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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수
작성일 2008-08-04 (월) 13:31
ㆍ조회: 443  
IP: 211.xxx.111
[해설]독도의 진실-21
 
모 행정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도의 진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단 한 분이라도 더 독도의 진실을 아셔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승락했습니다. 주로 관공서의 공무원, 금융기관과 읍, 면, 동, 통, 반장님들과 이장님들까지 읽으신다고 하니 더욱 잘 된 일입니다. 주간으로 발행하기 때문에 이번 월말 쯤 1회분이 게재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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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외교전이지만 1960년대에는 달랐습니다.
 
전쟁 상황과 한 치의 다름도 없었습니다. 실탄이 장전되고 발사되고 포탄이 날아 다녔습니다.
독도는 우리 국민들이, 선배님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 낸 우리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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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홍순칠 대장이 이끄는 독도 의용수비대는 곧 바로 교전상태에 돌입했다.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을 돌려 보낸 후 며칠도 지나지 않은 7월 12일, 일본은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S9 함을 독도에 급파했다.
 
일본 순시선이 독도에 상륙할 기미가 보이자, 독도 의용 수비대는 보유한 경기관총으로 일본 순시선을 집중 사격했다. 일본 순시선은 물러갔다. 이 전투가 독도 의용 수비대 최초의 전투였다.
 
홍순칠 대장은 첫 전투에서 장비의 보충이 시급함을 깨달았다. 소총으로 순시선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홍 대장은 다시 육지로 나가 어렵게 M2 2정과 박격포 한 문을 구입했다.
 
그리고 8월 5일, 동도() 바위 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겨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도 독도에 가면 홍순칠 대장이 새긴 이 '(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볼 수 있다.
 
1954년 8월 23일, 독도에 접근하려는 일본 순시선과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격렬한 총격전 끝에 일본 순시선은 물러갔다. 그러나 일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21, 이번에는 1,000t급 일본 순시선 3척 및 항공기 1대가 합동 작전으로 독도를 공격해 왔다.
 
이번에는 박격포가 위력을 발휘했다. 박격포탄 하나가 일본 순시선 갑판 위를 때려 버린 것이다. 일본 측의 피해는 컸다. 무려 16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일본 해, 공군은 물러갔다.
 
대한민국 정부가 6.25의 상흔을 씻고 정신을 추스렸다. 독도 수비를 경찰이 맡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국토 방위를 언제까지나 의용 수비대가 맡을 수는 없는 일..... 홍순칠 대장과 독도 의용 수비대원 33명은 1956년 12월 30일 무기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갔다. 
 
최후까지 남아 있었던 독도 의용 수비대원 33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고성달, 구용복, 김경호, 김병렬, 김수봉, 김영복, 김영호, 김용근, 김인갑, 김장호, 김재두, 김현수, 박영희, 서기종, 안학률, 양봉준, 오일환, 유원식, 이규현, 이상국, 이필영, 이형우, 정원도, 정이관, 정재적, 정현권, 조상달, 최부업, 하자진, 한상용, 허신도, 홍순칠, 황영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이름들은 우리는 한 번 소리내어 읽고, 이미 돌아 가신 분들에게는 예를 갖추어 초혼, 명복을 빌어드려야 합니다. 이 분들 중 열 다섯 분은 2005년까지 생존해 계셨다고 합니다.
 
독도 의용 수비대의 활동 요약
 
1952.01.18  이승만 대통령 독도 동쪽으로 '평화선' 선포
1952.08.10  일본측 불법 영토비 제거
1953.04.20  독도 의용수비대장 조직 경비개시(수비대장 홍순칠)
1953.06.24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귀향 조치
1953.07.12  일본 해상 보안청 순시선 발포, 격퇴
1953.08.05  대한민국 영토비 (한국령) 건립
1954.08.05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발포, 격퇴
1955.11.21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3척, 항공기1대 발포,격퇴
1956.04.08  국립경찰에 무기와 임무 인계

 

이 분들은 피로 독도를 지켜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독도를 지킬까요.
 
우리는 정부의 의지와 약속 이행을 감시하고 일본이 심어 놓은 세력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외국에 나가시는 분들은 민간 외교관으로써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일본의 간계한 장난을 막아내야 합니다. 특히 지도 분야와 관광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앞장 서야 합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하여 독도에 방파제를 만들고, 독도 해양 관광호텔이 건립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독도에 방파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1953년 홍순칠 대장의 호소로부터 시작된 독도의 숙원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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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 즉 허구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을 재구성한 "사실史實" 즉, 논픽션입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한국 경찰이 독도에 상륙한 후, 경찰 역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였습니다.
독도에 상주하게 된 경찰은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평화선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 어선은 보이는대로 모조리 나포해 버렸습니다.
 
이승만 라인, 일명 평화선은 우리나라 어업을 구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 t.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을 때,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 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 선박 이었습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왔습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닙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습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입니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습니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동아일보 2006-01-18  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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