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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석
작성일 2009-04-07 (화) 14:25
ㆍ조회: 903  
IP: 59.xxx.139
보훈처자유게시판 글입니다.
제목 어느 공상군경이 고엽제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내용 .

어느 공상군경이 고엽제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진짜사나이이신 왕년의 람보 한분이 고인이 되신 글과,

고엽제에 전반에 대한 글을 드리는 것이니,

이 글은 전공상 군경 및 6,25든 월남이든 참전을 하고 않하고를 떠나서

보훈가족이라면 누구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읽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은 보훈지킴이 대표이기 전에 인간 이경현이라는 개인의 글이기도

합니다.



오늘 대전(신탄진) 보훈병원을 다녀 왔습니다.

2008년 12월 24일 국가보훈처의 청와대 업무보고인

"선진보훈체계구축"을 계기로 필자인 저는 국가보훈을 지킨다는 기치를 들고

그간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보훈지킴이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이곳 저곳 제가 부족한 지식을 채우려고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던중 작년에 제가 6급 1항에서 5급 승급 심사하러 대전 보훈병원을

가서 만난 자칭 자신이 진짜 람보라고 하시던 고엽제 선배가 기억이 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얼마전에 대전 보훈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여 문병차

또 정보를 얻고자 하여 찿아 뵌적이 있습니다.

어제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없는 번호라고 하여 이상하다 싶어 물어 물어 자택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하늘나라로 돌아 가셨다고 하더군요.

하여,

그 분의 체취가 묻어 있는 신탄진 보훈병원 병실과 빈 영안실을 찾아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만,

그 분이 고엽제 의증이라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안장을 못하시여,

왠지 제가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묘소도 가까운 곳에 모셨다고 하셨는데,

유족도 만나기 송구스럽고,

빈소도 찿지 못하면서 죄스러움을 이 글로 대신 합니다.



이 글을 다녀 오자마자 급하게 작성하였으므로,

적잖게 오탈자가 있어도 양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으시기 전에,


펜타곤 지령(Pentagon paper)

펜타곤은 미국 국방부(國防部)의 속칭어로서,

미국 육,해,공군 3부를 통합한 최고 군사기관이며,

청사가 오각형 건물인 데서 펜타곤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정식명칭은 Department of National Defence입니다.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대통령 직속으로 3군 최고사령관인 국방부장관이 통제하고 있고,

국방부장관의 그 명령을 통칭 펜타곤 페이퍼,

또는 펜타곤 지령(Pentagon paper)이라 합니다.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 1916년생)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여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교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40년 이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제 2차세계 대전중에는 공군의 자료, 인력 등을 통제하기 위한 통계체계의

발전에 관하여 연구하고,

전세계에 배치되어 있는 미 공군에다 이 체계를 적용하였으며,

1946년 포드자동차회사에 입사하여 부사장, 총지배인을 거쳐 1960년

사장이 되었고,

1961년 케네디대통령에 의하여 국방장관에 임명되어 정책결정에 체계

분석을 적용하였습니다.

핵무기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핵개발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통합

하고자 하였으며,

케네디대통령과 케네디 암살 이후 당시 부통령이였던 존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가장 유력한 자문역으로 국내정치에 큰 영향을 발휘하였습니다.

군부내에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고자 하였으며,

베트남전쟁은 그가 시작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숙제로서,

1964년경에는 베트남전쟁은 맥나마라의 전쟁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많은 나라의 세계 역사서에는 베트남전쟁은 맥나마라 라는 인간이 만든

전쟁으로 기술되어 있고,

1967년에 국방장관을 사임하였으나,

1968년 세계은행 총재에 취임하여 1981년까지 재직하였으면서,

어리석은 천재이면서 아직까지도 생존하고 있고,

5년전에는 늙은 나이에 18세 연하의 이탈리아 미인과 결혼하여,

현재 93세로 100수를 가깝게 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는 베트남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를 뒤바꾼 미국의 실업가 또는 정치가입니다.



