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과 익명의 무책임한 댓글에 의한 게시판 분위기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회원가입제(무료)로 운영되고 있읍니다.( 다만, 정회원 가입은 회칙에 의하여 연회비(현행 3만원)를 부담합니다.)
익명, 또는 게시판 특성에 어울리지 않는 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읍니다.
작성자 박동빈
작성일 2010-09-18 (토) 10:50
ㆍ조회: 471  
IP: 211.xxx.106
하늘나라 가면서 아들이 기록한 글 입니다

욥의 믿음과 도마의 믿음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손가락을 그못자국에 넣으며 내손을 그옆구리에 넣어보지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5 도마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구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 ~4

병마와 싸우나 하나님께서 결코 이유없이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라는 믿음을 갖고 이겨냄을

보여주는 말씀구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병마와 싸운후 깨달은 믿음적인 체험을 여러분들과 은혜속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말씀구절을 여러분들게 들려드린 이유는 제 믿음이 과거에는 도마의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마를 사랑하셨지만 부족한 믿음을 안타까워하신 예수님을 말씀구절에도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9)에 나타납니다.저는 상황은 틀리나 결론은 눈으로 보는것과 체험해야 믿는 믿음과 별반 다를게 없다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아주 꼬마일때 꿈얘기를 해드리자면 다른 동네친구들은 각기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갈 때

저는 예수님등에 엎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적이 있었습니다.그때 선한 예수님 옆모습은

아직도 생생한데요.오늘 꿈얘기 몇가지 해드리겠지만 그것 또한 어렷을때 체험아니겠습니까

얼마후에 또다시 꿈을 꾸었는데 천국이랍니다.앞에 엄청나게 높은 문을 지키는이가 있는데

저보고 베드로라고 하더라구요.그 꼬마가 베드로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베드로라고 하니깐 베드로구나 했지요.그때부터 체험적인 신앙이 저에겐 주관적인 삶이 됩니다.이때부터 체험을해야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확신을 일시적이나마 갖게 됩니다. 그 꼬마는 사춘기때 확실한

방황을 하게 됩니다. 교회보다는 학교친구들과 어울림으로 툭하면 가출하거나 외박을 일삼는 청소년으로 변했습니다.공부보다는 일찍이 당구와 춤에 빠지고 세상적인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던거죠. 서울 금호동이 이태원과 가깝다보니 중학교 친구들중에 백댄서로 진출했던 친구들이 있었지요.그친구들과 어울리며 오락실에서든 집에서든 춤을 추게 됩니다.그러다 강남 역삼동으로 이사해서는 또다시 세상친구들과 어울리지요.지금보다 그당시에 서울안에는 거의 돌아다녔지요. 주 아지트는 방배동 카페골목,신림동 사거리,봉천사거리,안양1번가,가리봉사거리,노원역등등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우던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래도 막대먹지는 않았고요.공부에 그리 취미가 없었고 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일찍부터 알바를 시작했습니다.17살부터 용산전자상가 식사배달,찌라시 돌리기,주유소 권총잡이,

당구장,전단지 배포,서울역 식당 배달등등 닥치는데로 알바를 했었지요.그당시 친구들은 부모님이 삐삐사주시고 했지만 전 제힘으로 돈벌어서 94년 처음으로 20만원에 삐삐를 장만했거든요.핸드폰 처음 나왔을때는 고등학교 3학년 취업을 전화국으로 나갔을때인데 지금은

KT로 회사명이 바뀌었지만 그때 첫월급으로 아버지 PCS폰 선물해드렸습니다.그리고 군대가기전에 안흥이라는 태안반도옆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있거든요.거기 연구소안에 주위를 철조망 설치하고 연결하고 하는 일명 노가다도 뛴적도 있고요.어렷을때부터 돈에 필요함을 일찍이 눈을뜨니 하나님은 그때 안중에도 없었습니다.지금 뒤돌아보면 나름대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네요..저도 코미디언 김국진씨처럼 롤러코스터의 인생길을 살아왔군요.

