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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동빈
작성일 2009-04-03 (금) 10:19
ㆍ조회: 454  
IP: 58.xxx.66
세계 최강 대한민국 예비군

* 오늘은 향토예비군 창설기념일입니다
                                     
                                      -   제 3 편


예비군들은 모두 생업이 있고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불 안 가리는

미혼의 젊은 현역 전투원들과 달리 나이도 있고 가정도 있어서 전투를 사리는

경우가 있었다. 맹렬한 전투력을 과시하던 일본군이 전쟁 후반에 동원한 나이 먹은

예비군[후비보병]들은 이스라엘 예비군들과 달리 영 시원치 않은 작태를 보여

주어서 일본 군부를 한숨 쉬게 하였다. 그러나 울진 삼척공비침투 소탕작전에

동원된 예비군들은 공비들과의 전투에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임했다가 전사한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1.전사한 예비군 소대장
예비군 소대장이 공비와 육박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이야기다. 6일 오전 11시 30분

명주군 00면 향토 예비군 제 1 소대장 전 병국[38세;농업]씨는 대원 8명과 함께 00산

계곡에서 공비들을 수색하다가 공비 1명과 격투 끝에 전사했다.
전 씨는 이날 오전 8시쯤 이웃부락 최 모[49]씨 집에 공비 1명이 침입 담배 성냥

닭 등을 훔쳐 갔다는 신고를 받고 부근 계곡 일대에 수색전을 벌였는데 낙엽으로

위장하고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덤벼드는 공비와 격투 끝에 기관단총에 맞아 전사했다.
전 씨는 농업에 종사하는 예비역중사로서 부모와 아내등 아홉 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전 씨는 상사로 진급되어 예비군 역사에서 최초의 진급자가 되었다.

2.총격전 끝에 전사한 예비군.
13일 정선군 00면00산 중턱에 무장 공비가 숨어있는 것을 박 요주 소대장이 지휘

하는 예비군이 발견하고 교전 끝에 적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 1대, 라디오 1대,

의약품등을 노획했다. 적은 아군의 격심한 집중 사격을 받자 부상자를 끌고
산속으로 달아났다. 이 교전에서 예비군 김연근[30]씨가 전사했다.

3.파월 장병출신 예비군의 죽음
15일 밤 11시 12분 삼척군 장성읍 000리, 향토 예비군 00소대의 정문 보초를 서고

있던 서 영남 [26]씨가 무장괴한 2명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복부 관통상을 입고

장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서씨는 4개월 전 월남전에서 돌아와 제대했었다.
군경 수색대는 일대를 포위 수색전을 벌이고 있다.

4. 아들의 오인사격에 희생당한 아버지
공비들은 자식의 총에 아버지가 희생되게 만들기도 하였다. 14일 밤 9시40분쯤

삼척군00면 00리 변 용섭[50]씨는 1킬로 떨어진 마을에 다녀오다가 예비군 초소

에서 공비로 오인 발사된 자기 아들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이날 변 씨의 장남 명득 씨는 5,6명의 예비군과 동네 변두리초소에서 잠복근무 중
수 미상의 공비가 나타나 10분간 교전 끝에 격퇴시켰는데 얼마 후 아버지인

변 씨가 갑자기 초소 앞에 나타나 공비로 오인하고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시신을 확인하고 명특 씨는 "공비 때문에 죄 없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시체를 안고 발버둥 치며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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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비군들에게 아쉬웠던 것은 빈약한 무장이었다. 공비들이 전원 기관단총이나

접는 AK 소총등의 자동화기로 무장했는데 예비군들은 8발 반자동의 M1소총밖에

없었다. 간부급들이 가진 칼빈 소총도 반자동이었다. 예비군 전투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은 근접 야간전투에서 필수였던 수류탄도 지급되지

않았었다. 당시의 신문들은 일선의 예비군들이 합창하듯이 요청하는 이 무장

보강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공비출현을 가장 빨리 알아채고도 즉각 이를

사살하지 못하고 군경의 지원을 얻어야했던 것은 장비가 허술한 때문이라고

예비군들은 안타까워했다 예비군에게 지급된 실탄부터 수량 제한되어 있어

충분한 사격도 하지 못했다. 근접 야간 전투의 필수무기인 수류탄은 절실하게

필요한 무기였다. 앞서 공비들을 사살했던 형제 예비군들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수류탄만 있었으면 모두 몰살시켰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평창군에서 5인 가족이 공비들에게 참살되었을 때였다. 공비들이 만행 후 달아