얼마전에 보훈지킴이 대표인 저는 고엽제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드린다고

밝힌바 있어,

이 기회에 짧은 식견으로 몆자 적고자 자판을 잡았습니만,

필자인 제게는 대다수 선배격인 월남참전 및 고엽제 후유증, 의증분들을

두고 감히 어찌 고엽제 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옵기에,

많은 부분이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고,

또한,

상당 부분은 당사자들이신 고엽제 선배님들을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만,

저도 이 계기로 더 공부를 한다는 차원에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니,

실전과 실무로 체험하신 선배님들의 고견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장드라이브 정책에 떠밀려 지금까지도 외면하고 엉망이된,

월남참전과 고엽제에 소외된 국가보훈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여러 선배님들의 생생했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둔 고견을 받고자

하오니,

제가 소홀했고 부족했던 부분은 기탄없이 댓글로서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작년 2008년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 4162달러(1621만원)로 국민소득

통계가 처음 작성된 1953년의 67달러(2000원)에 비해 211배 증가했고,

IMF통계 수치로는 1만 9800달러로서 세계 국가경쟁력 12위 현재의 위상을

갖은 대한민국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그 당시.....

매년 이쯤이면 보릿고개로 배고프던 시절에 당시도 국민소득은 지금의

170분지 1수준으로,

당시 세계 198개국중 192위로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빈곤

국가였고,

북한의 국민소득 670불 절반도 않되었던 254달러로 가난했던 이 나라...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는 작고 인구만 많은 그런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였지만,

모두가 팔자요 운명이려니 하고 순응하고 살았던 그 시절.....

그 시대의 여성들은 머리를 끊어 가발을 만들고,

청개천에서 탱크와 비행기가 조립된다던 그곳에서 2단 3단 칸막이에

반강제로 갇혀 재봉틀과 싸움하고,

반평공간에서 셈방기계를 돌려야 했던 그시절을 견디다가 그후 1970년

11월 13일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하며,

전태열 열사가 분신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서독광부며 간호사로 인력수출을 하며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던,

이나라에서,

월남파병은 1964년 9월 제 1이동외과병원 병력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의 파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65년 후방지원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전투부대인 육군 맹호부대와 해병

청룡부대가 파병되었고,

1966년에는 브라운 각서의 조인으로 백마부대가 추가 파병되어 월남참전

8년간 총 31만 2853명의 병력이 파견되었으며,

사실상,

월남파병은 조약상의 자유수호라는 의무에서가 아니라,

미국측이 파병의 대가로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차관

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고,

미국이 한국군을 참전시킨 이유는 1차적으로 미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던 반전여론을 무마시키고자 미국군 봉급의 1/3 수준인 한국군을

전선에 투입함으로써 전비절감을 꾀하고자 한 계산에서였습니다.

한국은 월남파병을 통해 이루어진 외화획득으로 경제개발에 기여한

측면도 크고,

6,25참전 이후 실전이 없어 전투력 약화를 보강하는 실전경험과 막강한

군비증강 및 병기,병참물자 확보로 북한에 3분지 1 수준뿐이 않되었던

한국군 군사력이 73년 철군후에는 공군력 해군력을 빼고 육군의 군사력은

대등소이할 정도로 군사력을 갖추었으나,

얻은 것 이상 잃은 것 또한 얼마입니까?

국방부 발표 전사자 5068명,

국방부 발표로는 단한명의 실종자도 없고 포로도 없는 이상한 전쟁!

고엽제 후유증 포함 전상자 5만여명중 생존 4만명 추산.

후유의증을 4만여명을 포함하면,

약 9만명.

후유증,의증 비해당 4만여명 포함 13만여명?

당시 젊은이들의 희생과 고엽제(枯葉劑)에 의한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

하였지만,

그 때만해도 수출주위 국가주도 정책에서 고엽제라는 증상은 철저히 외면

되었으며,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고엽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밀림이나 논밭에 대량

으로 공중살포된,

제초제 가운데 극독물인 TCDD를 함유한 2·4·5 T(트리클로로페닐)

즉,

오렌지쥬스라고 불려졌던 다이옥신 제초제로서,

그 더운 월남전선에서는 그 제초제가 위험한 물질이라고 지휘부 차원의

경고 또는 주위를 요하는 누구하나 지휘서신이 없었으며,

1969년 TCDD가 기형이나 암을 유발시킨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증명

되고나서 부터 1971년 정식 지휘서신으로 각 참전부대에 고엽제 피폭을

피하라고 예방에 대한 형식적인 정신교육만 하였으며,

사실상,

당시 더위에 지친 우리 한국군 병사들은 하늘에서 오렌지 쥬스가 떨어진

다고 하며,

그 고엽제 액체를 일부러 시원스럽게 맞으며 샤워를 하는 그런 오류를

모르고 체감을 하였습니다.

