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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강
작성일 2007-12-26 (수) 22:00
ㆍ조회: 266  
IP: 221.xxx.48
한 과거사 위원회 위원의 고뇌(苦惱)를 벗으며


대한민국에는 건국 이후, 두 번의 국가적 시련과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4.3무장폭동이었고, 두 번째가 6.25전쟁이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4.3무장 폭동이 진압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면 대한민국의 탄생은 어려울 수 있었고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필자는 BBK 동영상 상황 속에서 진행된 지난 12월 19일의 17대 대선을 세 번째 위기로 보며 전쟁하는 심정으로 투표권을 행사해야했습니다. 내년에 건국 60돌을 맞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비록 반쪽의 흠은 있어도 한민족의 한반도 정착 이래, 전무후무했던 대성공으로 후세들이 인정할 것으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5,000년 역사 속에서, 바다를 낀 일본과 대륙을 타고 앉은 중국과 러시아의 틈새에서 오랫동안 속국처럼, 그리고 또 한 때는 식민지로 묶여 살던 우리의 선배들이 미국의 2차 대전 승리를 기회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주도와 UN의 축복 아래, 봉건잔재와 식민체제를 종결짓고 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3권 분립과 자유 민주의 정치제도를 도입했던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니었습니까?

 

이 축복의 기초 위에 88올림픽과 월드컵이 있었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달성도 가능했던 것이기에 “대한민국”이란 네 글자는 대다수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충성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독자 여러분들도 동의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 8월부터, 국방부 추천의 국무총리 위촉직위인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위와 같은 평소의 신념이 위원회 내에서 통하지 않는 현실을 온 몸으로 아프게 느껴야 했습니다.

 

4.3“사건”과 노 대통령의 정부차원 공식사과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2차 대전이 끝나자 전승국인 소련은 유럽에서 독일이 점령했던 여러 나라들을 공산 위성국으로 만들고 있었으며, 한반도에서도 북한을 공산화 시키고 남한마저 공산화 편입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맞선 미국은 한반도에서 공산권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입장에 서고 있었습니다.

 

1948년의 4.3 “사건”은 5.10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파탄시켜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 저지하려는 남로당의 “무장폭동”이었습니다. 스탈린의 비밀지령(1993년에 확인)으로 38선 이북에 대한민국 보다 1년 6개월 먼저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던 소련 군정은 UN의 결의에 따른 한반도의 통일정부 수립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것이 5.10 제헌 국회의원 선거저지를 위한 4.3무장폭동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월북 후 소군정의 지시 하에 있던 박헌영은 남한에 우익정부가 수립되면 자신의 입지도 약화됨으로 남로당 구당차원에서 5.10선거저지를 위한 2.7폭동을 지령하였던 것이며, 남로당 중앙당의 폭동이 실패하자 조직이 온전했던 제주도당에 폭동을 독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육지 상황을 알 수 없었던 순박한 제주도 주민은 남로당의 선전선동에 속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저항을 계속하는 가운데, 제주도의 폭동진압 지원 차 출동명령을 받았던 14연대의 1개 대대가 여수순천반란(48.10.19)을 일으키고 12월말로 예정되었던 주한미군의 철수를 앞두고 이승만 초대정부는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했던 것이며, 이 계엄령하의 일부 강경진압이 주민의 피해를 증가시켰던 것입니다. 6.25정전 후에는 이 피해주민에 대한 정부차원의 폭넓은 선무지원도 있어야만 했으나 북한의 대남공작이 제주도의 4.3피해주민에게 지향됐던 탓으로 상처위에 상처가 겹치는 참으로 비극중의 비극이 발생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억울함을 헤아려 2003년 10월 31일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한 것으로 이해되나 국가의 주권과 법질서가 내외부의 도전을 받을 때는 국가의 공권력이 사용되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고 불가피했던 배경도 설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누락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군과 경찰의 입장이 배제된 채 채택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인하며 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에 부동의 서명을 했던 군과 경찰측 추천위원 전원(3명)은 항의의 뜻으로 동반사퇴를 했던 것입니다.

 

훼손되는 대한민국 정체성과 4.3위원의 고뇌

 

4.3위원 사퇴후의 4.3위원회 활동상황은 소상히 알 수 없으나 당시의 군사재판에서 형이 확정된 무기수와 사형수까지도 명예회복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손상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군과 경찰의 입장과 주장이 개진될 기회가 제한되고 신문과 방송도 무관심함으로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군과 경찰 측에 일방적 과오가 있었던 것으로 잘못 알게 되는 것이 크나큰 고뇌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고뇌를 덜기 위하여 필자는 이곳저곳의 인터넷 게시판에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대한민국 초대정부가 3권 분립과 자유 민주의 정치제도를 최초로 채택했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건국후의 법질서의 유지차원에서 초래했던 4.3사건에서의 민간인 피해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했던 것을 인내로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같은 대통령이 4.3사건보다 수백 배의 범죄적 과오를 현재 진행형으로 범하고 있는 북한의 세습독재 집단에 대하여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기는커녕 민족끼리의 화해협력이라는 명분으로 대북지원을 계속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고뇌중의 고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지속되는 북한의 대남공작

