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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6-11 (금) 15:31
ㆍ조회: 513  
IP: 221.xxx.232
베트남戰, 전우회生成 배경 과 略史.. 그리고 현재!

戰友會 生成 背景과 略史

生成 背景

월남참전 유공자들의 전우회 단체 태동은 서울에서 1967년 맹호, 비둘기, 청룡, 백마부대 등 1진으로 귀국한 전우들이 장충단 소재 구 재향군인회의 방 한 칸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하여 10여 년간 활동을 지속하다가(역대회장: 이재혁, 김성찬, 김성환, 강종건, 최대명장군, 강원채장군, 홍기경제독. 최대명 재임. 간부 : 유충렬, 윤종석, 홍태수 홍영욱 등) 80년 새롭게 출발한 신 군부의 사회정화 명분을 내세운 단체해산 조치로 아쉬움 속에서 무산되었다. (당시 채명신사령관은 “나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꼭 있으면서 열심히 해달라”는 애정 어린 당부를 남기시고 외국대사로 나가셨다.)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노태우 정권 수립과 동시에 단체활동이 재개되자 지방에서는 부산, 경남(강충걸, 안희웅, 김일근, 성용국, 황문길, 김영민, 오승렬 등) 대구, 경북(윤정길, 소장춘, 최성훈) 대전, 충남(송병건, 도경환, 김흔기, 구신환 이대범, 신인중, 이기철 등) 충북(임충식, 이봉구 이상문 등) 충남(구신환, 광주 전남(이기철, 구평서 김수련 김삼낭 등) 전북(김영옥, 현금남, 이찬호, 김석호) 경인지구(김장부, 정호상) 강원(김수찬, 최병돈)등 전국 각지 면면 촌촌에서 혹은 크게 혹은 작게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그 외 다수) 그 와중에 서울의 중앙차원 조직은 미묘하게도 우리 전우에 의해서가아니라 출판업자였던 전우가족 김두호씨에 의해서 본격적인 출범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두호씨의 말에 의하면(1988년 1월 면담)”월남전이 끝나고도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기 위해 10여 년간 각 군 기관에 수소문하며 월남전에 얽힌 엄청난 역사에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직업의식에 따라 한국군의 참전역사를 설화식(說話式)으로 엮어 발간하면 참전자들에게는 꼭 소장하고 싶은 책으로 판매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某 참전 문인에게 저술을 의뢰하여 파월 한국군전사(10권 부록1책)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의 주 판매대상인 참전자들을 찾기 위해 전국의 초등학교 학생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 명단과 주소록을 작성하니 그 숫자가 엄청났고 이들을 통해 군소 모임도 속속 들어났다. (당시는 정확한 통계숫자가 전혀 없었다)

그는 또 도서를 판매함에 있어 능률을 높이기 위해 판매대금의 10%를 적립하여 월남참전 기념탑을 세우겠다고 홍보하니 반응이 매우 좋았다. 김두호씨는 이미 그때 기념탑 조감도를 위시하여 파악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조직을 출범시킬 만큼 기초 작업을 상당히 진전시켜놓고 있었다. 그는 효과적인 도서구입 회원관리를 위해 몇몇 전우를 영입하여 사업에 참여케 하고 다수의 참전자 들을 초청하여 홍보 이벤트를 열었는데, 이것이 프레스 센터의「따이한 클럽」결성식(1988년 12월)이다. 이 행사는 전국 형 전우단체 태동의 시초로써 戰友史에 기록되고 있다. 전우언론은 이 행사 이전에 이미 종암동의 김씨 사무실에서 발간되었으니 서울에서는 단체보다 언론이 선도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略史

1988년 10월 19일 : 따이한 新報 창간__-전우 언론의 효시
초대 발행인 석정원. 편집인 이양호
제2대 발행인 남정면
※ 그 뒤 명멸한 전우언론 ― 충현신문, 평화공노신문, 전우신문, 참戰友 등

1. 1988년 12월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따이한 클럽」 창립식 ― 중앙 조직의 효시

2. 클럽에 참여한 전우들은 전국적인 호응이 열렬함을 확인하고 중앙조직을 모색하던 중 도서판매와 수금과정에서의 잡음이 일게 되자 이를 문제 삼아 김두호씨를 축출하고 ‘클럽’을 전우조직인 「따이한회」로 개칭하고 새 출발하면서 석정원전우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대대적인 전국규모의 결집행사 준비에 들어감

3. 1989년 4월 30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만남의 장 행사에 전국에서 5만여 명의 전우들이 운집, 열기 충천, 결속 다짐. 유학성 십자성부대장, 김상균 주월사 참모장, 강원채 야전사령관, 지갑종 의원(종군기자 출신) 등 내빈 다수 참석. 이 행사는 전우회사(史)에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응집력과 열기를 상징적으로 평가하며 일명‘4.30 대회’’보라매의 횃불’이라고도 일컬음.