그 후 전후(戰後)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고엽제의 영향으로 보이는 사산, 유산, 기형아의 출산이 격증

하였고,

미국에서도 1984년 베트남 종군병사들이 고엽작전으로 육체적 장애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어 모두 화학전

피폭으로 인정하여 전상군경으로 모두 등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잘난 대한민국은 아직도 고엽제 또는 고엽제로 의심되는 의증 이라는

아주 괴상망측한 용어를 사용하며,

세계 어느나라도 없는 화학전 피폭 부상이 아닌 고엽제환자 라는 신용어을

이름붙여 미국이 베트남 국가에 고엽제 살포로 인한 전쟁배상 당사국

으로서의 의학적으로 인정되어 베트남 정부에 보상하는 13개 항목만을

인정,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라는 당국은 그 13개 항목은 전상으로 처리하고,

남어지 21개 항목은 의심만 된다고 하여,

고도, 중증도, 경도로 분류하여 코끼리 비스켓도 않되는 보상금으로

생색을 내면서,

그나마 매번 한시법을 적용하여 연장하면서 현재는 2012년 12월 31일까지

기한을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한시법 또한 언제 어느때 사라져 국가보훈처가 폐기시켜서 그야말로

보건복지부로 동지님들을 모두 내던져 내몰지 하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정부로 부터 버림받고 외면된 월남전 악몽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월남전이 끝난지도 어언 35년,

그 시대 이역만리 월남땅으로 자유수호라는 미명하에 파월되였던,

그 젊으나 젊었던 청춘들은 이제 대다수 인생 60을 넘기는 황혼기에 접어

들었고,

9만 고엽제 보훈가족 여러분의 한을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숙원사업을

풀지 못했음을 아쉬워 하지만,

각 고엽제 관련 사이트를 들어가 제가 정보 좀 얻으려 치면,

그 정보의 개연성이나 정보의 가치 모두가 획일화 되어 사실상 정보라 할

수도 없이 그저 아우성에 불과한 글 뿐이였으므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저는 고엽제 당사자도 아닌 공상군경 5급입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고엽제에 관한 짧은 지식과,

제가 웹사이트 검색으로 얻은 지식을 총망라 하였고,

미국 백악관(http://www.whitehouse.gov/)에 질의한 고엽제에 관한 답변서.

미국 보훈부(http://www.va.gov/)등 국방부 및 보건부등,

웹사이트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의 근본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비교 분석하다가,

미국 국무부(http://travel.state.gov/)에서 베트남 정부에 고엽제에 관한

보상건에서 맥나마라에 관한 이상한 것을 찿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통킹만사건 이후 여러분도 아실 1966년 3월 7일 주한미국대사

브라운(W.G. brown)의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측의 보상

조치를 약속한 14개항 문서를 잘 알 것입니다.

다시 상기를 시켜 드려 말씀드린다면,

14개 항 문서 주요 내용은,

1. 추가파병에 따른 비용은 미국정부가 부담한다.

2. 한국군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를 현대화한다.

3. 베트남 주둔 한국군을 위한 물자와 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조달한다.

4. 베트남에서의 각종 건설,구호사업에 한국인 업자를 참여시킨다.

5. 미국은 한국에 추가로 국제개발처(AID)차관과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베트남과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증대를 위한 차관을 추가 대여하며,

---기타 경제개발에 쓰기 위한 신규차관을 제공한다.

7. 한국의 탄약생산 증가에 필요한 자재를 제공한다.

라는 위 14개 항목 입니다.


여러분!

다규멘터리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

임박한 묵시록(Apocalypse Soon)등으로 잘 알려진 맥나마라(미 국방장관

1961년~68년:McNamara, Robert Strange)를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전쟁을 총지휘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얼마전 88세의 나이에 새 장가를 들어 화제가 되었던 왕년의 전쟁광이며,

존 F 케네디 행정부 시절 포드자동차 CEO 출신인 맥나마라는 당시 컴퓨터

장관으로 불렸고,

40대 장관으로서 "전쟁은 대통령의 전권"이라고 선언하며,

전쟁을 자신의 게임으로 즐긴다는 치밀한 논리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50, 60대 장군들을 압도하면서 마치 현대판 "카이사르(Caesar:로마 황제)"

이며 "시저"라고 하였습니다.

