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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심2
작성일 2010-11-15 (월) 20:15
분 류 특별
ㆍ조회: 321  
IP: 112.xxx.125
국토대장정 드디어 해 냈습니다(11,15일 여의도입성환영식)
(윤창호 전우)여의도입성


 날씨가 쌀쌀한대도 많은 전우님들이 환영행사에 참여하시여 도열된 모습


 
                        행사장에 목발집고 손을 번쩍들어 아직 건제하다는 모습 대단합니다
 
                           행사장에는 오후 2시를 넘으면서 많은 전우님들이 
                           쌀쌀한 날시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여 윤전우 여의도 입성 환영차
                           도열하고 있었습니다. 2시30분 도착하는 모습 부실한 몸으로 전우들을 
                      반기는 최후의 힘을다해 손을 번쩍들어 행사제식훈련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그모습 그어찌 우리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오늘 밤부터는 편안이 쉬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우리전우님들의 꺼져가는 등불을 밝혀주신 영웅이십니다.
                     여러 매스컴에서 취재차 나와 그추운 여의도뻘에서 2시간 남짖 인터뷰하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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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국토대장정 나섰던
                     베트남 참전용사 윤창호선배님 서울도착
                              (한국일보 보도내용.)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트남 참전 용사 100여 명이 13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광장에 2열 종대로 마주보고 섰다. 군복 차림의 이들 베테랑들이 기다리는 이는 전우 윤창호(68)씨. 드디어 윤씨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절룩거리며 들어서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날 윤씨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한 관심과 국가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45일간의 도보행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윤씨는 지난 10월 3일 개천절에 베트남 파병 당시 육군 훈련장이었던 강원 화천군 오음리를 출발해 서울, 대전, 대구, 포항을 거쳐 40년 전 참전용사들이 베트남으로 떠났던 부산을 돌아 서울로 올라왔다. 장장 1280km의 행군. 윤씨는 하루 8시간 약 30km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었다.
일흔을 내다보는 윤씨가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45일을 걷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양 무릎 관절은 망가졌고, 행군 20여 일째부터는 지팡이를 쓰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윤씨는 “고엽제 등의 피해로 힘들어하는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3년 전부터 보훈처에 수백 통의 처우개선안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며 “죽을 각오로 도보행군을 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윤씨는 1969년 8월부터 1970년 4월까지 베트남 투이호와 지역에 백마28연대 소속 연료조달계 비전투원으로 파병됐다. 비전투원이라 전투에 나갈 일은 적었지만 수많은 동료들이 한 줌의 흙으로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다 6년 전부터는 방광암과 대장암으로 4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윤씨는 “베트남 전쟁도 자유와 통일을 위한 6.25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하지만 이 나라는 6.25 참전과 베트남 참전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6.25 참전 용사는 ‘국가유공자’이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는 ‘참전 유공자’로 분류된다. 윤씨는 “이번 도보행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베트남 참전의 중요성이 더욱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처우 개선과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해 1280km 단독행군에 나섰던 윤창호씨가 15일 장정을 마치고 여의도공원에 들어섰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처우 개선과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해 1280km 단독행군에 나섰던 윤창호씨가 15일 장정을 마치고 여의도공원에 들어섰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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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를 방치하고 홀대한 나라가 공정한 나라인가?
참전용사 방치·홀대하고도 정의로운 국가 있나? <코나스>

(written by. 이현오)


 

윤창호 베트남참전용사, 45년 전 참전경로 그 길-45일 걸어 환송식 열리던 여의도 입성


 

  "저는 (강원도 오음리에서) 첫 발걸음을 뗀 이래로 45일만에 사랑하는 내 조국 수도 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45일을 하루가 1년 같이 걸었습니다. 지금부터 45년 전 (우리 국군이) 첫 해외 파병 원정군이 되어 월남으로 파병할 당시 이곳 여의도 환송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용사'라는 최대한의 경어를 사용하며 '무운'과 '무사귀환'을 빌었던 그곳으로 이상 없이 돌아왔음을 전우 여러분에게 보고 드립니다. 단결!"