나는 것을 예비군 수색조가 골짜기 50미터쯤 뒤에서 발견하고도 수류탄이 없어

전멸 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들이 휘두르는 기관단총에 엠 원 소총으로

대결하다가 대원 한 명만 중상을 입고 공비들은 헬리콥터로 기동해온 공수

특전단이 전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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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은 물론이고 북한의 공작지휘자들도 며칠 못가서 자기들이 짜디찬 소금물에
던져져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올챙이 신세라는 것을 알아챘다. 공비들이 북한과
교신 한 내용을 감청한 것을 보면 비명과 절망에 찬 것들이 잡혔다.
“사방이 뚫기 힘든 벽이다!”
“복귀는 절망적이다!”
공비들이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진 10일 이후부터 이들은 민가 근처를 얼씬

거렸고 발견되고 토벌 당하는 횟수도 훨씬 증가하였다. 15명 일개조로 움직이던

이들은 신고가 급증하고 토벌도 가열해지자 일개조가 3-5명 수준으로 격감하였다.
북한의 우두머리들은 그때서야 꿈에서 깨어나 해방 촌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활로를 찾아서 북으로 복귀하라는 지시였다.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했던 공비들은
백두대간을 타고 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동하는 방향을 알게 된 군경과

예비군들은 토끼 몰이 식으로 이들을 몰아 쳤다. 병력이 태백산맥을 따라

집중적으로 배치된 것을 무선 감청으로 알게 된 북한은 공비들에게 태백산맥을

벗어나 다른 루트로 북상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공비들의 태백 산맥 도주로 -  주민들의 감시와 예비군과 군경의 차단으로 산맥

이탈 귀환을 지시 받고도 벗어나지 못하고 거의 산맥을 따라서 소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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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실정을 모르는 지령이었다. 태백산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쉽지가

않았다. 산간지방을 벗어나 인구 밀집지구로 들어가 복귀하라는 지시인데
이것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노출을 자초하라는 것이었다. 막판까지 갔던 공비들의

말로를 닷새간 같이 생활하며 지켜보던 남한 주민이 있었다


작전의 막바지인 11월 29일,

강원도 상원사에 침입해서 식량을 약탈했던 공비들이 그 절에 와서 공부하는

최 재기라는 재수생을 납치해서 대동 월북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다.
최 군은 닷새 만에 탈출해서 공비들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그가 말하는 공비들 다섯 명이 총상을 입은 상태였고 한명은 중상을 입은 위독한

상태였다는 것 그들은 위장 땅굴을 파놓고 낮에는 숨어있고 매일 밤 두 명이
뒷산에 올라 북한과 교신했는데 무선을 끝내고 내려와서
“ 어떻게 해서라도 넘어오라는 지시인데 아무래도 살아 돌아 갈
   가망이
없지 않겠느냐 '" 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는 정보를

조사 당국에 주었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예비군을 포함한 민관군이 한 달간

얼마나 거세게 이들을 압박하며 몰아세웠는지를 짐작케 하는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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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삼척 지역에 침투했던 공비들은 물론 남한 농민들의 지지를 받고
반정부 혁명에 참가하도록 유도하라는 지령을 받았음을 앞에서 밝혔다.
그러나 씨도 먹히지 않자 잔인한 살인을 서슴치 않았다. 이들이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은 무려 양민 11회에 걸쳐 23명이나 된다. 민간인 살해는 이들이

자주 신고당하고 군경에 쫓기면서 점점 더 대담하고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살해 행위는 남한 농민들에게 첫 선을 보이던 날부터 자행되었다.
출현 첫날 첫 주민 집합에서 한 명을 죽이고 그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산촌에