성공도 해봤습니다.전화국에서 케이블설치팀에서 근무할 때 22살에 그니깐 2002년

초에 월급300만원 고정으로 받았구요.사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당시 유명한 나이트는 꼭 갔었고,돈이 아깝지않을때였습니다.허나 저에게 시련이 찾아옵니다.전화국에서 쫓겨나지요.도급으로 일하다보니 정규직사원이 아니라 1년계약으로 매년 일해왔는데 예산문제로 사실 거리에 나앉지요. 마침 안산 시화공단에서 머시닝센타라고 선반가공업체에서 근무하는 형님이 계셨는데 같이일해보자하여 일단 돈벌생각에 그리 갔지만 1년후에 통신부품 단가급락위기로 문을 닫았지요.그게 2006년도 였습니다.그러다 실의에 빠져있을때 강선애 권사님께서 물어보지도 말고 강남금식기도원 가보라 하셨어요..그당시까지만해도 1분도 못하는 기도로 힘들어하는 저에게 2주간 갔다오래요.암담했죠.허나 지푸라기잡는 심정으로 묵묵히 가방메고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그곳에서 드뎌드뎌 성령체험을 합니다.

첫주 2~3일째에는 두려움으로 가득찼었지요..다들 미친사람들처럼 보이고..울고 불고 옷을 뜯고....전 도저히 적응불가였었습니다.그냥 산책도 하고,예배보다는 제앞날에 불안하기만 했었지요..그런데 홀연히 5일차쯤되어서 오후예배를 드릴때 통송기도시간에 눈을 감고 끝나기만을 기다릴때 누군가 제머리를 누르는듯 했습니다.그리고 아주 뜨거웠어요..태어나서 처음인 그 느낌인지라..혹 그런생각에 눈을 떳지요..목사님들이 돌아다니며 안수하는구나..허나 그게 아니라 아무도 없었습니다..다시 놀란 눈을 감았을때 꼬마때부터 해왔던 저의 죄악들이 너무도 챙피할정도로 선명하게 슬라이드형식으로 지나가는거에요.순간 눈에서 눈물들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고 1분도 못했던 기도가 모그리 할말이 많은지 방언도 아니지만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가슴을 치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요부터 시작해서 계속 회개만이 나오더랍니다.그러면서 20분이 지나고 1시간정도 할수 있는 기도시간도 갖게 되었답니다.갑자기 기쁨이 넘치고 미친사람처럼 기도원에서 웃고 다녔지요.그때 깨달았죠.아~성령님이 나에게 오신거구나!그생각에 더 기분이 좋았더랬습니다.둘째주가 되어서는 사탄의 역사였던지 기도가 잘안됬어요.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도 했었지요.힘들다..기도도 안되고 설교말씀도 자꾸 고깝게 들린다.엄마는 이겨내래요.무조건 이기는길밖에 없다 하셨어요.끝내 참고 참고 안되는 기도 억지로 해서 둘째주 4일째되던날 무의식적인 기도에 다다릅니다.전 복음전파해야되는데,복음전파해야되는데....제생각과 다르게 기도가 계속 나오는거에요.선교사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않고....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지요.

뜻하지않은 결과이니깐요.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어요.이거 응답이지?

어떡해야되지?순종은 해야되는데..순종은 해야되는데..머릿속에선 맴돌지만 행동이 안되더라구요.그때 더 화끈하게 하나님을 부여잡지 못한게 허송세월을 허비하게 되지만요.그때 새로운 직장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주먹구구식 회사였지요.탱크로리 제작업체였는데 자재관리부소속으로 입사하였는데 사수도 없고 인계자도 없는 곳..사무실직원은 총 3명..생산직원은

7명..협력업체직원 4명..자동차수리직원 5명인 특장업체에 입사합니다.저를 면접본 사람이 지금은 사장이 됬지요.나이는 저보다 한 살위였지만 회장님 아들이었습니다.회사는 작은곳은 아니었어요.전주에 1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직원이 100명이 되고 수출품목이 많으며 자체 펌프,밸브등등 가공해서 생산까지 하니 연매출 200억대하는 큰공장이었거든요.반면에

2공장인 용인공장은 기존직원들이 빠져나가 새로운 회사를 차리므로 사무실직원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어요.그당시 사장은 차장직급으로 저를 면접봤고, 자재관리담당자로 채용합니다.그래서 인계자도 없고,사수도 없는 곳에서 저의 일은 시작됩니다.회사생활 초기는 저에게 오히려 약이었습니다.성령충만이 남아있어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욕먹거나 하면 마침 회사앞에 장로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과시간에 10분이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그당시 차장도 자기 앞가름하기 정신없음으로 저에게 일도 인수인계가 안되고 저돌볼 능력도 안됬고