덥수룩한 수염과 검게 탄 얼굴, 왼쪽 팔에 스틱을 짚고 오른쪽 발은 깁스를 한 채 절고 있어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뗄 때마다 지팡이에 의지한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넘어가는 자세였지만 단상 위에 서서 정부와 국회에 전하는 성명서를 낭독해 내려가는 그의 표정 하나하나 에서는 어디에서도 '노병'이라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그 말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45년 전 이글거리는 태양과 독충이 우글대는 자유베트남 정글에서 공산베트콩과 사투를 벌였던 '따이한'(베트남인들이 한국군을 지칭해 부른 말)의 용사답게 그의 목소리는 전장에 임하는 전사의 기개와도 같았다. 여의도 공원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그의 음성은 때마침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타고 인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과 보훈처를 향해 강하게 퍼져나가는 듯 했다.  
 ▲ 45일 동안 강원도 오음리에서 부산을 돌아 서울 여의도까지 베트남 참전용사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요구하며 단독 국토대장정에 나선 윤창호(예, 병장. 백마부대 28연대)씨가 도착 후 전우들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성명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konas.net
 
 
금년 들어 중부권 날씨가 영하 권으로 내려가 가장 춥다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여의도문화공원에서는 얼룩무늬 복장을 한 200여 명 참전용사들의 일치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6·25참전 노병과 베트남 참전용사들에게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와 공적을 정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이는 지난 10월3일 강원도 오음리를 출발해 부산과 포항을 거쳐 다시 서울 여의도까지 '나 홀로 3000리' 국토대장정에 나선 베트남 참전용사인 윤창호(68, 인천시 계양구. 예비역 병장)씨를 환영하는『윤창호 전우 삼천리 참전 경로 단독 도보 행군 완주 귀경』행사장에서다.

지난 달 3일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훈련장이 있던 강원도 오음리를 버스로 출발해 춘천역까지 이동, 그곳에서 서울을 거쳐 부산-포항-부산4부두-영동-옥천-연기군-조치원-천안-서울(여의도)에 이르기까지 45년 전 파월 당시 우리 국군의 참전 경로를 따라 그대로 도보로 이동해 이 날 마지막 여의도에 안착한 것이다.

첫 출발지에서 반환점인 부산을 돌아 베트남 파병용사들의 환송식 장이었던 여의도 광장까지 그가 실제로 걸은 거리는 45일 여정에 1,280km였다. 70이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 그의 도보 행군은 어쩌면 죽음을 불사한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걸음을 계속하는 그의 국토대장정은 이 날까지 멈춤이 없었다.
 ▲ 결의 내용을 담아 정부와 국회를 향해 참전용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하고 있는 베트남 참전전우들. ⓒkonas.net
 
 
이 날 찬바람이 씽씽 이는 가운데 절뚝거리며 고엽제 전우회 차량의 에스코트를 받아 여의도 공원에 들어선 그에게서는 만감이 교차한 표정이었다. 광장을 길게 두 줄로 이어선 옛 전우들의 박수와 '윤창호'를 연호 하는 환영 속에 들어선 그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동료들과 깊은 포옹을 나누며 서로간의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이 날 그는 육체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보였지만 그가 보여준 정신은 초인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국토종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참전용사에 대한 국가나 국민적  국민차원에서의 예우 방치 내지는 홀대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오음리를 떠난 지 만 30일이 되던 지난 2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몸은 파김치처럼 쳐지고 발바닥은 이미 감각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걸어야하고, 걸어가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육체적 고통이 밀려와도 그를 정신력으로 버티고 지탱케 한 것은, 참전 8년 여 기간동안 전사한 5000여 전우들과 11,000여 명 전상자들이었으며, 귀국 후 오랜 시일이 지나 무슨 병인지도 알지 못하고 고통 속에 신음하다 죽어간 고엽제 전우들의 떠오름이었다.

