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과 익명의 무책임한 댓글에 의한 게시판 분위기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회원가입제(무료)로 운영되고 있읍니다.( 다만, 정회원 가입은 회칙에 의하여 연회비(현행 3만원)를 부담합니다.)
익명, 또는 게시판 특성에 어울리지 않는 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읍니다.
작성자 김해수
작성일 2008-08-03 (일) 06:27
ㆍ조회: 442  
IP: 211.xxx.111
[해설]독도의 진실-17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들어보면 <신라장군 이사부>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사부 장군에 대해서 물어보면 화끈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가 집니다.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현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독도는 우리 땅>을 아무리 외쳐봐야 누군가 조금 논리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야, 근거도 있어, 자, 봐...."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 측 논리와 역사적 사료가 아무리 정확하고 확실해도 모르면 집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을 쓰게 되었는데, 이걸 학술적으로 풀면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어렵고 지루하다는 겁니다.
쉽게 쓰고, 재미있게 써야 독자들이 읽습니다.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의 일부 문체는 소설 형식이나 대화체 형식을 빌어 쓰기도 합니다.
 
일본의 1억 2천만 인구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본의 어거지 논리였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공감대가 퍼져나가면서 세계에서 퍼진 일본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암암리에 작업을 합니다. 일본인이라는 의무감 하나로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최근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서 '독도'의 검색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Liancourt Rocks)'으로
소리 소문없이 바뀔 뻔한 사건도 세계에 퍼진 일본인들의 작품입니다.
다행히 우리 민간인 여성 두 분이 이걸 막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무서운 현실을 자각시켜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정부 대 일본정부가 하는 일도 많지만, 이제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 외국에 나가면 우리 각 개인은 대한민국 민간인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민간인 외교관으로서의 우리..... 우리가 모두 <독도의 진실>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 가능할 때, 독도는 진정한 <우리 땅>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에 대하여 쓰겠습니다.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읽게 하기 위하여 대화체 형식과 소설체 형식을 빌겠습니다.)
 
아슬라주 阿瑟羅州 (지금의 강릉) 주백에게 지증왕이 물었다.
- 우릉도于陵島에 우산국(于山國)이 있다고 들었다. 물산物産은 풍족한데 조공을 바치지 않으니 오랑캐가 아니냐.
   저걸 복속시켜야 우리 후방이 편해진다. 
 
사실 울릉도, 독도 지역은 어족자원이 상상 외로 풍부하여 대나무 하나만 빠트려 놓아도
다음날 전복이 새카맣게 붙어 올라오는 천혜의 어산漁産 자원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주백이 답하여 가로되,
- 우산국은 나라國라 하기보다는 고대부족읍락(古代部族邑落)인데
   거기에 육지에서 살기 힘들거나 수탈에 쫒겨 넘어간 백성들이 가세하여 무시못할 세력을 이룬 것 같습니다..
 
지증왕이 되물었다.
- 그런데 복속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 원래 '섬 것'이라는 것이 미개하여 왕화王化의 은덕을 입지 못한 관계로 조세나 조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군사가 치러가면 산 꼭대기로 피신했다가 방심하면 삼삼오오 내려와 괴롭히고
   오히려 물자를 약탈해 들어가는 천한 족속이옵니다.
- 알았다. 이사부를 들게 하라.
 
지증왕은 이사부 장군을 불러 명했다.
- 저걸 쳐라. 원래가 미개하다 하니 계략을 써서 치되,
   우리 군사나 저들을 심히 상하게 하지 말고 저들을 순화시켜 왕화王化를 입게 하라.
 
전쟁이라는 것이 적을 치고 목을 따서 겁을 줘야 복속되는 것인데 저 사나운 족속을 심히 다그치지 말라니,
아무리 왕화王化도 좋지만 참으로 힘든 주문이었습니다. 며칠의 고민 끝에 이사부 장군은 부관에게 명했다.
 
- 군사를 쓰지 말고 저걸 쳐라 하니, 사나운 짐승을 풀어 놓을 수 밖에 없다.
   너, 얼마 전에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를 본 적이 있느냐?
 