맨날 생산부직원들에게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수였었죠.오히려 그게 나았습니다.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자재담당자가 1년만에 3명이 바뀐사실을 알았지요.그만큼 텃새가 심했습니다.허나 전 물러서지않고 기도로 버텼습니다.욕먹으면 바로 회사앞에 교회가서 기도를 했으니깐요.횟수로는 하루에 7번까지 해봤습니다.주님!주님만이 지켜주십니다!그러곤 회사들어와 다시 욕먹으며 일했지요.6개월지났을때 일이 보이기 시작하더랍니다.마침 자재가 젤루 많이 들어가는 완성탱크가 있었습니다.출고직전이었는데,다들 퇴근하고 아무도 없을때 수첩들고 거기에 들어간 일반육각볼트 mm치수까지 재서 적기시작합니다.그래서 부속들이 몇 개가 들어가고 금액도 나오게 되고..드뎌 저만의 액셀파일이 생겼지요.그때부터 현장직들과 싸우기 시작하고 목소리도 커지게 되고 그랬지요.근데 그게 저한테는 독이었어요.

오히려 싸우게되고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더라고요.알게되니깐요.그래서 사표를 냈습니다.그때 전직원들이 일을 멈추고 저를 식당에 데려가 술을 맥였어요.사무실 책임자부터 시작해서 계속 저를 설득하였지요. 술좀 깨고 퇴근하려는데 회장아들과 생산부차장과 하청업체 사장이 술한잔 더하자하더라구요.그래서 삼겹살 먹고 저를 델꾸간곳이 용인에 ‘쉬갈’이라는 룸살롱이었습니다.그곳에서 처음으로 아가씨와 양주먹었습니다.그게 완전 독이었어요.

발렌타인17년산이 그리 비싼술인지 알게되었으니깐요.그때 꼬드김이 저에게 성령충만이 서서히 없어지게 됩니다.그후 한주는 회장아들이,한주는 생산부차장이,한주는 하청업체 사장이약 한달간 저를 룸살롱으로 인도했지요.그때 외박하는날도 부지기수였었고.다시금 서서히 타락의 생활로 접어들었습니다.그때 저의 교만이 생기기 시작하지요.이회사에서 내가 이정도의 위치가 됬구나.1년도 안되서 매입처등 거래처까지 잡았으니깐요.한달에 한번꼴로 30만원 부수입도 생기게 됬고,다시금 세상속으로 허우적되게 됩니다.회사에서 비성수기일때는 현장차장이 전화해서 식당으로 오라하면 낮에 둘이서 술한잔 하고,회장아들은 비록 제 직속상관일지라도 제눈치보면서 같이 술한잔먹고 그정도였으니깐요.사실 무서운게 없었습니다.

2년에 한번씩있는 크레인검사,환경부,소방서,시청공무원검사까지 회장아들과 같이 전반적인 회사운영하는 기틀을 만들었으니 회사안에서 감히 저에게 욕을 못하게되는 위치까지 서게 되었습니다.그러면서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게되고 오직 머릿속에 회사일로 사로잡혀있었지요.그생활을 하다가 2009년 초여름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제가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지요.근데 무서운것은 예수님몸이 순차적으로 없어지는거에요.오른쪽팔이 없어지고,오른쪽다리가 없어지는 희한한 꿈을 꾸게 됩니다.너무 무서워서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김경희권사님께 한번 전화해볼래?하시는거에요.그래서 전화해서 말씀드렸지요.당시 김경희권사님께서 성령충만이 없어지는거라고 그러시며 어렵게 쌓아올린 믿음을 한순간에 무너지기 쉬우니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그때 다시 정신을 찾고 술도 금주하며 퇴근하면 바로 동백성교회와서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며칠 눈물로 기도드릴때 성령님의 음성이 제맘을 강타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정희야! 내가 널 사랑하는데 넌 방황하니?내가 널 사랑하는데 넌 만족을 못하니?”그음성을 듣고 다시금 맘을 가다듬고 하나님을 가깝게 지냈지요.일과시간에도 게을러진 모습을 가다듬고 한동안 가지않은 회사앞 교회가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요.다시금 믿음의 회복을 노력하게 됩니다.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어요.다시 술의 유혹이 시작됬지요.회사가 점점 번창하기 시작하더니 국내수주에서 조달청물량까지 오더가 들어오더라구요.그러면서 회장아들은 차장에서 대표이사로 승진하게되고 전 자재관리부 대리로 승진하게 됩니다.회장아들은 왠지 불안했나봐요.다시 저를 술의 유혹으로 끌어들였지요. 예전에는 현장차장과 동석하에 룸살롱을 가든가 술을 먹고 그랬는데 저와 단둘이 먹는날이 많아졌지요.전반적인 회사운영은 저와 조율도 했고,납기일까지 저에게 상의할정도였으니깐요.마침 2009년 말에 군산공단에 휘발유운송탱크로리 24대가 조달청에 공모됬는데 저의 회사가 체결하게 되었지요.그때 전주공장은 인도네시아 수출하는 물대포차 1600대 생산하고 있었고..암튼 2009년 가을부터 회사가 호황이었습니다.일에 치여 살기 시작합니다.

