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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동빈
작성일 2009-04-01 (수) 18:31
ㆍ조회: 394  
IP: 211.xxx.123
세계최강 대한민국 예비군
세계최강 대한민국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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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해안선 초병과 간부들의 허위 보고로 침투 간첩들이  퇴치되었다고 방심하고 있던

당국은 공비 출현 신고가 들어오자 난리가 났다. 비상이 걸리고 병력들이

출동하기 시작했다. 육군과 해병대, 공수 특전단과 전투 경찰대에 공군과 해군이

출동하고 미군의 헬리콥터 공수 지원이 있었다. 토벌에 동원된 국군 병력은

일개 군단 규모였다.


여기에 더해서 가공할 공비 소탕력이 합세했다. 김일성이 남한에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했던 모택동의 팔로군 같은 강력한 농민 부대가 남한에 출현했던 것이다.
남한 판 농민 팔로군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죽이겠다는 결의를 가진 것이 달랐다.



울진 삼척 침투 공비들의 기본 무장 - 소련제 수다에프 기관단총7.62mm 구경의

권총탄을 발사했다. 1.21 사태때에도 공비들이 사용 되었다.
어떤 총기 전문가는 2차세계 대전 최고의 기관단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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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신편 된 향토 예비군이 그 것이다.
예비군이 숨겨진 가공할 공비토벌의

전투력이었다는 사실은 북한의 작전 수립자들이 전혀 계산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공비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비군이라는 노련한 전투원의 대병력이 촘촘한 밀집 방어를 하고 있는 곳에 그런

대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모두 쉽게 발견되고, 추적되고, 죽임을 당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향토 예비군 대원들은 그 무렵 근무하기 힘들었던 한국군에서 참을성 있게

3년간 복무한 경력이 있는데다가 농촌 지방, 산간지방, 해안 지방에서 농사일과

산(山)일,바다일로 생업을 하면서 다져진 강인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더해서 월남전에서 실전을 겪고 돌아온 파월장병 출신들도 다수 있었다.
낮과 밤이 멀다하고 침투하는 북한 간첩들과 전투를 경험한 휴전선 근무를 했던

예비군들도 많았다.

그리고 예비군 편제상 같은 소대원들도 학교 동창, 동네친구, 그리고 형제나

사촌 등의 일가들도 많았으니 작전의 호흡이 더 이상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예비군 용사 대부분이 태어난 뒤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었기에 주변 지리에
대해서는 눈 감고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이것을 다시 표현하자면 공비들이

자기 지역에 나타났다면 어디에 숨었을 것이고 어디로 도주할것이고 생포

하려면 어디에 목을 잡아야 하는 것쯤은‘감(感),으로 알고 있었다.

지리에 훤한 예비군들은 예비군 단독 전투뿐만 아니라 군이나 경찰 작전에
참여하여 길 안내를 하고 수색과 도주로 차단에 대한 조언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비군들은 공비 발견에 지역의 감시 능력을 한층 배가 시켰다.
아들 동생 남편들이 총을 들고 나서자 지역의 대 간첩 의식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전에는 대충 넘겨보던 수상한 사람이나 이상한 발자국이나 취사흔적, 유류품등에
대한 신고가 발 빠르게 이루어졌다. 작전에 참가한 가족이 있는데다가 자연히

높아진 경각심에다가 전화가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 신고를 위해 몇 키로 씩

지서를 왕복하지 않고도 이미 가동되고 있는 예비군 지휘라인만 통하면 금방

군부대까지 연결이 되니 신고도 극히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하고 귀찮아서 모른 체했던 심리도  없지 않던 터에  수없는 정보가 예비군

지휘라인을 통해서 접수되었다. 나중에 생포된 공비 정 동춘은‘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다.‘라고 실토했었다.



공비 노획품중에 위의 접는 개머리 판을 가진 AK 소총도 소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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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지만 소탕당한 백여 명의 공비들은 군의 수색이나
항공 정찰로 발견

것이 아니라 90%가 주민 신고에 의해 발견되어 끝장이 난 것이다.
더해서 어느 군 보고서도 예비군의 중요한 한 역할을 언급치 않았는데 예비군은
공비들의 소탕에 중요한 한 가지 역할을 했다. 공비들의 생존에 절대 필요했던
간첩들의 식량보급 루트를 차단했다는 사실이다.
예비군들은 주간에도 길안내 수색이나 전투를 했지만 밤에는 부락 주변 도로와