식민지이였던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물러가자 태평양 방어권 확보에 불안

해진 미국은 1964년 2월 1일부터 맥나마라의 지시에 의한 고도의 작전이

전개 되었고,

그것이 1964년 8월 맥나마라의 작전인,

일명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Resolution)을 만들게 됩니다.

베트남 동해 통킹만에서 미국 구축함이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

다면서 조작을 하여 미국 공군이 북베트남의 연안기지를 폭격하고,

당시 미국 존슨대통령이 전쟁수행 권한을 미 의회에 요구하고,

승인을 얻어 이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대의명분을 얻어 북베트남을 폭격하고 지상군을 대량 파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호와 터너 조이호가 각각

1964년 8월 2일과 4일에 통킹만 공해상에서 초계(哨戒)중 각각 북베트남의

어뢰정 3척으로부터 공격받았다고 발표하였다고,

허위 날조로 조작하여 언론에 공개하여 이슈화 하였으며,

그러자 즉각,

북베트남 외무부는 매독스호가 북베트남 영해 내에서 북베트남 초계정을

포격하였다고 반박하였습니다.

후일 폭로된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 비밀보고서(펜타곤 페이퍼)에 의하면,

이미 맥나마라 작전에 의한 1964년 2월 1일부터 사이공의 미 군사원조

군사령관의 지휘아래 "34-A작전계획"이라는 북베트남에 대한 광범위한

비밀작전이 발동되고 있었고,

이 통킹만 사건을 시비로 각종 군사정보수집, 공중 파괴활동, 연안시설의

포격으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는 북베트남 경제의 핵심부를 파괴한다는 일명 "선전포고 없는

공격"으로 맥나마라의 기만전술 이었습니다.

이 통킹만 사건은 맥나마라의 천재와 같은 작전의 일환으로 일으킨 사건

이었으나,

후일 이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을 자국의 전략권지역으로 확보하려고

처음부터 의도된 계획이였기에,

어리석은 천재 맥나마라의 전술은 미국 역사상 첫패배를 불러온 악몽의

시작이였습니다.

이점이 국가보훈처도 모르는,

나중에 필자가 공개할 중요한 고엽제 보상문제에 연관되는 미국은 베트남

전쟁배상 해당 당사국이 됩니다.



보훈지킴이 대표인 저는 반듯이 밝힐 것입니다.

브라운 각서 외에 박대통령과 맥나마라와의 밀약으로,

월남참전자들의 목숨을 담보로한 미국 국방부와의 뒷거래 사실여부와

또한,

전두환정권과 미국정부와 고엽제 문제를 정부 외교관계가 아닌,

미국 전략물자 산업체인 민간 고엽제 생산회사와의 뒷거래 처리로

거액의 정치자금만 챙기고,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간에 외교적 고엽제 보상문제를 덮었다는 사실들을....

정보공개 요청 및 소송을 해서라도 은폐된 것을 찿아 낼 것입니다.

만약,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이 미국의 민간 고엽제 회사와 거래를 했다면,

32만에 달하는 월남참전자들의 이름으로 처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대전보훈병원을 다녀 왔습니다.

필자인 저는 가끔 보훈병원을 찾아가면은 정말 기겁을 합니다.

서울 보훈병원은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제법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전보훈병원이라는 곳은 상이군경에게는 현대판 마루타 실습소이며,

고엽제 동지님들은 영안실 대기소라고 통칭을 하고 싶습니다.

의사들 수준이 인턴과정이나 제대로 밟고 온 의사들인지 모르나,

군통합병원 군의관 수준도 못되고,

그나마 각 과별로 텅비어 젊은의사가 과장 노릇을하고,

그 젊은 의사도 없는 곳은 의생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거나,

그마져도 자리가 비어 없는 곳이 수두룩하니,

군국주의 시절 만주에서 왜놈들이 운영하던 731부대 보다 못한 마루타

실습소가 아닌가 하는 것이며,

고엽제 동지님들은,

병실이나 집에서 잘 지내다가 갑짜기 응급실로 가면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하고 영안실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하니,

영안실 대기소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상이군경 분들은 그래도 덜 합니다.

고엽제 동지님들이 매번 식사후 약 한컵에 물 한컵이라는 말 이 말씀이

거짓말 같습니까?

이런 알 수도 없는 독한 약들을 병마의 고통과 싸우느라 억지로 털어넣어

면역이 되어 듣지도 않으며,

위장과 간장은 이미 걸래가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감에도,

이 잘난 나라에서 국운에 목숨을 걸고 충성을 한 댓가는 이 지경인데도,

이놈의 국가보훈처는 따른나라 국가보훈처인지 관심조차 없습니다.