당시 신라는 세계 전역과 교역을 하는 나라였습니다.
각종 서역의 물자와 사자, 낙타 같은 동물까지 거래되거나 진상되고 있었습니다.
 
-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나운 짐승을 어찌....
- 천금千金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 우리 군사나 저들을 상하지 않게 하라는 주군의 명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울릉도에는 호랑이나 사자는 고사하고 뱀도 한 마리 없는 평화로운 섬이라는 것에 이사부는 착안했습니다.  
그러나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는 신라의 기후와 생존조건에 순응치 못하고 죽어 버린 후 였습니다.
부관은 죽은 사자의 시신이라도 사서 끌고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죽은 것 아니냐.
- 기후와 먹이가 달라 죽은 것이온데 장군의 명이 지엄하여 이거라도 끌고 온 것입니다. 
- 하는 수 없지. 잘 했다. 저것을 앞 세운다. 그리고 저걸 본 뜬 나무 조각을 만들도록 하라.
 
아침 어스름, 우산국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 안개를 헤치고 새카맣게 몰려 오는 신라 병선을 발견했습니다.
각 병선에는 함거같은 커다란 짐승의 우리가 실렸는데,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사자가 보였습니다.
 
- 아니, 저게 뭐냐.
- 저런 짐승도 있나.
 
개중에는 아침 안개 사이로 사자의 이빨을 살핀 시력 좋은 사람도 있었고 대처에 나가 사자라는 짐승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 이빨 봐라. 엄청난데..... 이빨 하나가 창 날만 하다.
- 저 정도 큰 입이면 사람 머리는 한 입에 삼킬 수도 있겠다.
- 저게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자'라는 짐승이다.
 
두려움, 공포만큼 전염성이 강한 심리도 없습니다. 우산국 병사들이 서서히 공포에 젖어 들고 있을 때,
병선 한 척이 앞으로 나오더니, 덩치 큰 장수 하나가 내렸습니다.
 
- 여기 수장은 나오라. 저 사나운 사자를 여기 풀어 놓으랴?
 
이사부 장군의 목소리는 공포로 찌들어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산국 사람들과 새벽 안개를 뚫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우산국은 복속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울릉도는 가시거리에 있는 독도와 더불어 신라의 왕화를 입어 우리나라 영토가 되었습니다.
 
......
 
위에서 가시거리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실지로 우리나라 정사(正史)인 ’세종실록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에 수록된 우산(于山)무릉(武陵) 현 울릉도 에서
’맑은날 울릉도에서 우리의 바다 조선해와 독도가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일본은 다시 시비를 걸어 옵니다.
 
일본의 외무성 관리였던 가와까미 겐조(川上建三)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1966년대 해군에서 가시거리를 측정하는 공식을 사용하여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공식을 해군에서는 가시수평선이라고 하는데 좀 귀찮지만(?) 공식을 한번 써 보면, D=2.09*(H^0.5+h^0.5) 입니다. 
D=시달거리(視達距離, 단위 해리),(1해리=1852m), H=물체의 해면상 높이(m), h=눈높이(m) 인데
가와까미 겐조는 시각(눈)의 기준점을 선박에서 쓰는 해발 4미터로 잡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가와까미 겐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측의 이한기 교수는 겐조가 얻어낸 30.3해리의 시정거리를 산출하는데
사용한 눈 높이 4m는 선상 갑판의 높이 2.5m에 키 1.5m인 사람이 서서 관찰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임을 지적하고,

독도의 해발고도가 174m 이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7.4 해리이므로, 이 값을 이용할 경우 키가 1.7m 이상인 사람이
해발 100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쳐다 본다면, 얼마든지 쳐다 볼 수 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참고로 울릉도 성인봉은 해발 984m 이며, 울릉도에는 100m 이상 되는 곳이 수두룩 합니다.
 
그러자 가와까미 겐조는 울릉도는 숲이 울창하여 해발 200미터 이상은 올라가기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성인봉까지도 얼마든지 올라가는데.... 가와까미 겐조는 헛다리를 짚은 것입니다.
 
이에 울릉군청 직원이 열(?) 받았습니다.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이 울릉도에서 독도 사진 촬영에 성공한 것입니다. 
 