대회준비 위원회는 재향군인회에서 1천만원, 한진구릅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았고 유봉길 대회준비위원장이 5천만원을 희사하여 대회를 성대히 거행함
● 유봉길 전우 4.30대회에서 따이한회 제2대 회장에 취임(석정원 이임)
― 석정원은 고문에 추대됨

4. 1989년 5월 - 4.30대회의 성황에 불구하고 행사진행과정에서 야기된 회계비리, 석정원 회장 퇴진 압력 등 불협화로 유봉길회장이 사임하고 회장선거를 실시한 결과 코미디언 신소걸전우가 당선되어 새 회장이 됨,

5, 1989년 7월 신소걸 따이한회 회장 불미스런 사건으로 구속됨
● 오오 아뿔싸! 전우회 양분 됨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일부 전우들이 따이한회를 탈퇴, 지방에서 기 히 조직의 모습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던 부산, 대구, 충북 충남, 전북, 전남 전우조직의 일부와 제휴하여 월남참전 전우회를 결성하고 사회단체로 등록하니 그 세가 만만치 않았고 이로써 지방조직까지 양분화 되었고 전우전체 조직은 두 개의 조직으로 나가게 되었음. 이들 분파는 장군을 회장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하여 李 某 (예)소장을 옹립하려 하자 따이한 회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쳤고 이장군이 후퇴하는 등 이 부분에서도 전우간의 갈등이 야기되었다.
● 월남참전전우회 유영송(예)대령 영입, 회장 선임, 남우성 사무총장 겸 서울시회장

6, 1989년 8월 ― 따이한회 황문길 경남도 지부장을 상경케 하여 궐위중인 중앙회장 대행 맡게 함(신소걸 옥중서명으로)

● 따이한신문사 발행인 교체
휴면상태의 신문 발행을 재개(편집국장 배정)하고 편집방향을 단체를 불구하고 전체전우의 대변지를 자임하고 양분된 단체회원간의 화합을 시도함

7, 1989년 12월 17일 월남참전 전몰용사 위령제 보라매공원에서 5천 位 위패를 설치하고 경건하고 성대한 위령제, 윤필용장군 大司祭 눈물 흘리며 추도사 낭독, 황문길회장 제수 및 행사비용 1억5천만원 투입, 떡 10가마니분을 참석자에 분배

8, 1990년 1월 맨하탄호텔 따이한회 대의원총회(황문길 대행 회장 선임)

9, 1990년 7월 좌경 언론 말誌 7월호(25일자 발행)에 월남 참전의의를 비하하고 파월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재미 언론인 김민웅의 기사를 접하고 따이한회는 전국규모의 말지 규탄시위 전개, 동년 8월 1개월간 지속, 국립묘지 참배 투쟁서약{남강시인 작 ‘임이여’ 詩 낭송(안승춘)} 보라매공원 및 서울역전시위 석정원, 강성환, 민영식 등 7명 삭발 혈서 후, 말지 사무실(마포) 공격

● 유가족, 미망인 합세 소복시위 전개
따이한 신문 호외 2차에 걸쳐 50만부 발간 전국에 배포“월남참전의의 재조명의 기회로 삼자”는 의도로 말지 규탄과 함께 참전공적, 의의 대서특필

10, 1990년~현재 파월전우단체 지역활동 괄목,
전우단체들은 범죄와의 전쟁, 사회 안녕 질서켐페인, 환경운동 불우이웃돕기 등에 괄목할 봉사활동을 전개했으며 특히 국가안보 측면에서는 참전용사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었는바 한 실례로 1990년 대구에서는 체제전복을 위한 한총련의 전국총회를 경북대학교교정에서 개최하려는 시도를 따이한회 경북지부(지부장 윤정길)회원들이 나서서무산시키는 쾌거를 세웠고 기타 사회봉사활동을 참작하여 윤정길회장은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동작구 지회, 마포지회 등이 사회봉사에 괄목할 수훈을 세웠다.

