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2-27 (금) 15:47
ㆍ조회: 529  
IP: 222.xxx.169
前 청룡의 추억여행---69-70년 당시의 청룡여단상황지도


호이안의 글을 계속하기전에 전체 개요의 이해를 돕기위해 당시 청룡부대와 미해병27연대의 예하부대등의
배치 상황을 설명하는게 순서일것 같아 전편에는 미해병3대대의 자료를 올렸으나 위의 지도는 69-70년의
청룡여단본부의 상황지도 입니다(해병1사단 역사관소장)
 
위의 지도를 확대경으로 자세히 보면 청룡부대외의 주둔지가 많이 보입니다. 호이안의 투본강 (Song Tu bon) 
아래쪽은 미군23사단 책임구역이었고, 고노이의 2대대 서쪽으로는 미해병3대대의 진지가 보입니다.
강건너 북쪽으로 1대대구역으로 중대진지가 보이고, 호이안위쪽으로도 많은 진지가 있는걸 확인 할수 있지요.
동서의 폭이 48(?)Km정도의 월남의 가장 좁은 구역이라 라오스와의 국경산맥이 멀리 보일 정도로 전지역이
평야로 V.C의 주요 보급지이기도 한 곡창지대 였답니다. (특히 1대대의 좌하쪽) 당시 지도상에도 많은 강과 수로로
미로같이 얽혀 중국(하이난)에서 얼마 안되고,다낭 앞바다의 표기가 South China Sea 로 ,중국을 통한 무기 반입이
잦았든 곳이라 크고 작은 충돌과 작전이 연일 계속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도를 보면 청룡부대의 진지는 월남군과 미해병대 진지의 안쪽에 자리 잡은, 조금은 안전지대로 보입니다.
지도의 상단이 미해병27연대의 책임구역으로 부대표시가 조금 보입니다.
그러나 피아가 치고 빠지는 작전을(매복과 소탕작전등) 특히 월맹정규군(몇개의 사단규모) 과 치른 전투로 예상치
못한 피해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한 지역 입니다. 많은 부대가 거미줄같이 포진해도 게릴라잔의 특성과
수백년간의 전쟁으로 단련된 월맹측의 전쟁의 승리를 위한 압박이 정점을 이룬 때가 1968년 1월30일부터 시작된
구정공세로 이후 파리평화회담으로 이어지고, 월남의 정정불안으로 연합군의 철수가 논의되기 시작 했습니다.
산악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이 33 ~140여 고지등 몇개를 제외하고는 평야 지대로 헬기에서 보면 한눈에 보입니다.
 
 


                                                                   (호이안쪽 상공에서 본 Song Tue bon의 다리)
위의 사진은 1번도로상의 투본강 다리로 중간에 폭파된게 보이고, 건너 다리입구쪽이 남폭 마을 입니다.
그 위쪽 지역이 Go noi Island로 뒤로 희미하게 산악 지역이 보이고 그 아래에도 강이 보이지요.
남폭 마을은 v.c의 출몰이 잦아 많은 포격으로 거의 초토화 되었으나 2대대 7중대와 3대대의 전투 정찰중
매복 공격으로 소대가 궤멸되는 사건도 있었든.....뼈 아픈 추억의 현장이지요. 2006년의 당시엔 많은 숲이
우거지고 마을이 복구되어 傷痕을 찾을 순 없었으나 ,우리와 같이 현재의 그들도 주요 격전지엔 위령비와
전사자 묘역이 꼭 있으므로 짐작 할수 있습니다.(짜빈동과 자큐의 예와 같이 빽빽하게 식수를 하는건 기본)
 
전쟁을 찬양하는게 아니고 추억하고 전우를 추모하는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바 없지만 그 痕的이 사라져
가는게 아쉬움이 남고 그 전에 다시 한번 밟아보며 아직도 그곳을 떠돌고 있을 전우들의 원혼을 위로하는게
남은자의 몫이라 생각하여 자료를 찾고 뒤적이며 추억을 회상하여 정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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