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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 2011-04-09 (토) 10:04
ㆍ조회: 264  
IP: 222.xxx.19
아버지 (펌글)

3월의 아침은 이제 막 팔각정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는 소주 한 병에 야쿠르트와 빵을 안주 삼아 마시고 있었다
외롭다. 못 해 쓸쓸하면서 왼쪽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간듯한
그의 모습은 이미 삶의 균형을 잃은 듯 기울어진 저울과 같았다
햇살은 팔각정에 내려와 어느새 따사로운 걸레질 하며 다복한 인상에
소박하고도 멋스러운 풍채를 드러냈다
그는 팔각정 앞을 지나가는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아저씨"
나는 잠시 가던 길을 접고 그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초췌하고 핼쑥한 얼굴에 햇살이 스며드는 것이
누군가 그의 얼굴을 따뜻한 정으로 보듬어 퍼뜨려 올라가는
포근한 상상이 각인되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슨 이야기를 주워들을 수 있을까?
오늘 어떤 소재의 글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그에 대하여 이미 많은 생각으로 차 오르기 시작했고
팔각정으로 다가갔고
그는 쫓기듯이 말했다
"아저씨 여기 앉으세요"
나는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고
그는 얼른 야쿠르트 한 병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야쿠르트 빈 병에 소주를 따러 내게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단숨에 들이키며
그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술에 어느 정도 얼큰해져 있는 그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일 나갔다 못 나가고 그냥 들어오시는 것이지요
나도 그래요. 오늘 조금 늦게 일었다 30분 늦었는데
다 내보내면서 나는 안 보내주더라고요"
나는 물었다
"아저씨 요즘 어떻게 일거리는 좀 있나요?"
그는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
"아니요.
없어요.
특히 이 대전은 더 심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당진으로 내려갔는데
당진 서산 그쪽으로는 일거리가 많답니다
어제도 전화했더니 회식한다고 하더라고요
대전은 정말 일거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해먹고 살 게 없습니다
사람 살 곳이 못 됩니다."
그랬다
모두의 공감대였다
나는 생각했다
가정도 있을 텐데 참 힘들겠다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가정은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가정은 없어요
그러니까 살지 가정 가지고 이렇게 못 살지요"
하더니 이내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의 말은 이랬다
대전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기름 밥을 먹었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면서 시외버스 안내양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애를 재워놓고
그를 기다리며 집 밖에 나와 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완전히 차가 사람 가슴 위로 넘어갔는지라 병원 측에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살려봐야 식물인간일 뿐이라는 말에 끝내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중매와 만남의 인연이 있었으나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연애 한번 안 해보고 살았다고 했다
비둘기같이 순결한 사랑이 푸드덕 하늘 향해 날아가는 눈부신 환상이
내 눈앞에서 떠오른다
잠시 침묵으로 머뭇거리던 그가 말했다
그 후 아들은 누나한테 맡겨 그 집 호적에 올려 키웠는데
지금 잘 자라서 건양대학교병원 의사가 되었다 했다
이제 그는 아들에게 내가 네 아버지다. 말하고 싶은데
누나가 말린다고 했다
아니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이 잘못될까 봐
그러니 제발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누나네 집에서 아들과 함께 살면서
아들의 아버지가 아닌 삼촌으로 불리며 살아가고 있음이
너무 가슴이 아프며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핏줄은 당긴다고 아들도 그를 보면 이상하다고 한다고 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면서 어딘지 모르게 닮은 것 같고
전생에 인연을 가진 듯 뭔가 이상하게 강한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미치겠다고 했다
나한테 동생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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