예상 접근로 등에 초소를 설치하거나 잠복조를 배치해서 공비들의 식량 조달을 

차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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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공비들은 식량 확보를 위한 민가털이를 보급투쟁[補給鬪爭]

이라 불렀다. 보급투쟁은 사실상 식량 강도질로서 공비들은 활동 노력의 태반을

여기에 소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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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은 사람 사는 곳에서 구해야하는데 이 예비군들의 야간 잠복은 사람으로서

먹고 살아야 할 간첩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들은 항상 손쉽게 털 수가 있는

인구 밀집 마을을 건너뛰어서 찾기 힘든 외딴 집을 찾아다녀야 했다.
모택동의 팔로군 전력이 결전에서가 아니라 후방교란, 보급방해, 소모강요와 같은
게릴라 활동에서 발휘했듯이 남한의 농민군인 예비군도 위의 소프트웨어적인
전력(戰力)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수더분한 농민 차림에 구식 엠원

[M 1] 소총을 메고 산을 오르는 이들을 보고 이렇게 강한 전투력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자동화기를 휘드르는 공비들에게 예비군들이 들고 맞섰던 M1- 8 발 반자동 

소총- 근거리에서는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그러나 예비군들은 이 구식총을

가지고도 공비들과의  치열한 총격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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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보기 민망한 요란한 외국 군장으로 으쓱대는 미리타리 메니어들, 또는

서바이발 게이머들이 눈에는 이 수더분한 용사들의 농사꾼 옷차림을 보았으면

무어라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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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삼척에서 대활약을 했던 예비군의 전사의 기록을 찾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선진국 같았으면 예비군의 작전 활동에 관한 책자 한권쯤은 이미 출판되었거나
예비군 교육용으로 전투 사례집이 이미 만들어져 정리가 되었을 법한데 유감

스럽게도 그런 것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며칠간 도서관을 찾아다니

면서 공비들이 침투했던 1969년 10월 30일부터 그 해 12월까지 마이크로

필림에 담긴 일간 신문을 모두 검색했다. 그러나 예비군에 대한 찬사와 국민들의

 성원은 많았지만 의외로 간첩을 사살한 전과와 연결된 전투 상보는 얼마 되지

않았다. 토벌 작전의 진행 상황과 전과가 군부대를 통해서 발표되다보니 군부대

활동 위주로 될 수밖에 없었던 같다. 그래서 아래에 신문검색으로 겨우 발견 할

수 있었던 울진 삼척 공비 침투사건의 예비군 활동 기사를 본보기로 몇 개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1968년 4월 1일 향토 예비군 창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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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제 예비군의 공비 2명 사살
공비가 침투하고 2주가 지난 뒤 15일 강원도 명주군 대대소속 부분대장 박 성훈

[ 31;병장]씨와 그의 형 영훈[35:병장]씨는 같은 동네 한 영식 씨와 [27]함께 동네

돌담 밑에서 잠복근무 중이었다. 0시 45분 쯤 이들은 앞의 oo재를 넘어오는

세 개의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긴장했다. 분대장인 동생의 명령에 따라 적이

10미터 앞에 왔을 때  ‘정지! 누구냐?!’ 하고 수하 했다.
대답이 없자 예비군들은 즉시 사격을 했다. 그들은 공비였다.
M1 총과 칼빈 소총이 불을 뿜자 공비들은 당황하여 허리를 굽히고 이들이

엄폐한 돌담에 기관단총을 연사하였다. 돌담에 바짝 엎드린 형제들과 한 영식

씨들도 사격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사격전은 10분이나 지속했다. 다급해진

공비들은 수류탄 두 개를 던졌다. 그러나 수류탄들은 돌담을 맞고 폭발 아군피해는

없었으며 오히려 폭발의 환한 불빛이 공비들의 위치만 노출하였다.
이때 불빛을 이용하여 동생 성훈 씨가 칼빈 총으로 공비 한 놈을 정조준으로

거꾸러 뜨렸다.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공비는 [악!]소리를 내며 큰 길 한가운데에

나가 떨어졌다. 나머지 2명은 응사를 계속하며 길 왼편 도랑치려다 형 영훈씨의

사격에 또 한 놈이 도랑에 쓰러졌다. 마지막 한 놈은 핏자국을 내며  도주했다.
사살된 공비들은 그날 초저녁 인접 다른 초소에서 지체 장애자로서 군복무를