● 기념탑 건립
1973.3.16 제 85회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헌정사상 유래가 없는 「개선 파월국군장병에게 보내는 감사결의안」이 채택되고 이의 취지에 따른 각급지자체의 협력으로 참전명예를 선양해 기념탑을 속속 건립하고(논산, 김천, 하남, 의정부, 무주, 등등)
※ 현재도 진해 해참전우회(안진수)가 7억원 예산으로 건립공사 중

11, 1991년 따이한회 ― 파월유공전우회로 개칭 ― 참전유공자 개념 첫 도입

12, 1991년 9월 파월유공전우회 여의도 민족광장에서 제2회 ‘만남의 장’ 개최,3만 여명 운집, 대회경비 회장전담 : 1억여원

13, 1991년 10월 24일 월남참전전우회가 주축이 되어 채명신 초대사령관 모시고 단체통합을 명분으로 전국대의원대회 개최, 파월유공과 사전교감이 없어 불참으로 통합실패

●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성립, 채명신 사령관을 회장으로 추대,

● 채사령관 회장직 사의와 동시 박세직장군을 회장으로 천거, 대의원 찬동

― 박세직장군 회장 수락, 채 사령관 명예회장 추대
※ 박세직 회장의 당시 입장 : 박세직 장군은 전우회가 하나의 전우 결집체로 알고 회장에 취임했고 직후에 조직사항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양분 상태임을 알고서 전체 화합과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뜻이 성사되지 못하였음

14, 1991년 2월 따이한회 고엽제 자료(Agent Orange Fund)호주로부터 입수,(26일 호주 시드니 최영환발송) 미 재향 군인부 고엽제 Video Tape 입수따이한 신문 게재 5회 1992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사회문제화로 노출됨(이는 따이한회가 박내용 기자를 불러 인터뷰한 결과임)

●황문길회장 이상연 보훈처장관 대담 고엽제 대책 논의(인터뷰기사 게재)
― 보훈처 장규혁국장 외3명 미국에 자료 조사차 출장, 법제 기초자료 수집,

15, 1992년 4월 26일 박세직해참회장 국회의원 당선, 국회차원에서 파월전우 권익신장 노력,
● 박세직 해참회장 초청 국회의원 당선전우35명 축하 및 전우화합 모임“전우문제에는 여 야 없다” 다짐

16, 1993년 2월 27일 베트남 고엽제 국제세미나(한국, 일본, 베트남) 고엽제피해자전우회(이수만) 기독청년의료인회(전철수) 공동주최, 경실련 강당

17, 1993년 10월 국회 의원회관 박세직 해참회장(의원) 주최로‘한국의 월남참전과 역사적 재 조명’세미나 이기택, 정용석교수 등 유명학자 발표

18, 1994년 파월유공전우회 황문길회장 퇴임, 황명철부회장 회장에 선임
파월유공전우회 월남참전전우회로 명칭개정 (후에 월남참전유공연합회로 개칭)

19, 1998년 ? 월 한겨레신문사 발행 ‘주간 한겨레21’에 베트남 특파원 구수 정의 월남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 기사 게재 ― 이는 날조된 것이었으나 사회적 반향은 지대하였음
●한겨레신문사에 전우들 들어가 공격, 윤전기에 모래투입 사건발생

20, 2000년 12월 5일 은행연합회관에서 양민 학살론에 대한 토론회, 군사평론가 협회(박경석) 베트남진실위원회(이해동 강정구)’한국군의 베트남참전 재조명’좌파와 참전전우들과의 치열한 공방전, 채명신사령관 격노 “내가 이제 앞장서 싸우겠다”선포

※사령관의 敵戰宣布는 ‘월남’을 ‘베트남’으로 호칭을 변경한 ‘베트남참전전우회’ 탄생의 결정적 동기가 됨
― 채 사령관 주도로 단체설립 준비에 들어감 9인위원회, 조직평가단 가동.