 

제주도민들은 대부분이, 이조 500년 동안 본토와 두절되어 살았던 高(고) 梁(양) 夫(부) 3성의 원주민과 고려조부터 조선조에 유배를 당했던 조정대신들의 후손으로서 일상의 생계유지가 주 관심사였던 순박한 양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목포에까지 김일성 장군의 인민군대가 도래하였으니 안심하라"며 조금 더 저항하면 곧 해방이 된다는 남로당의 선전선동에 쉽게 동조, 대한민국 신생정부에 반대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합니다.

 

이와 유사한 북으로부터의 대남공작은 노동당 강령이 바뀌고 제반 대남공작부서의 완전한 해체가 확인될 때 까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볼 때에 대한민국의 안전이 보장될 것임으로 “철”“경”“만”“대”(“철”저한 “경”계 및 “만”반의 “대‘비)의 차원에서 www.vietnamwar.co.kr에 눈에 띄게 소개되어 있는 “스티코프의 비망록”과 “대남사업관련 김일성 비밀교시” 그리고 필자가 최근에 발견하여 제시한 “10년 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온 국민들의 관심 속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2월 19일, 국민의 투표권 행사로 좌익정권의 재등장이 저지되어 그간에 쌓여온 고뇌가 일단 사라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2004년 3.1절과 북의 대남공작총책이 청와대를 방문하던 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2007. 12. 27

WWW.VIETNAMWAR.CO.KR 인강칼럼

 

아래

 

3.1절 자유수호 국민대회의 "다짐"

 

"평화"는 민족이 얼싸 안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으로

"평등"은 무언가 있는 사람들만 증오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선전 선동"하는 사람들의 편가르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헌법질서는 깨지고 국가안보는 속절없이 무너져 왔습니다.

 

남로당의 "4.3무장폭동"진압과 북한 인민군의 "6.25남침"격퇴는

대한민국을 지켰던 "정당방위"였음에도 희생자발생의 주책임이

"도발"이 아닌 "진압" 측에 있었다는 시각의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왜곡"되고 "정통성"은 "부정"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헌법질서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은

국민들 앞에 "모범"을 보였어야 할 이 나라 지도층의 "과오"가

국민 분노의 대상이 되고 북한이 이를 대남공작에 활용함으로서

온갖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을 직시해야만 우리가 함께 삽니다.

 

왕조 500년, 식민지 36년, 초근목피의 보리 고개 역경을 넘어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온 국민의 자랑이지만

그 그늘에서 여러 종의 독버섯이 자란 것은 커다란 수치입니다

 

"김정일 花"가 청와대 집무실에 놓이고 친북 시민단체 회원들의

"인민재판"식 의결흉내가 TV 에 방영되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공산혁명 선동가"가 주제곡이 된 영화가 1,000만을 돌파하는

바람을 타고 자유대한민국이 1975년의 월남이 되지 않기 위하여

3.1절 아침에 다음의 "다짐"을 애국 시민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 우리의 나갈 길은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헌정수호에 있다.

* "4.3특별법"과 유사한 법안의 제안 및 발기자의 국회진입을 거부하자.

* 국가발전은 패거리가 아닌 일하는 시스템의 구축에 있음을 명심하자.

* 우리는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어떠한 기도와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한다.

* 우리는 좌파세력의 적화음모를 분쇄하며 한미동맹수호에 앞장서자.

* 북한의 대남 공작엔 중단이 없음을 명심하여 경계의 눈을 크게 뜨자.

* 우리는 굶어죽는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하는 햇볕정책은 거부하자.

* 우리는 젊은이들의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에 대한 교육에 앞장서자. - 2004. 3.1절 아침에-


급! 북의 통일전선부장을 만나주시는 대통령께:

 

청와대 회원게시판에 올렸던 최근 글이 오늘 삭제된 것을 확인하고 이 글 씁니다. 지워진 글은 “공화국 영웅1호의 대남공작”과 “10년전의 노동당 특집보도전문”으로서 19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오늘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글이었습니다.

 

국민들이 몰랐기 때문에 6.15와 10.4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대남공작의 중지와 중단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오늘 북한의 대남공작총책이 청와대를 방문하는 기회를 다음과 같이 활용해 주실 것을 자유시민의 한사람으로 급하게 건의합니다.

 

북한의 1997.5.26일자 노동신문 기사를 최근 읽었음을 상기하신 후

1. 10년 전에 찬양 고무했던 남한 내의 공작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가?

2. 진정한 화해협력을 원한다면 대남공작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공작기구도 없애라.

3. 중단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발동으로 즉각 체포를 건의합니다. -2007.11.3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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