우편을 배달하던 배달부를 사살해서 개천 물속에 매몰했다.
유가족은 열흘 뒤에야 유해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때의 집배원 복장이 경찰과
비슷해서 사살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든다. 전 병두라는 사람을 해병대에서
복무했다는 이유로 학살했고 또 한 곳의 주민 집합에서는 공비들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머뭇거리는 벙어리를 학살하기도 했다.
공비들의 일가족 몰살의 잔인함은 일가족 몰살에서 볼 수 있다. 11월 14일 삼척군
하장면 산골짜기 외딴집에 사는 최 찬석[80], 며느리 [52], 손자 최 동학 [15]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야지로 끌고 가서 전원 살해했다. 11월 20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고 영일 [60]씨, 부인 이 형녀[61]씨, 며느리 [32], 장녀 [6],차녀

상금[3] 전 가족을 집 앞의 개울가로 끌고 가 발가 벗기고 칼로 난자해서 살해했다.
아들 고 원식 씨[36]는 출타해서 무사했다.
11월 25일 자정께 강원도 영월군에서 우 태봉 [27]씨 집에 공비 4명이 출현,

집에 들어서자 말자 무조건 각자에게 기관단총을 4-5발씩을 쏴서 사살, 우 씨만

탈출하고 우 씨의 어머니 박 옥순, 이복 동생 김 생규[12세], 장녀 영자[4세]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부인 안 분남[24]씨는 중상을 입혔다.
12월 9일 공비들은 유명했던 이 승복 어린이 집안 몰살의 학살 사건을 자행했다.
이 사건은 토벌의 막바지에 몰린 공비들이 저지른 잔인무도한 일가족 몰살

사건이기도 했다.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 부언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잔악한 학살이 있었던 이승복 어린이 집 - 철거되었다가다시 복원된 집이

현장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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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복 어린이의 아버지 이 석우 씨는 출타했다가 학살의 현장에
돌아 왔다가 

낌새를 채고 필사적으로 도주하여 살아남았지만  칼로 30여 곳이나 찔리고

두엄자리에 버렸던 이승복의 형 이 승권 군 [나중에 학관으로 개명]만 3일후에

의식을 찾고 살아남았고  이 석우씨의 부인과 승복의 두 동생들인 승자와 승수는

죽임을 당했다. 나중에 군경이 출동해서 발견했던 현장은 참혹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었다. 살육을 자행한 공비들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연속 살해범으로 잘 알려진 유 영철이나 강 호순 부류와 같은

싸이코패스라고 볼 수밖에 없는 비인간들의 처사였다.
알려 진대로 공산당이 싫다고 했던 이 승복군의 입을 찢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이 승권 군을 칼로 무려 30여 번이나 난자한 것도 상상을 초월한 만행이었다. 
그러나 이 승복 군의 죽음은 그의 여동생 선자양의 죽음에 비하면 그래도 잔인

함의정도가 낮은 것이었다. 공비들은 아직도 어머니 품속에서 어리광이나

부려야 할 네 살짜리 여아를 두 다리를 들고 벽에 패대기를 쳐서 살해했다.
사건 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들은 온 집안에 퍼진 피 냄새와 핏자국 방안에
여기저기 뿌려진 선자양의 터진 뇌수를 보고 몸서리를 쳤다는 후일담이 있다.



이 잔인한 사진을 가지고 몇개월을 망서렸다.그러나 오늘 공개하고자 한다.

공비들이칼로 오른쪽 뺨을 찢은 이승복군의 참혹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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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사건의 정황이 이랬는데도 이승복의 이야기가 날조되었다고

떠들어 냈던 인간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향하여 그렇게 대담하게 시비를

걸고 싶었으면 필자처럼 하루라도 투자해서 도서관에 가서 자료 수집이라도

해서 판단을 하는 양심과 조심성이 있어야했다. 더구나 슬픔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승복군의 아버지와 형이라는 유가족이  생존해 있는데도 그런 매명

[賣名]을 위한 공명심은 지각없는 짓이었다. 이 승복 집안을 박살낸 공비들은

며칠 뒤 토벌대에 의해서 모두 사살되었다.



 위의 이승복 어린이 집은 1972년 철거되고 새로 다시 지은 집이다.
이런 소박한 가정에서 유영철의 살인 현장에서나 볼 수있는 피바다
가 연출 되었으니 공비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밖에 부를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구미의 인기 블로거 마두님이 보내 주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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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후 1.21사태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 대부대의 침투를 당한 한국군은

이 사건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전력을 다해 공비들을 소탕 했을 뿐더러 군대내의

실수와 무능에 대해서는 사형이라는 최고형을 적용하여 엄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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