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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수
작성일 2008-12-03 (수) 09:45
ㆍ조회: 513  
IP: 211.xxx.111
(김 창균 칼럼)열여덟 그 어린 나이에.....
[김창균 칼럼] 열여덟 그 어린 나이에…
통찰과 의지로 中東개척 70년대 오일쇼크 극복하고
고도성장 바탕 마련했던 관료와 젊은 기술자 그립다
김창균·정치부 차장 ck-kim@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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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균·정치부 차장
대통령은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만년필로 보고자료를 탁탁 치기만 했다. 뭔가 마땅치 않다는 뜻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면 열여덟인데 너무 어리지 않은가. 가족과 떨어져 그 먼 곳에 가서…."

1976년 3월, 청와대 서재에서 오원철 경제 2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해외진출 기능사 양성계획'을 보고했다. 공업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선발해 기능훈련을 받게 한 후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하는 방안이었다. 박 대통령은 "너무 어리다"며 반대했다. 군(軍) 제대 예정자들을 대안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오 수석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중동에서 필요한 인력은 전문 기능인입니다. 기술적인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서류에 사인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앞에서 우리 경제는 훅 불면 날아갈 듯 위태로웠다. 원유 값이 두세 달 사이에 네 배로 올랐다. 에너지 비용 증대에 따라 공산품, 수입품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1974년 경상수지 적자 20억 달러는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 규모였다.
칠흑 같은 어둠, 거센 파도를 헤치며 대한민국호(號)를 이끌던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 한 점 빛을 발견했다. 오일 머니를 블랙 홀처럼 빨아들이던 중동, 그 호랑이 굴 속으로 쳐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 인력이 부족했다. 도로를 닦는 단순 토목공사만 한국 몫으로 돌아올 뿐,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수출은 미국, 유럽, 일본 차지였다. 중동 진출 업체들은 "기계조립, 판금용접, 배관, 전기 등 전문기능 인력을 1500명만 확보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1976년 3월, 정부는 전국 11개 공고를 지목해 3학년 우수학생 2140명을 선발했다. 중동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급 기능사 인력 1500명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30% 정도 탈락을 예상하고 640명을 추가로 뽑은 것이다. 이들에게 800시간 실습교육을 시켜야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2년이 필요했지만, 6개월로 기간을 단축했다. 중동 건설 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시간과 싸워야 했다. 정규 이론교육과는 별도로 주당 40시간, 하루 7시간씩 실습이 진행됐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이들의 6개월 실습에 쓴 용접용 산소가 8000병, 아세틸렌가스가 1만 병, 용접봉이 9만㎏이었다.

6개월 후 국가기술 자격검정 시험이 치러졌다. 70%를 기대했던 합격률이 100%로 나타났다. 2140명 전원이 현대, 대림, 대우, 동아 등 건설업체에 취직했다. 1977년 1월, 이들이 중동 현장에 투입됐다. 당시 용산공고를 갓 졸업한 청년이 사우디 현장에서 보내 왔던 편지 한 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족, 모교, 그리고 조국의 명예를 걸머지고 있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원철 전 수석은 저서에서 "임진왜란 때 10대 의병, 한국 전쟁 때 학도병이 있었다면, 70년대 석유 위기 때는 18세 기능사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썼다.

마침내 중동 건설시장의 판도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한국은 프랑스(7.2%), 영국(5.8%), 일본(4.9%) 등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20.9%의 점유율로 미국(36.1%)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제자리 또는 뒷걸음질을 했던 70년대 석유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만이 10% 내외의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라 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내년엔 더 지독한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는 소식이다. "청년들이 궂은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소통(疏通) 없이 허공에 흩어진다. 30년 전, 위기 속에서 기회의 창(窓)을 발견했던 경제팀의 통찰력, 나라 운명을 어린 어깨 위에 걸머졌던 열여덟 살 산업전사(戰士)들의 장한 결의가 그리워진다.
이름아이콘 kor7500
2008-12-03 13:44
해수전우님 안녕하십니까. 저도 오늘 이 칼럼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때 그 님들이 그리워 집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곳에서 갈망하는 지도자 "박정희" 그런분 다시는 이땅에 없겠지요. 우리국민의 구세주라고 하고싶은 그분 제발 그분을 욕되게하는 이상한 빨갱이 무리들이라도 우리모두 힘을 모아서 이땅에서 몰아 냅시다.
   
이름아이콘 푸른하늘
2008-12-04 05:27
좋은글 감사드립니다.김해수 운영위원장님!
항상 부지런히 전우사회를 위해서 물심양면과 노심초사 노력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연합니다.
우리의 젊은시절을 연상시키는 글입니다.
오원철 전 수석은 저서에서 "임진왜란 때 10대 의병, 한국 전쟁 때 학도병이 있었다면, 70년대 석유 위기 때는 18세 기능사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썼다.는 글중에서 한국 경제개발의 기초는 월남참전용사이었고 남북한 대치상태에서 미2사단 대신 전투병력(즉 파월국군)의 파견이 대한민국을 구햇고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가지는데 이것은 우리만의 주장인가요?
정말 가슴이 저려옴을 느낌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름아이콘 초심
2008-12-05 18:37
보내는 사람이나, 더나는 사람이나 그들의 가슴엔 오직 조국을 위해서 라는,
그 뼈 아프게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열정과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6,25라는 희대의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펜대신 총을 들었던 우리의 소년병 선배들,
그리고 아직은 부모의 품속이 그리울법한 열일곱 소년 해병이 청룡으로 승화되어
낯선 땅 이국하늘아래 한떨기 국화가 되어 말없이 남지나해를 건너야 했던 그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오직 조국만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 그 화랑 관창의 후예들이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싯점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싻을 스스로 잘라내는 형이상학적인 교육으로
있던 애국심마저 실종되고 있다는것이 안타까움으로, 통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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