하지 않았지만 자원해서 예비군에 협조했던 최종성씨를 사살하고 도주했었던

자들로 밝혀졌다. 교전 중에 동생 영훈 씨의 바지에 단 두 개의 총알구멍만 났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살된 2명의 시체는 도립병원 시체실로 옮겨졌는데 그중 1명의 몸에서는 문서

등이 나와 조장으로 추정되었으며, 또 1명의 팔뚝에는 문서 연락병이라는 국군

완장이 끼어 있었고 왼쪽 다리에는 고무줄로 무릎 밑을 매어 지혈을 하고 있어

아군에게 상처를 입고 도망치던 잔당으로 보인다. 성훈 씨에게 사살된 간첩의

몸에서 발견된 수첩에서 그들이 양민 두 명을 학살한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또“ 정찰기와 직승기-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쫓고 지상에서는 군경이 쫓아와

견디기 어렵다”는 것도 적혀있었다.
2.육박전으로 간첩 정 동춘 생포
무장공비 정동춘의 생포는 향토 예비군이 세운 또 하나의 수훈이었다.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 향군 61대대 장성중대 6소대 1 분대원 박 중근[ 37], 전 주호[32],

김 대규 씨등 3명은 9일 오후 3시 30분쯤 001리 00골과 00골 사이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001리 0반 김 모씨의 부인 황모[30] 여인으로부터 ‘옆집에 공비가 들어

왔다.’는 신고를 받고 즉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한 예비군들은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폈다. 간첩 정이 마당에서 부엌을 들여다보며 보면서 여주인

에게 ‘밥 좀 빨리 주세요!’ 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정이 부엌을 향해 있는 동안

박 씨등 예비군 3명은 공포를 쏘고 ‘손들어!’하고 고함을 치면서 마당으로 뛰어

들었다. 공비는 뒤돌아서면서 먼저 김 씨에게 덤벼들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30여분을 계속하다가 박 씨와 정 씨가 양팔을 잡고 김 씨가 빨래 줄을 걸어

정을 꼼짝 못하게 묶었다. 정은 곧 예비군 3명에게 연행, 철암지서를 거쳐 찝

편으로 장성 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공비 정은 지난 10월 30일 울진에 침투

매봉산 줄기를 봉화군00 산속에서 불침번을 서다가 낙오병이 되었다.

일행은 15명이었다. 침투할 때 각 공비들은 기관단총 1정, 수류탄 4발, 실탄만

4백발을 소지했었다.. 일행에서 낙오되자 00리 산악지대를 방황,
옥수수 가루등으로 연명하다가 배가 고파 부락을 찾아 내려왔다.
철암0리 양 모씨 집에 들어섰을 때 부인 유 씨는 처음 국군이 들어온 줄 알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유 여인이 부엌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공비는 추운데 방에

들어가도 좋으냐라고 물었다. 유여인은 비로소 그의 말투를 보고 의심을 가졌다.
유 여인이 이상한 눈초리로 자기를 훑어보고 딸 옥녀[17]양이 대문으로 나가자

‘연락하러 간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 말은 들은 유여인은 사투리며 말투가

공비에 틀림없다고 직감하였다. 유 여인은 정에게 빨래터에 간 것이라고 안심시켜

놓고는 뒷밭에 가는 척하면서 30미터 쯤 떨어져있는 반장 이 모씨에게 연락했다.

이 모 씨가 예비군에게 연락해서 예비군이 올 때까지 유여인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3,예비군이 혼자 잡은 공비
지난 23일 오후 7시 20분 정선군00면 00리 산골짜기에는 공비잔당을 소탕을 위해

마을의 예비군들이 저마다 잠복초소에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예비군00파견대

00소대 0분대장 박명환[31;하사]씨는 오후6시 30분 저녁상을 물리고 파견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난로에 나무가 떨어져 가는 것을 본 박 씨가 사무실을

나와 00교를 향해 약 150미터쯤 걸어 왔을 때 짤막한 키에 다리를 절면서

머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힘없이 걸어 나오는 괴한의 모습이 보였다.

이 동네에서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의 몸에선 이상한 악취가

풍겼다. 괴한은 작업복에 국방색의 잠바를 입고 농구화를 신고 텁수룩하였다.
아무래도 수상쩍다고 생각한 박씨는 10미터쯤 지나쳤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괴한의 뒤를 천천히 밟았다. 박 씨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왼손만 흔들며

배낭을 멘채 절룩거리는 괴한에게 바짝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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