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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강
작성일 2008-01-13 (일) 18:39
ㆍ조회: 278  
IP: 221.xxx.7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출범을 보며

인수위원회의 과거사 위원회 폐지의견과 관련하여 반대운동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

4.3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필자가, 2005년 12월에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수정 없이 다시 올립니다. 부족한 내용입니다만, 학교와 군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며,                                               2008.1.13.18:00 한광덕 (예)육소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출범을 보며

 

500년 전통의 조선왕조가 섬나라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나서 조선조의 이름을 딴 망명정부조차 세워지지 않았었으니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었겠는가? 당시의 조선조는 봉건적 농경사회로서 백성들에겐 주권이란 없었고 오직 왕에 대한 절대복종만이 있을 뿐이었는데, 26대 왕인 고종이 을사보호조약에 서명(1905.11)을 강요당한 후 항의의 뜻으로 이등박문을 저격(1908.10)했던 안중근 열사를 탓하는 일방, 이등박문의 빈소에까지 조문을 보내며 왕위를 지키다가 27대 순종 때 한일합방(1910.8.29)으로 국권을 찬탈당하고 말았으니 오호 통재라!

 

나라의 주인(주권)도 아닌 망국의 백성들이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독립운동(1919.3.1)을 일으키고 상해에 ‘대한민국’ 국호의 임시정부(1919.4.11)를 세운 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각성 때문이었으니 이 각성이 일본인들보다 더 빨랐다면 그 반대의 현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시의 조선조가 망한 것은 나라에 힘이 없는 탓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 울분을 일본의 과거사로 돌리고 친일파를 따진들 누구로부터 어떤 힘을 얻어 낼 것인가? 차라리 당시에 빠르게 변하고 있었던 밖의 세상에 눈감고 당파싸움에 몰두했던 조상들의 무능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실패한 과거로 부터는 진솔한 패망의 교훈을 찾아내고 뼈를 깎는 반성으로 내일을 설계하고 오늘을 뛰어야만 할 것 아닌가?

 

8.15광복 후의 도전과 혼란 속에서 3.1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한반도의 남쪽에나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을 세우고 오늘 날 우리의 후손들이 세계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들 세대의 자랑임에도 또 다시 나라 밖의 세상에 눈 감고 과거사타령으로 허구한 날을 보내며 국력을 탕진할 것인가?

 

서양 사람들이 전제군주하의 봉건적 농경사회를 오늘의 민주화된 산업사회로 바꾸는 데 걸린 2,3백년을 우리들 세대들은 6.25전쟁의 폐허위에 보리 고개를 넘으며 불과 3,4십년으로 단축해 내는 기적을 세웠는데도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혜안과 산업발전의 거장인 박정희 장군의 집념과 추진력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지난 2,3백년간, 서양 사람들에겐 수많은 혁명과 내전과 전쟁에 의한 피해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4.3폭동’과 ‘6.25전쟁’ 등의 많은 도전이 있었으니, 우리의 경우에는 국제공산주의의 태동 속에 각종 유혹과 음모와 공작이 숨겨져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련을 정점으로 했던 국제공산당은 계급투쟁의 속성상 민족의 개념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피억압민족의 민족주의는 일정한 단계에서 ‘조건’부로 지원한다.”는 강령을 마련하고 우리 선조들의 항일운동의 일부를 도왔으니, 그 ‘조건’이 "조선의 민족주의가 국제공산주의의 지지로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면 소연방의 이익에 절대 충성한다.”는 음흉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8.15광복 후에 하나로 승화됐던 민족의 기쁨이 돌연 분단의 고통으로 바뀌어 갔던 것은 이와 같은 국제공산주의의 강령과 조건 때문이었으니 공산당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과 38선 이남의 박헌영 세력 등이 소련의 지시에 철저히 맹종함으로서 UN의 축복 속에 통일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한 채 분단에 따른 각종 비극과 고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1독립정신을 계승했던 우리의 정통 민족진영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반탁)에 나섰든 공산당 지지 세력은 차후 소련의 지령에 따라 신탁통치 찬성(찬탁)으로 입장을 바꾸었으며 당시 남노당 당수 박헌영의 “신탁통치가 끝나는 날 우리나라가 소련의 한 연방으로 편입되기를 희망한다.”(1946.1)는 발언은 공산주의자들의 항일운동은 결코 참된 민족독립운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도 독립운동을 했다”고 인정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2004.10.19)은 취소되어야 마땅하며 “6.25 직전, 국민의 77%가 공산주의를 선호했다”는 동국대 강모교수의 주장도 이해할 수 없으며 한다 해도 박헌영 찬탁발언 이전의 국지적 현상이었음을 주지해야만 할 것이다.

 

1945년 4월부터 소련군의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 위원으로서 한국문제에 개입한 후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47~48년)과 북한주재 초대 소련대사(48~51년)를 역임하며 북한정권수립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스티코프’의 비망록에는 소련군의 대 남한 적화공작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은가?

 

‘제주 4.3폭동’ 이전인 1946년 10월의 대구 폭동 때부터 이미 “남조선에 투쟁기금을 보내고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이 소련군정에 향후의 투쟁방침을 요청”하는 기록이 나타나 있으며, 최근 미국의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4.3폭동’의 주동자 김달삼이 폭동 발발 4개월 후 북한의 인민대표자 대회(48.8.25)에 참석, ‘4.3폭동’의 전과를 보고하면서 "북조선 민주개혁을 남조선에서도 하루속히 실시하도록 용감히 싸웁시다"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쏘련군과 천재적 령도자 스딸린 대원수만세!"를 외쳤던 연설문이 활자화 되어 있었다.

 

그 후 ‘4.3폭동’의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수여(49.1.8)받았던 김달삼의 가묘가 평양근교의 “애국 열사능”에서 ‘남조선 혁명가’의 비명을 받고 있는 사실이 확인(제주일보,00.6.8)됐음에도 이와 같은 사실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누락되고 노 대통령은 제주 평화포럼(03.10.31)에 참석하여 “제주 4.3사건에서 발생했던 제주도민의 억울한 희생에 대해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공식사과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고 부연 설명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겼다면 확인된 역사적 사실들은 진상조사보고서 에 포함됐어야 함에도 철저히 배제되어 항의의 뜻으로 국방부와 경찰을 대표했던 3명의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위원 전원이 일괄사퇴를 했음에도 이 사실조차 당시의 신문과 방송은 침묵함으로서 국민들의 알권리는 무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금번 출범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도 국민들의 알 권리 밖에서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채 추진된다면 ‘4.3위원회’의 전철을 따라 억울한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한민국 과거정부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교묘히 부정되어 결과적으로 적화통일을 위한 북한의 대남공작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임으로 불안과 좌절의 한탄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은 조선조의 '백성'이 아님으로 지금부터라도 냉정을 되찾아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바른 눈을 뜨고 국민의 알권리와 신성한 주권을 정정당당히 행사한다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켜 내리란 높은 희망도 갖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일류국가는 모두 자유와 민주의 시장경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며 한반도의 반쪽이나마 공산주의의 실험을 면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국민들은 6.25전쟁을 비롯한 대공전선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켜준 순국선열과 미합중국을 비롯한 16개 참전 국가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도 간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5.12.20.12:00

 

 

전 국방대학원 원장

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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