21, 2002년 4월16일 양민학살론에 분개한 채명신 사령관 스스로 나서 전우단체를 통합 대 좌파투쟁을 위해 잠실 재향군인회관에서 베트남참전전우회 출범시킴
●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대부분과 여타 군소단체 합류했으나 월전은 기존 조직의 성과에 대한 인정과 지분문제 등 의견 상충으로 불참

22, 2002년 9월 22일 베참 대변지 참 戰友 창간

23, 2002년 ? 월 대한민국 인터넷 전우회 출범

24, 2004년 8월 31일 베참 및 월참 간부 주축으로 통합 재시도, 통합대회를 개최했으나 월전연합이 불참함으로써 통합무산

25, 2006년 현재 전우사회는 4분5열 되어 무수한 군소 단체가 간판을 걸고 사사로운 이익추구에 분방하고 있어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난맥상이며 기존 유수 단체조차 기진맥진하여 전우들의 소망에 부응할 활동능력을 상실한 채 명맥만유지하고 있는 식물조직과 같은 상태임, 명예는 갈수록 추락하고 권익 찾기는 더욱 멀어지고 있음, 전우들은 갈등과 한탄 속에서 뭉치지 못하고 누군가 무엇을 해 주기만 바라고 있는 안일 의타적 태도이거나 나 몰라라 하는 방관적 자세

●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체 전면에서 활동하던 전우들의 갈등이 깊어질 대로 심화 되어 참전 당시와 전우회 초창기에 뜨겁던 전우애는 사라지고 애증의 늪에 빠져 서로의 약점만을 말하고 헐뜯는 슬픈 현실을 보이고 있음
●2009년 7월 18일 동작동 현충원 앞 주차공원에서 베트남참전 서울시 기념탑 제막

 

-후기-

베트남참전 서울시 기념탑 제막식은 7월 18일을 월남참전 기념일로 한다는 고엽제단체의 규정에 따라 고엽제전우회 서울시지부 주관으로 거행되었다. 이 행사는 다른 단체는 호응하지 않는 가운데 고엽제 단체만의 단독행사로 장마철 폭우 속에 거행되어 베트남 전우사회의 슬픈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다른 단체에 비하면 그나마 참전탑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고엽제단체의 노고에 응원을 보내지만 유감인 것은 베트남 참전 기념일을 하필 장마철인 7울 18일로 고집하여 폭우 속에 행사를 망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전우들을 노천에서 비 맞으며 도시락을 먹도록 하여 또한번 추한 꼴을 보여야만 하는가?

* 참고로 한일월드컵은 5월 31일부터 6월 30일이었고 88올림픽은 9월 17일부터 10월 2일이었다. 여기에는 장마철을 피하기 위한 것이 제일 큰 이유였는데 우리의 참전 기념일도 이 기간에 걸 맞는 날자가 있을 터인데 굳이 장마철의 정점인 7월을 택해야만 하였는가. 어떻든 어려운 참전탑 세우기를 성사시킨 고엽제 단체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전우사회를 지배하는 3 단체장에게 고하노니 이제 10여년 후면 6.25참전 선배들 뒤를 따라 추풍낙엽 되어 스스러질 우리의 여생을 생각하고 우리 젊은 시절 생사를 같이한 전우들을 위해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여 주기를 두 손 모아 빈다.

- 이글은 앞으로도 우리의 역사를 사실대로 추가하고 수정 보완할 것입니다. -

 
이름아이콘 진해김철수

2009-07-26 14:40


참전전우회 중앙회 이름이 바뀔 때는 예하 지부 지회와 같이 변경했어야 했으나, 인터넷 보급된 후에야 이 많은 전우회 단체들이 있었음을 알게되었었습니다
이미 지난 일들은 탓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산재되어 각기 활동하는 전우회들을 베참전우회로 모이게 하느냐 하는 문재가 현실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참전 전우들만 똘똘뭉친다면 대통령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저력입니다. 중앙회 임원들께서는 전우회를 합치는데 머리를 맞대어 주셔야 될줄 압니다. 내가 속한 전우회가 아니라 해서 타 단체를 배척하여, 나중에는 돌아올수 없는 골을 만들어서는 절대 않된다 봅니다.
 
이름아이콘 오유지매

2009-09-07 08:14


나도 한마디 해야겠소! 베트남 중앙에서 일 하시는 높은 분들 수고하시는것 잘 알지요. 그런데 땀만흘리시고 해 놓는일은 하나도 없는 듯 하네요. 서울시 참전기념탑도 베트남에서 이루어 졌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내생각이 틀렸나요? 또 국가유공자예우에관해서도, 지난해 4월 이천현충원준공식때 회장님이 장담한 사항이1년이지나 금년에나? 기대했는데,보훈처의 이차장 발언내용은 어떻게 된것인지요? 정말 하는일 없이 생색만 내고 계신것이 아닌지요. 말로만 하지마시고 행동으로보여주세요...
 