주일에도 1부예배만 드리고 저는 회사로 출근했지요.누가 나오라고 하지도않았을뿐더러 사무실직원은 특근,야근수당이 없으니깐 오히려 손해를 보면서 저는 주님을 버리고 출근했습니다.일단 24대분 자재를 준비하기 시작했구요.따로 생산하는 똥차 출고검사도 하고 했으니깐요.교회에서 청년회장이었지만 오히려 회사에서 대리가 저에게 어울릴정도였습니다.그때 또다시 한번 꿈을 꾸게 되는데요.2009년 11월이었습니다.꿈에 회사직원들과 한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데 제가 테이블위에 올라가있었지요.그런데 입구쪽에서 한분이 옆에서서 슬픈표정을 하고 있더랍니다.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어요.꿈속에서 조차 저를 기다리고 계셨지요.밖으로 제가 나오기를.......잠시 다시 맘을 가다듬은것이 그래 열심히 피운 담배라도 끊어보자.예수님이 용서해주시겠지라는 생각에 12월부터 금연을 시작합니다.술은 계속 먹었지만요.서서히 연말분위기도 생기고 교회에서 하는 올해 성구말씀이 기다려지고 기도도 했습니다. 주님!2010년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송구영신예배때 뽑은 두가지 말씀은 욥기말씀중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와 이사야서말씀중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저를 지명하여 부른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이말씀을 저는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착각속에 빠지게 되죠.아!내가 지금있는 회사에서 나의 존재가치가 더발하여 성공하겠구나!라는 교만으로 가득차집니다.그래!성공할때가 됬지!초고속 승진으로 과장으로 승진해야지!하나님이 드디어 열어주시는구나!그건 저만의 자아도취였습니다.2010년 1월초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지요.

어느날 갑자기 출근해서 3층 사무실에 올라가는데 중간에 주저앉았습니다.숨이 차서 그리고 피곤해서..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금단증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구요.그 증상은 일하면서 더 심해집니다.현장에서 자재를 옮기지 못할정도로 몸이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공식적으로 똥차에 장착하는 3인치진공펌프무게는 57kg, 25톤차에 장착하는 4인치기어펌프무게는 104kg인데 이것을 평상시에 굴려서 구르마에 실고 자재창고에 진열했었는데 도저히 힘도 안나오고 급기야 주저앉았습니다.10분이면 처리할거를 천장5ton 크레인으로 양쪽 짐바로 걸어서 세월아 네월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죠.그때부터 현장직원들도 박대리 빠졌구나라는 뒷담화까지 듣게 될정도가 되었습니다.근데 어쩌겠습니까 몸은 안딸아주는데..오죽했으면 1월중순에 사표냈습니다.도저히 몸이 이상해서 저도 정밀검사 맡아야지라는 생각과 마침

현장차장과 틀어졌기에 회사출근하는 월욜날에 핸드폰 꺼놓고 오산리기도원가서 하루 기도드릴정도였으니깐요.회사에서는 자재를 누가 보냐며 사표 그 자리에 찢고 저는 몸이 이상하니 도저히 안되겠다하고 대신 절충안을 직원한명 구하는 조건과 일과시간에 병원다녀라였습니다.일단 그리 합의하고 2월이 되어서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하여 급한마음에 회사앞 병원가서 두시간 해열제를 맞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업무를 봤습니다.그 행동을 3일동안 했지요. 일하다가 갑자기 열나면 병원가서 해열제맞고 다시 일하고 담날 또그러면 해열제맞고..

