명백백한 물적 증거가 있다.



공비 작전 중이던 1968년 11월 8일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하던

공수특전사 부대는 100미터 높이의 험한 절벽지대 천연동굴에서

은신하던 공비들의 심한 사격을 받았다.



즉각 교전에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총격을 주고받다가

6명을 사살하고 이들이 숨어있던 접근 불가의 동굴 속에서

한 트럭분의 기관단총, 탄약, 식량, 옷가지 발견했다.



이것은 이번 침투를 하던 간첩이 아니라

이미 더 이른 시기에 다른 간첩들에 의해서 근거지가 마련되면

인원들을 무장할 목적으로 미리 운반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울진 삼척 공비 침투사건은 김일성이가 노망기가 발동해서

즉흥적으로 지시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남한 침투 계획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남한 농민들을 세뇌하고 교도해서 사상을 바꾸어서 전략촌을

구축하고 이들을 모택동이 지도했던 팔로군이나 베트콩 부대를

만들어서 군사 봉기를 시도해보겠다는 흑심을 빤하게 보여주는

막대한 무기라고 하겠다.



이들의 시도가 얼마나 계산 착오였는지를 짐작 할만하다.

한국군은 김일성이가 빨치산이니 유격대니 하고 장난을 치던
물 좋았던
시절인 한국 전쟁 전의 빈약한 10만
군대  시절이 아니었다.

69년의 한국군은 세계 굴지의 70만 대군으로 확장되어 있어서
토벌 군사력이 비교도 안 되게 강화되어 있었다.



더구나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와 김일성의 침략,살육, 약탈,
개인 숭배, 일가 독재등의 못 된 행실머리가
모조리 폭로되어
남한 사회에서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평판은 엄청나게 나빠졌었다.


공산주의가 도저히 입에 댈수 없는 불량식품이라는 것을
그 최고 고객층이었을  남한 극빈층들에
까지 몸으로 가르쳐 준
인간이 불량식품 제조업자인  김일성 일당이었다.


공비들이 발을 못붙이게 하는 안 좋은 남한 상황들은 더 많았다.
매일 국내외의 정치판세와 북한과 공산주의 실상을 물처럼 쏟아내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산간 농촌 어지간한 집에 보급이 되었을 때니

아무리 시골 산간 마을의 화전민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환하게

알고 있을 때이다.



그 무렵 시골의 여론을 주도하던 젊은 남자들은

전방에서 군복무하며 북한의 실상을 교육 받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북한 선전이나 세뇌는 씨도 먹여 들어가지가 않았다.



이런 곳에 시대착오적인 늙은 김일성의 판단에 따라

무장 공비 떼가 풀어졌던 것이다.



인민이 물이라면 공비들은 물고기라고 모택동이 말했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인민이 물은 물이었다.


김일성의 남한 적화 욕심에는 중국을 다 차지했던
모택동에 대한 콤프렉스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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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비들이 무얼 모르는 어미가 풀어놓은 순진한 올챙이였다면

남한 인민의 바다는 그 올챙이들이 당장 죽일 만큼
엄청나게 짠물이었다.



물이라던 인민들이 그들을 거부하고 그 생업에 종사하던 인민들이

반기지 않는 물에 뛰어든 올챙이 떼 섬멸에 앞장섰다.

미리 밝히지만 사살한 간첩들의 90%가 바로 주민들 신고로

펼쳐진 작전에 의해 사살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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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비들의 침투를 살펴보자

침투 간첩들은 3차에 걸쳐 한국 동해안 경북 울진 삼척지구

강원도 삼척지구에 고무보트를  타고 침투했다.



삼척지역는 1군 산하인 38사단 지역이었고 울진 지역은 2군 관할로

36사단 지역이었는데 최초 침투조 30명이 한 개조 15명씩, 두 척의

고무보트에 나누어 타고 10월 30일 울진 북면 나곡리에 침투했고 

2차 침투조 30명은  11월1일, 역시 고무보트를 타고 같은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침투했었다.



나머지 60명은 11월 2일 강원도로 바뀌어서 삼척군 원덕면 월촌리

고포 마을에 네 척의 고무보트를 타고 침투했다.



첫 두 번의 침투조는 초소가 없는 2군 지역이었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으나 삼척에 침투했던 마지막 조 60명은 초소에 발견이 되었으나

초병의 허위 보고와 중대장의 보고 묵살로 무사히 침투에 성공하였다.



공비들은 북한 민족 보위성 정찰국 산하 124군부대 소속으로서 부국장

지시로 평양 인근 비밀기지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고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다시 3개월간 강도높은 훈련을 더 받은 뒤에 10월 30일
간첩선을 타고 출발했다.



이 때 정찰국장 중장 김 정태가 배에 직접 올라와 격려와 지령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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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는 앞에서 말 한대로 1.21사태 때도 출발하는 김 신조
부대에게도
작전명령을 전달했던 인간이다.



그의 책임 하에 1.21 침투가 주도되었으면 목이 열 개가 있었어도

부족했을 책임 추궁을 당했을 텐데 멀쩡했던 것은 누가 1.21사태를

주도했는지를 알만하다.



대남 공작의 일선 책임자가 김 정태인데 그가 1.21청와대

기습을 기획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처절한 실패로· 끝났던 그

책임도 지지 않고 그보다도 더 위험성 큰 이런 작전은 지휘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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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로 향하는 침투 부대에 내려진 지령은 이랬다.



1.지하당을 조직하라.

2.해방촌을 구축하라.

3.양민을 포섭하여 대동 월북하라.

4.각종 태업 및 유격활동을 전개하라.

5.민중 봉기를 위한 선전활동을 하라.



결과를 보면 위의 지령은 김일성이 꿈도 야무지게

꾸고 김칫국부터 마시고 작성했음을 알 수가 있다.



침투에 성공한 공비들은 며칠 뒤 남한 무대에 데뷔했다.

이름아이콘 홍진흠
2009-04-01 00:32
역시 예비군중대장을 역임하신 박동빈님답게 예비군에 대해선
꽉 잡고 계시군요. 역사적인 사실과 좋은자료 감사합니다.7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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