김철환 님은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92㎞ 떨어진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날은 1년중 30~40일 정도며
해발 100m 이상 동쪽고지에서는 어디서나 육안조망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아래 사진은 울릉도 북면 천부리 석포마을(해발 360m)에서
(니콘 FM 2 랜즈500mm, 노출 11, 속도 30/1초)으로 독도를 촬영하여 공개한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바라 본 독도 ; 촬영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
 
이 문제를 다시 연구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한일 근대사의 실증적 연구에 앞장 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인다고 한다. 진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6개월여에 걸쳐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시, 독도를 촬영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인용합니다.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7.21 09:51)
 
문제는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육안 관찰과 동일한 가이다. 또 디지털 사진의 경우 조작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 실제로 울릉도에서 찍은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장소에선 나뭇잎을 앞배경으로 놓고 찍었으며, 디지털 조작이 불가능하고 표준 감도인 100의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다. 망원의 문제에 대해선 사진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사용한 일반기자들이 흔히 찍는 70~200mm 렌즈의 경우 육안으로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담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진으로 보이는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인간의 눈을 따라갈만한 해상력을 갖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사진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연구원쪽은 또 울릉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지역을 사진 촬영장소로 택해서 특별한 곳에서 매우 제한된 특정한 시기에만 독도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
 
신라장군 이사부 이후의 각종 사료를 인용합니다. (아래)
 

930년(고려 태조13년) 백길(白吉) 토두(土豆)등이 우산국을 대표하여 특산물을 바침으로,

조공에서 각각 정위(正位), 정조(正朝)의 관위를 수여함으로써

신라에 귀복되었던 울릉도가 그대로 고려에 복속(服屬)되었습니다.

1015년(고려 현종9년)에 동북여진이 우산국에 침입하여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자

관리 이원구로 하여금 농기구를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4년후에 또 다시 여진족의 약탈이 거듭됨에

본토로 피난 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명주(溟州:강릉)의 관리가 양식을 주어 이들을 보호하도록 한 사실도 있습니다. 


고려 성종때에 지방제도가 군현제도로 정비함에 따라,우산국도 고려의 한주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031년(덕종원년)에 우릉(羽陵) 성주의 아들인 부어내다랑(夫於乃多郞)이 조정에 특산물을 바쳤는데,

이때 조정에서 울릉성주라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1140년(고려 인종19년)에는 명주도감창사가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우릉도 특산물을 임금께 올렸고

이를 통해 우릉도 명주도감창사가 관활하는 지방조직에 편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때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렀습니다.
 
1425년(세종7년)에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라는 직명을 주어 울릉도와 독도를 관장토록 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50페이지 세째 줄입니다.
 
(잉용 끝)
[출처] 독도 - 신라 장수 이사부(異斯夫)가 확정지은 우리 영토|작성자 햇무리
 
......
 
 그 이후로도 한 순간도 변함없이 독도는 우리 땅 이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울진현군 지도.( 1531)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23 2000-이후 - 월참의 활동 상황 좋은생각 2008-08-06 977
222 [해설]독도의 진실-22 김해수 2008-08-05 403
221 [해설]독도의 진실-21 김해수 2008-08-04 443
220 [해설]독도의 진실-18 김해수 2008-08-03 314
219 [해설]독도의 진실-17 김해수 2008-08-03 442
218 [해설]독도의 진실-16 김해수 2008-08-03 335
217 [해설]독도의 진실-15 김해수 2008-08-03 404
216 메탄하이드이트 얼마나 좋을까? 복을 주옵소서 우주권자 2008-08-02 408
215 무너뜨리고 승리하자 우주권자 2008-08-01 576
214 독도 김해수 2008-07-31 420
213 [해설]독도의 진실-14 김해수 2008-07-31 466
212 ‘차기복합형 소총’ 내년 실전 배치 김일근 2008-07-29 442
211 시물과 중,목사,신부들... 우주권자 2008-07-29 460
210 참전명예수당 유감 팔공산 2008-07-28 662
209 Re.. 참전명예수당 법조항 개정시급 팔달문 2008-07-28 559
208 베트남참전 기간이 왜 다를까? 팔달문 2008-07-28 612
1,,,121122123124125126127128129130,,,134
대한민국 베트남참전 인터넷전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