이름아이콘 김태곤

2009-10-04 13:01


베트남참전 전우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니 정말 "파란만장"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한단체의 "장"을 맡을려면, "물심양면"으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내돈을 아낄려고 마음만 "작심" 해서는 되지않고, 괜히 지방에 내려와서(행사시에) 생생만 낼려하고, 또한 전우단체 회원들에게 "반대급부"만 발생케 합니다.중앙회에서 해준게 뭐가 있냐? 라고 반문을 했을때, 뭐라 답변을 하시겠습니까?그리고 여러단체가 합병또는 통합을 했다면, 당연하게 그단체들이 없어져야 하는데, 대가리는 없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꼬리는 지방에서 자생 하고 있다는 사실도 큰 문제가 됩니다. 따라다니는 회원들이(꼬봉,졸개,라고 표현) 문제가 되는데, 정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꼬봉"들입니다.사단법인체를 받은 단체로 모두가 가입을 한다.라면 몇명되지 않는 대가리에 있는 지들이 싱거워서도 와해및 포기를 할건데, 쫄쫄 따라다니는 꼬봉들이 있기에 전우들을 기만 하고 계속 사조직 전우단체를 이끌고 있다고 봅니다. 이 모든 문제가 우리전우들의 착각속에 진행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사조직 단체"의 회원님들의 반성을  필요로 하는 싯점 이라 사료 됩니다. 지금 생존해 계시는 전우님들은 20만명 미만으로 추산되겠지만, 흩어지면, 힘이 없습니다. 한테뭉쳐도 될까? 말까? 하는 현재의 분위기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인듯 합니다. "베트남 참전 유공 전우회" 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 합니다.
 
이름아이콘 풀씨

2010-02-16 02:32


고생 많으셨습니다. 88 년, 따이한지라는 신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반가운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참여하신 분들의 면면을 보니 우리 같은 사병들은
그냥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잘못 생각한 거죠.

우선 우리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가 여타 군소 단체를 끌어 모으기 위해선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우선 홈페이지도 월남참전용사들의 위상에 맞도록 파병용사들의 다양한 정보나 활약상 등을
모아 누구나 살펴보도록 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정치색을 띠지 말아야 할 겁니다.

참전용사들의 주의주장을 풀어내도 부족할 공간에 우편향이나 좌편향 같은 정치색을 올려
우리의 숭고한 정신을 해치는 일은 삼가해야 하겠지요. 소위 말하는 좌빨이나 수구꼴통 모두 찾아와
정확한 역사 인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우리들의 후손인 젊은 이들이 찾아와 그네들이 원하는
학술자료를 찾고 올바른 가치를 챙겨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게시판 속에서도 좌우 따지며 헐뜯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익이란 사람들이 진정한 우익인지 생각해 볼 일이지만...

우리 세대들은 오래 된 몇몇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이들은 그네들의 장단에
맞장구치며 춤출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지도 모릅니다. 이쪽, 저쪽 살펴보기도 주저합니다.

우리 단체가 책임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알리고 앞장서려 한다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각의 개인적
성향은 다르겠지만, 우리 참전용사는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나라의 부름에
소중한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참전한 것만이 우리가 주장해야 할 중요 목적인 까닭입니다.

여기서 어떤 바보 같은 사람들은 좌와 우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람들과 공산주의, 즉 북한
정권을 인정하는 측으로 양분합니다만 진정한 의미는 아니지요.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가
북한 김정일 정권을 찬양하며 그에 따를 자 있습니까? 진짜 간첩이나 멍청한 이들 빼고는...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좌빨 운운하는데 우리는 제발 그런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슨 알바들도 아니고....

설이 길었습니다. 71 년 6 제대로 참전한 후배 중의 후배 입장에서 몇몇 '수구꼴통' 노릇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옳은대로 잠자코 있으면 될텐데
공연히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이상한 어용단체인양 행동하는 걸 보면 있는 정도 다 떨어질
정도입니다. 알량한 기득권이 있다면 너그러히 내려놓고 함께 더불어 가야 할 길 아닌가요?

이해해 주시옵고, 제발 중립적인 입장에서 우리의 소중한 정신과 역할만을 위하고 기리는
단체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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