저는 보훈병원 병실 문병차 또는 방문차 가기가 이제는 두렵습니다.

얼마전에 뵙고 밝게 웃으시며 받기시던 고엽제 선배님이 국가보훈을

위하여 정말 애써줘서 고맙다고 하신 분이 연락이 되지않아,

오늘 대전병원을 갔더니,

벌써 여러날이 되어,

이미 영안실에서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떠나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씀 한마디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만,

그 선배님.....

63년의 짧은 삶!

이 잘난 나라 국가보훈처에서 만족한 예우를 받고는 가셨나요?

아마도,

버림을 받고 가셔서 하늘에서도 이 나라를 원망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이를 악물면서 그저 눈물만 흘릴 뿐,

그 선배님을 다시 못뵙는 것을 슬퍼할 수도 없답니다.

그저,

살아 남은 제가 죄송스러울 뿐이고,

명복만 빌 뿐......

그리고,

저주스러운 국가보훈 정책과 제도에 분노와 탄식만 할 뿐이랍니다.

다시 한번 추모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경현 배상.



아래는 참고하실 브라운각서와 사이밍턴 청문회 관련 보도내용입니다.
********************************************************************

"월남(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한국의 이득(1965∼1969)은 5억4천600만달러이며 이 것은 월남에 파병하지 않은 일본의 이득보다는 적고 자유중국(대만)의 그 것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이다".

이는 정부가 26일 공개한 베트남전 외교문서에 나온 기록으로, 1970년 사이밍턴 청문회 때 포터 주한미대사가 참전에 따른 한국의 경제적 이득을 설명한 대목이다.

이번 공개 문서에는 1966년 한국군의 추가파병 조건에 대한 양해사항을 담은 '브라운각서'의 이행 상황과 그 전모를 드러낸 1970년 2월 24∼26일 미 상원 사이밍턴 청문회 내용과 우리측 대응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브라운 각서의 정식 명칭은 '한국군 월남 증파에 따른 미국의 대한(對韓) 협조에 관한 주한미대사 공한(公翰)'이다. 미국이 추가 파병 조건으로 군사 및 경제원조 분야 16개항을 각서로 정리해 1966년 3월7일 브라운 대사를 통해 전달해 온 것이다.

애초 극비에 부쳐졌지만 조금씩 언론에 소개됐고 사이밍턴 청문회를 통해 '용병' 논란을 일으킨 한국군 해외근무수당의 실체도 드러났다.

청문회 결과가 6개월 뒤인 1970년 9월 제한적으로 공개되자 미국 언론들은 "미국은 한국군 5만명 파병에 5년간 10억달러 이상을 지출했는데 이는 브라운 각서에 따른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브라운각서 이행 평가를 보면 1969년 현재 군사분야 10개항에 있어서는 대부분 90%를 웃돌았고 조병창 확장과 통신시설, 복지지설 등과 근무수당 및 전사상자 보상금은 100%로 돼 있지만 우리측 해석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음은 우리측이 평가한 브라운각서의 주요 이행결과와 사이밍턴 청문회 내용.

◇ 브라운 각서

▲근무수당 타국 비해 지나치게 염가 = 파병 한국 장병에게 지불되는 근무수당의 재원을 부담하는 것이다. 1969년 11월30일까지 1억2천722만5천 달러가 지불됐지만 이는 타국에 비해 너무 싼 금액으로 파월 대가로는 최소한이며 필수적이었다.

▲파월 전사상자 보상금 지불 = 미국은 1969년 11월 30일 현재 전사자 3천257명에게 15억103만6천320원을, 전상자 4천293명에게 14억920만4천360원을 각각 지불했다. 총액은 29억1천24만680원이었다.

그러나 유족연금과 상이연금 등 연금과 자립금은 한국이 부담했다. 연금과 자립금의 한국 부담액은 당시까지 21억1천여만원(730만달러), 20년을 가정한 장래 부담은 무려 58억4천여만원(2천15만달러)로 계산됐다.

▲장비현대화는 정상 군원으로 지원 = 미 합동군사고문단이 제시한 품목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6천100만달러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특별자금 계통으로 별도 계정으로 지출된 게 아니고 1966,1967 회계연도 정상 군원(軍援.군사원조)에 의해 지원된 만큼 브라운각서의 기여도를 뚜렷이 구분하기 어렵다.