병원에서도 의심이 갔는지 갑자기 신종플루검사를 해보자하더라구요.그래서 검사도 했고 X레이도 찍었는데 폐도 이상이 없었고..그날 오후에 병원을 나와 회사와서 업무본지 30분만에 다시 열이 급격히 올라가더니 먹었던 점심을 다 토하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는 회사에 얘기하고 조퇴를 처음으로 했습니다.그날 밤 기침과 고열로 보내며 순간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기절합니다.다시금 눈을 떳을땐 엄마가 이마에 찬수건을 얹어놓고 계시더군요.새벽에 아버지와 용인세브란스병원가서 다시 해열제를 맞고 6시경 X레이 사진을 찍었을때는 폐렴이 심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그때도 안이하게 생각했죠.이왕 아프게된거 1주일 병원에서 푹쉬고 일하자라는 착각을 또한번 하게 됩니다.신종플루로 폐렴이 올수도 있다는 교수의 말에 1인실에 입원하였지요.그때 혈액검사도 나가게 되고요.하루만에 청천벽력의 소릴 듣게 됩니다.엄마와 함께 병실에서 아마도 백혈병의심이 든다는 주취의말을 듣게 되지요.그때 저는 심한충격과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그러나 역시 제엄마의 믿음은 저와 비교가 안됬습니다.담담해하셨죠.기도해보자.하나님의 무슨뜻이 있으시겠지.욥기에 나오는 말씀구절처럼 이유없이 고난을 주시지않는다라는 얘기를 저에게 하셨어요.그상황에서도 저는 믿지않았어요.오히려 치료안한다고 하고 하나님보고 책임지라고 그래 난 기도원들어갈거야 거기서 치료해달라고 그래라는 망발을 하게되죠..그때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바보였습니다.계시면 살려주시겠지라는 오히려 제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었죠.하지만 저의 바램과는 다르게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서 백혈병판정을 받고 일단 죽음을 앞에둔 폐를 치료해야된다하더라구요.응급실에서 주취의가 부모님만 불러서 모라고 얘기하는데 나 죽는구나!라는 확신이 들더라구요.그래서 면담마친 엄마에게 재차 물어봤습니다.엄마 나 죽는데지?대답없는 엄마..점점 가파오르는 숨..산소호흡기를 착용했는데 정상인 수치가 90이라는데

전 숨을 쉴때 10~30만이 왔다갔다할정도였습니다.그러니 제자신도 살생각보다는 포기하기에 이릅니다.몇시간후에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하루는 지옥과 같은 날을 보내게 되지요.기침이 멎지않고 점점 숨은 쉬기 힘들어지고 간호사가 이거 마시면 편안해진다하여 마신뒤로 기억이 없습니다.그리고 다시 눈을 떳을때는 한간호사가 얘기해주더군요.오늘이 몇일인줄 아세요? 3월 8일이에요.....제가 한 10일은 혼수상태였나보더라구요..입안에는 긴 호수가 들어가 있어서 말도 못하겠고 온몸은 누구에게 맞은것처럼 너무 아프고 30살넘어서 팬티가 아닌 기저귀를 차입고..정신이 들은 그날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습니다.차라리 죽는게 나았을것을이라는 생각에 그날 소리없이 울기만 했습니다.또다시 원망했지요.하나님 데려가시지요.그래도 천국은 갈수 있을거 아니에요....... 그때 순간 제맘속에 너가 과연?지금까지 무엇을 했는데 천국을 가지?라는 생각이 번뜩들었습니다.그리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갑니다.