 
 ▲ 이재관(오른쪽)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육군 부회장이 윤창호씨로부터 거수경례를 받으며 건강 염려와 함께 격려금을 전달받고 있다. ⓒkonas.net
 
 
이 날도 윤창호 씨는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예산이 없다고, 참전용사의 숫자가 많다고 참전용사를 홀대하는"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을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하며 토로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45년이 흐른 지금, 정부와 국민의 의식 속에는 망각된 전쟁, 잊혀진 세월로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들 참전영웅들은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런데도 얼빠진 정부와 국회의원 나리들은 '용사'들을 잊어 버렸다. 이 나라의 현실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너무나 서글프다"고 참전용사 예우에 부족한 정부와 국회를 동시에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해외 파병을 통해 국가에 헌신하고 충성을 다했던 당시 패기만만했던 청년 시절의 기개를 잃지 않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국가가 우리를 홀대하고 잊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고 있는 것은 이 시대의 마지막 애국심을 발휘해, 충성심과 애국심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충성과 애국이 무엇인가를 심어주고자 함"이라며 "우리의 요구는 단순한 이익을 위한 이해관계가 아님을 오해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국가가 참전용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참전용사를 정중하게 예우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국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 바쳐 앞장서 나가겠느냐"며 "그에 걸 맞는 예우와 보장은 (병역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애국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격앙된 어조로 말문을 이어가던 그는 "6·25참전 선배님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가난에 허덕이는 보릿고개 시절에 해외로 나가 나라의 경제를 다지는 기틀을 마련했다. 국가가 어려울 때 우리 영웅들에게서 많은 빚을 진 국가는 이제 어려운 우리들에게 빚을 갚는 것이 옳은 게 아닌가"라며 "보훈처와 국회는 앵무새처럼 예산이나 숫자가 많다는 타령을 하기에 앞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권고하고 싶다"며 구체적 예까지 들어 제시하기도 했다.
 ▲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는 윤창호 예비역 병장. ⓒkonas.net
 
 
그의 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실제로 그는 지난 10월3일 오음리를 출발하면서 발표한 '나 홀로 300리-死神을 마중하는 심정으로' 글에서도 "나 죽어 우리 전우들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고 이 땅의 꺼져 가는 애국의 불길이 들불처럼 퍼져 나가 목숨 바쳐 사랑한 내 조국이 영원 무궁토록 번영을 누리기를 충심으로 소원하며 칠순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죽음의 대장정을 간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또 지난 10월23일 부산 반환점을 돌면서 "살아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느니 이 땅을 걷다가 길가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이름 모를 들꽃에 묻혀 죽기를 소원할 따름"이라며 "설령 하늘이 날 부르지 않는다 해도 내 천명은 감소되었을 것이나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나아가 "나와 우리 전우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전장에서 옥쇄 하지 못하고 살아 남은 것이 죄라면 그건 응분의 죄 값을 치러야 하겠으나 지구상 어느 나라가 나라를 위해 죽음의 전쟁을 치룬 전쟁영웅들을 이처럼 방치하고 홀대하는가? 고 비분 강개와 함께 섭섭함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이 날 행사장에서 윤창호를 맞은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 박중근(예, 육 중장) 부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윤창호 전우의 '나 홀로 3000리' 국토대장정은)베트남 참전용사들의 투혼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하고 "서로가 단결해 함께 노력해 나가면 안 될 일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의 숙원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윤창호 씨와 참전 동료전우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이번 윤창호 씨의 '나 홀로 3000리' 국토대장정에는 각 지역별로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 회원들이 윤 씨의 도보행군 안전과 교통지원에 나섰으며, 재향군인회에서도 각 지역을 통과 시 지역 시·군·구회에서 동행 행군 등 격려에 나서기도 했다.

이 날도 향군에서는 이재관 육군 부회장이 행사장을 찾아 건강 회복과 함께 격려금을 전달했다.
다음은 이 날 윤창호 씨와 참전용사들이 함께 낭독한 결의문 중 대 정부 요구사항임.

1. 국가와 민족을 지켜낸 진정한 1등 공신인 6·25참전 노(老) 영웅들에게 현실적이고 합당한 예우를 함으로써 국가최고의 유공자임을 인정하라.

1. 오늘날 경제대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데 초석이 된 베트남 참전 영웅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최상의 국가유공자로서 예우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1. 베트남 참전으로 장렬하게 산화한 용사들의 유가족과 미망인들에게 국가 유공자의 미망인과 유가족으로 공평하게 예우할 것을 촉구한다.

1. 고엽제 후유의증이란 해괴한 용어로 더 이상 참전전우들을 우롱하지 말고 그들 또한 잠재적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하고 그에 타당한 예우를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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