▲증편부대 장비는 필연적 수반사항 = 비둘기 및 맹호부대 파월에 이어 증파된 맹호부대 26연대, 백마부대 및 지원부대에 필요한 장비로 855만달러 어치가 정상 군원에서 추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는 파월 증편부대 장비인 만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어서 국내 한국군 전투력 증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창설부대 장비는 부족분 대체 = 추가 파월된 병력이 휴대한 장비를 완전히 대체할 창설부대 장비로 2천420만달러가 도입됐다. 이는 파월에 따라 생기는 부족분을 대체한 것이다.

▲대간첩 장비도 정상 군원으로 지원 = 544만달러 상당의 대간첩 장비가 충당됐지만 이는 장비현대화와 마찬가지로 정상 군원에 포함돼 브라운각서 명목과 뚜렷이 분리하기 곤란한 조항이다.

▲C-54수송기 4대와 복지시설 = 주월 한국군 부대 소송을 지원키 위해 지원된 C-54는 대당 12만달러, 총 56만달러에 해당하지만 한국군 철수 후에도 우리측에 이관되지 않는 한 국내 수송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없을 것이다.

막사, 숙소, 식당, 위생 및 오락시설 등 복지시설 개선에 필요한 금액 128만6천 달러를 제공받았지만 지원금 출저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계획 잉여물자 매각대금에서 지원된 것이다.



◇ 사이밍턴 청문회

▲"한국은 수당을 제3국과 비교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 풀브라이트 의원이 " 한국군이 (베트남전) 전투수당을 받지 않아도 파견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미 행정부는 "한국 정부는 필요한 경비를 자비 부담할 능력이 없다"며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bribe(미끼.포섭수단)가 아니고 필요한 보상"이라고 했다.

미 정부는 이어 "한국 정부는 경제자립 등 능력이 증대되면 관련 비용을 자담 (自擔)할 의도임을 누차 설명해왔다"고 설명했고 당시 포터 주한미대사는 "한국 정부는 파병이 결정된 이후 제3국과 비교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측은 수당지급을 비밀에 부친 이유에 대해서는 필리핀과 태국 등 다른 나라와의 교섭을 고려해서라고 설명했다.

또 주월 미군의 1인당 비용은 1만3천달러인 반면 한국군은 5천달러이며 필리핀 비전투원은 7천달러 수준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포터 대사는 "월남 파병으로 인한 한국의 이득(1965∼1969)은 5억4천600만달러이며 이는 한국전쟁 때 일본이 얻은 이득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월남에 파병하지 않은 일본의 이득보다는 적도 자유중국의 그 것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파견경위에 대해서 미 행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한국에 문서로 정식 요청했고 미국은 구두로 요청했다고 답했다. 또 한국이 파병 동기는 1965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의 환송사를 인용, 고귀한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감축문제 검토 진행 중" = 미 정부는 "왜 미군 1개 사단을 철수할 수 없느냐"는 의회 질문에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검토가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의회 쪽에서 "왜 싸우지도 않으면서 주둔시키느냐"고 묻자 포터 대사는 "조급한 철수가 전쟁 참화를 초래한 경험을 갖고 있기에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했다.

풀브라이트 의원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폐지를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했고 정부측에서는 "그 것은 김일성 (주석)이 무력으로 목적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답했다.

이어 남한의 실력이 북한보다 우월한데 감히 침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북의 공군력이 우세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풀브라이트 의원이 "팬톰 제트기 100여대면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묻자 정부측에는 "현대화의 문제"라며 "한국군 현대화가 끝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측은 또 "미군 주둔은 한국민의 사기를 높여주고 북의 남침 기도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으며 한국으로 하여금 자중토록 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 상당 기간 적정 수준의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핵무기 한국내 저장에 대해 박 대통령과 토의한 적 없다" = 의회측이 한국내 핵무기 저장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를 묻자 포터 대사는 "핵무기를 환영하지 않는 나라가 많지만 공동이익을 위해 미국이 필요로 한다면 핵무기의 한국 내 저장을 허용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말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핵무기의 한국내 저장에 대해 박 대통령과 토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없다"며 "핵무기에 관해서는 상부로부터 증언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어 더 이상 언급할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또 핵무기에 대한 유엔의 입장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설명만을 한 뒤 "한국내 핵무기 사용 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름 이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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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06 오후 7: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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