하나님께 원망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주실지 속으로 기도도 드리게 되었으며,왠지모를 절망보다는 희망이 제맘속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며칠후 폐속에 들어간 호스도 빼게 되었고 중환자실에서 벗어나 항암병동으로 옮긴후 엄마와 한달정도 생활할 때 그곳이 저에겐 오히려 천국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저의 엄마를 제곁에 두셔서 제믿음을 다시 붙잡아주시기 시작했죠.매일 하나님 얘기,아브라함이야기,욥의 이야기 그리고 동백성교회 응답받으신분들 이야기등등 저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얘기하시며 저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었습니다.그때만큼은 제엄마가 아닌 주님의 사자였던 저의 윤순복권사님이셨습니다.모든것을 내려놓을수 있었던 때이었고 그당시 2010년 1월 1일 송구영신때 받은 말씀의 뜻을 드디어 알게되었구요.이모든게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세상것을 모두 버리게 하시고 너를 지명하여 부른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하리라라는 말씀의 뜻과 너는 완전 내것이라는 금보다도 귀한 값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무사히 퇴원해서 1차요양을 갖고 2차항암을 치료중 이식을 준비해야된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저는 골수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식이 아니면 치료가 안된다 하였지요.그리고 제일 좋은 이식은 형제간의 동종이식이 좋다라는 얘기를 듣게되었습니다.때마침 1차항암치료때 누나 유전자검사가 들어가 있었지만 제 유전자가 이상하게 들어가 있지않아 뒤늦게 들어가는 아이러니함이 생깁니다.그런데 왜 불안하지 않았을까요?오히려 그때는 제엄마가 불안해하시고 조급해하셨습니다.저는 병실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시편말씀을 읽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꼭 기도때 누나와 유전자가 맞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더 좋은거 주시겠죠?걱정안하겠습니다라고 매일 기도드리니 오히려 편안해지더라구요.그리고 데려가셨음 진작에 데려가셨을텐데 살리신 이유가 있으시니 좋은뜻이 있을거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2주후에 4개 유전자중 앞에 2개가 일치하여 뒤에 2개 유전자일치 검사들어간다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그때 입원한 환자들중 대부분 유전자불일치로 낙심한 상황인지라 좋아할 티도 못내고 다시 기도에 접어들었지요.병실에서 새벽에 변함없이 기도하며 2차도 맞게 해주시죠?아니더라도 주님을 믿습니다.더 좋은거 주실 주님을 의지합니다....이기도 다시 2주뒤에 응답은 2차검사도 일치하였습니다라는 결과였고 유전자일치에 혈액형일치까지 되니 너무 좋은 세포 받으시네요라며 축하의 말까지 듣게 되었지요.허나 의외로 저는 담담했어요.놀라지도 않았구요.이모든게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으니 놀랍지도 않더라구요.무사히 2차항암치료도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퇴원해서 이식일을 잡고 이식실에 입원했습니다.이식전날까지 4일간에 전신방사선치료와 백혈병항암제중 제일 쎄다는 싸이덕신을 이틀간 맞고 완전 제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눈은 떠지지않고 뻗어있었지요.엄마가 면회왔는지 긴가민가할정도였고 구토와 심한 역겨움으로 고통속에 빠져있었습니다.이식전날 초저녁에 다시 꿈과 함께 환상일정도로 오싹한 경험을 하게됩니다.어떤 귀여운 어린남자아이가 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갑니다.그때 저는 난 안가!너나 가!그아인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같이 가야된다면서 엄청난 힘으로 저를 끌고 갑니다.온몸이 움직여지지않은 저는 머리로 그아이 이마에 대고 문질르며 얘기합니다. 나! 성령님과 함께 있단말이야!너 성령님 알아?근데 그아이 오만가지 인상을 쓰더라구요. 다시 웃으며 저를 데려갈려고 합니다.저는 직감적으로 아이가 아닌 사탄이란것을 알아채고는 지금까지 해보지못한 말을 하게 됩니다.사탄아!물러가라!그러며 눈을 떳을때 왠 검은손이 저를 안을려고 하더라고요.다시 저리가!!라고 하며 일어났습니다.그시각 저녁 9시못된

이른 시간에 있을수 있는 일입니까?그리고 담날 무사히 이식을 하게 되었구요.정말 무서운체험이었습니다.사탄이 아주 귀여운 어린아이모습으로 올수 있다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제가 피폐했을때는 항상 검은뱀모습으로 왔던 사탄이었는데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무서운

체험이었지요.어쨋든 지금은 신학대학을 준비하기위해 서울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하는 신학준비생이 되었습니다.이렇듯 제짧은 인생중에 체험은 아주 귀한 것이긴 반면에 도마의 믿음처럼 체험이 안나타나면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게을러지는 신앙인이었습니다.눈으로 보는것과

