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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수
작성일 2009-05-31 (일) 04:07
ㆍ조회: 367  
IP: 211.xxx.64
帝王의 自殺과 國民葬

帝王의 自殺과 國民葬



帝王은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자국민의 안위를 보살피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최고 통치자를 이른다. 황제 또는 왕이라고 칭한다. 오늘날 대통령제 민주국가에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이는 과거 세습적인 제왕들보다도 더욱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보살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하겠다.

백성들로부터 최고 통치자가 존경받는 까닭은 ‘만물의 이치를 밝게 이해하며, 바르게 처신할 줄 알며, 모두와 조화롭게 어울릴 줄 아는 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고전은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최고 통치자는 만민의 어버이라 부르기도 하고, 백성을 길러준다 하여 은혜롭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자살할 수 없듯이, 나를 길러 준 제왕은 국민 앞에서 자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 제왕 350명(秦始皇으로부터 淸나라 마지막 황제 傅儀까지), 일본의 천황 125명(神武천황으로부터 현 125대 平成까지), 우리나라의 임금님 216명(기록이 분명한 삼국시대부터 조선의 마지막 王 순종까지-신라 56王, 고구려 28王, 백제 31王, 가락 10王, 가야 16王, 발해 14王, 고려 34王, 조선 27王)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제왕은 중국 5명, 일본 1명, 우리나라 1명이다.



중국 제왕 중 自殺者 1호는 4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후 교만, 사치, 포악하여 3째 형에게 밀려나 별궁에 연금되자 자신의 요대로 목을 매어 자살한 十六國時代 成漢의 2대 왕인 幽帝이다. 서기 338년, 재위4년, 26세 때 자살했다.

자살자 2호는 十六國時代 前秦의 4대왕인 宣昭帝이다. 서기385년, 재위 28년, 48세 때 자살했다. 전쟁에서 패해 선위(禪位) 압박을 받게 되자 가솔을 먼저 죽이고 自決했다.

자살자 3호는 五代十國시대 後粱의 마지막 왕인 朱友貞이다. 서기923년, 재위11년, 36세 때 自決했다. 후당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게 되자 자결의 길을 택했다.

자살자 4호는 金나라 9대왕인 哀宗이다. 서기1234년, 재위12년, 37세 때 自決했다.  몽고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왕위를 내어주고 자결했다.

자살자 5호는 明나라 마지막 왕 崇禎帝이다. 1644년, 재위17년, 34세 때 자살했다.

만주족(淸)에게 나라를 잃는 굴욕을 당할 수 없다하여 망국한을 품고 자결했다.

이들 5명의 공통점은 자살 연령이 1명을 제외하고 20-30대 한창 젊은 나이라는 점과 왕위 또는 나라를 잃게 된 상황이 자결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日本 天皇 중 유일한 자살자는 제 81대 安德天皇이다. 서기1185년, 재위 6년, 8세 때 자살했다 한다. 8세 밖에 안 된 미성년자이니 자살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역사기록에 政敵들에 쫓기던 친위세력들과 같이 강물에 투신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2세에 천황에 즉위하여 정적들에게 몰려 8세에 왕위를 빼앗긴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自殺한 제왕은 고구려 14대 烽上王이다. 서기299년, 재위 9년에 자살했다. 그는 교만하고 의심이 많았다 한다. 낭비와 사치를 즐기고 무능하여 재위7년에 총명한 이복동생 乙弗王子(15대 美川王-漢四郡을 몰아내고 고구려 영토를 확장하여 고조선 옛 땅을 회복한 明君)를 시기하여 제거하려다 실패한 후 실정을 거듭하게 된다. 재위 9년에 乙弗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신하들의 움직임이 일자 自決하고 왕자들도 따라서 자살했다.

왕이 죽은 후 烽山에 장례하고 시호를 烽上王이라 했다. (그로부터 1700여년 후 노 전대통령이 자살한 峰下마을과는, 烽上- 峰下라는 음률과 上-下라는 연관성이 연상되어 우연치 않아 보인다.)   



종합하건데 과거 2천여 년 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몇 명 帝王들의 공통적인 자살 동기는 실정과 무능으로 인한 정쟁의 결과 왕위를 빼앗기었거나 亡國의 한을 품게 된 이유 곧 결과적으로 실패한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을 역사의 기록은 알려 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회적 인격적 경륜이 충분한 연령대인 50대 후반에 다수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고 나라와 백성을 이끈 후 耳順의 나이를 지난 64세에 自殺의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서도 특이한 ‘국가지도자의 죽음’이라는 사례로서 기록될 것이다. 떳떳한 동기에서 ‘지도자로서의 自決’을 택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받기는 어렵다고 보여 진다. 보통의 백성들 상식 수준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고인을 좋아했던 안했던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저리게 하고 비통, 충격, 안타까움을 가져다 준 것은 지도자로서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죽음의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법치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에 일어난 부패혐의로 형사피의자 상태에서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는 도중에 조사대상 스스로를 사라지게 한 셈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주요 조사대상이 인위적으로 사라진다고 하여 수사 진행 중인 형사사건을 즉각 전면 중단하는 것 또한 법상식상 이해되지 않는다. 공권력 집행기관이 국민에게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약속했으면 진상을 규명하고 국민에게 결과를 보고해야 마땅하다.



이제 노 전대통령의 국민장은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서민출신 대통령을 잃었다는 허탈감이나 국가지도자였던 분이 자살을 했다는 충격 등 감성적 상처에서 벗어나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우리자신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이라는 고인의 유지를 살리는 길이다. 國民葬은 국민 모두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고인의 뜻을 받들자는 것이다. 고인의 죽음의 방법은 탓할지라도 마지막 유언의 뜻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을 보면서,

5. 28. 조찬 모임의 恒山 金裕赫님 ‘帝王의 自殺’ 강연 내용을 인용 재구성한 것임-



2009년 5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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