몸으로 체험하는것..결국 육으로 하나님을 만나는것과 다를바 없지않습니까..보이지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것 엄청나게 어려운 생활이지만 아브라함처럼 피부암에 걸렸어도 하나님을 놓지않는 욥처럼 믿는다면 여러분들의 이땅생활은 분명 복에복을 더하시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믿습니다.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듣고 싶어하는 꿈을 꾸면 믿게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말씀에도 있고 성령님께서 마음으로도 주시고 저의 엄마를 통해 얘기하실수도 있습니다.좌절하지 마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에뜨랑제
2010-09-19 13:40
회원사진
박동빈전우님!
"하늘나라가면서 아들이 기록한 글"이라는 제목이 가슴 저리게 합니다.
아드님이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말씀인가요? 나만 모르는것인지 아니면 우리 전우님들 모두가 모르는 일인지요?
나만 몰랐다면 이 일을 어찌할까요. 암턴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팔공산 7월쯤 아드님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아드님의 이야기는 아닌것으로 생각되었는데 다시 확인해 보아야 될것 같습니다. 9/20 00:39
   
이름아이콘 안케
2010-09-19 20:54
이 글을 보니 저도 자식키우는 부모로서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자식을 떠나보낸 박 선배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무슨 말로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짧은 생애였지만 하나님 곁으로 갔을 것입니다. 여기에 위안을 삼으시고 상심해 있을 사모님께도 위로의 말씀드림니다.  박동빈 선배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드림니다.
   
이름아이콘 홍진흠
2010-09-20 02:43
에뜨랑제님! 우리 모두도 몰랐습니다만---좌우간 박동빈 전총장님!
얼마나 심적,육체적으로 고통이 심하셨습니까? 할말없습니다.아멘.
   
이름아이콘 박동빈
2010-09-21 09:42
금년 2월26일 카돌릭 의대에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입원하여 약 7개월동안 투병하며 살려고 노력 무척 했지만 그렇게
쉽게 않되더군요. 정말 힘겨운ㄴ 싸움이 었습니다. 리플달아주신 분 감사 합니다. 이제 남은 여생을 아들 위해 기도하고 아들의 꿈을 조금이라도 부모된 도리로서 알고 실천하면서 아들곁으로 가는날 까지 하렵니다.
에뜨랑제 "자식을 먼저 보내는것은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 아푼이 있다는대"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또한 세속의 위로가 얼마나 그 아프신 마음에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안에서는 천국에서의 만남이 있지 않습니까. 아드님의 마지막을 글을 보니 하나님 기뻐하실수 있는 생각속에 살다가셨군요.하늘의 상급이 클줄로 믿습니다.
신앙안에서 풍성한 위로가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품이 박동빈전우님의 아품이셨겠지요
9/21 14:49
   
이름아이콘 소양강
2010-09-22 09:25
회원사진
하늘은 그 영혼위에...
그리고 먼저 아픔으로 보낸 부모님의 앞길위에 주님의 십자가 고통후에 부활과승천의 축복이 함께 하실것입니다.
   
이름아이콘 구둘목..
2010-09-29 02:11
회원사진
어떤 말씀을 드린다해도 님에게 위로가 되겠읍니까.
골수 이식 예정이라는 희망의 말씀을 듣고는 쾌차하리라 그렇게만 믿었는데...
늦게나마 속히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극복하시고 이겨내기기를 바랄 분입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999 Re..그저..반쯤만..... 7 정기효 2007-08-11 351
1998 정글속으로 사라진 전우여! 7 초심 2007-08-07 415
1997 배워 남주나 ? 7 김연수 2007-07-28 601
1996 안보면 보고잡고...만나면 이갈리고..... 7 정기효 2007-07-25 422
1995 6월은 "보훈의 달" 입니다. 6 소양강 2011-06-03 322
1994 구경만 하고 가세요. 14 강용천 2011-05-28 513
1993 제주도 형제섬 일출 7 깊은강/전재경 2011-05-22 177
1992 이수님 보십시요 10 이수(怡樹) 2011-05-17 346
1991 선 후배 님 동안도 안녕하십니까. 6 우태성 2011-01-24 361
1990 한심 스러운 대한민국 요직들... 6 소양강 2010-11-28 407
1989 잘난놈은 절대로 군에 안간다 10 김해수 2010-11-25 450
1988 안녕하십니까 13 최춘식 2010-09-19 474
1987 추석즐겁게보내세요^^ 6 에뜨랑제 2010-09-19 345
1986 하늘나라 가면서 아들이 기록한 글 입니다 8 박동빈 2010-09-18 471
1985 권태준의 역작 앙케의 눈물이 출간되었습니다 11 달동네 2010-07-17 391
1984 벌써 새해를 맞이하게 되였네요. 6 소양강 2009-12-29 449
12345678910,,,134
대한민국 베트남참전 인터넷전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