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작성자 찹차이산        
작성일 2009-10-09 (금) 13:11
ㆍ조회: 478  
IP: 58.xxx.220
투이호아 찹차이산을 포위하라


1968. 9월

백마28연대 3대대 10중대는 투이호아 남쪽 16km. 찹차이산을 새벽 04:00 까지 포위 완료하고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0중대 베이스는 해발 45m로써 평야지대에 있는 나즈막한 무명 고지에 불과하다

부대 전입시 들은 이야기지만  불과 몇개월전에 11중대가 야간에 야습을 받아 많은 희생을입고 철수하여 이곳 무명고지에 10중대 베이스가 구축 됐 단다.

월남 생활 6개월째.

홍길동작전 오작교작전 도깨비작전 등등 그 동안 많은 크고 작은 작전을 치뤘지만 월남전에서는 항시 맘을 놓을수 없지 않은가?

중대배이스에서 슬리퍼 바람에 한가로이 야자수 그늘 아래 밥을 먹다가도 놈들의 저격을 받아 목숨을 잃으니 말이다

나는 관측소대장으로 중대에 화력을 지원하는 중대 화력 참모인 셈이다

중대 베이스에 1 소대를 남겨놓고 3개 소대가 이번 수색 작전에 참가했다.

3일분의 전투식량과  타식조명탄 2. 크레모아 2. 수류탄 2 .  200여발의 소총실탄 그리고

생명을 지켜주는 무기보다 소중한 마실물이 들어있는  수통 3개를 허리에 차고나면 완전군장 무게는 누가 손을 잡고 이르켜줘야만이 땅에서 일어 설 수 있잔는가?

우리 작전지역 안에 말라리아 서식지가 있다

나는 무전병 김상병(삼현)에게  바르는 모기약을 다시 한번 챙기도록 지시를 했다

중대장의 출발명령이 떨어졌다

정해진 순서대로 첨병분대를 필두로 비교적 주간 행군 대형을 이루며 조심스럽게 2열 종대로 잡초만 무성히 우거진 논 길, 개활지를  걸어갔다.

건기로 접어든 계절치고는 그날따라 몹시 더웠다

한 시간쯤 행군을 했을 무렵 10분간 휴식 명령이 떨어지고 나와 중대장 최상철 대위는 

길가 풀섭에 앉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순간 9시 방향에서 나타난 머리가 덥수룩한 베트콩과  정면으로 조우를 한 거다 .

거리는 15메타정도 눈빛까지 읽을 정도의 거리다

온몸이 굳어져 운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때 총을 땅에 눕혀 둔 채로 행군 뱡향을 지도에서 열심히 보고 있었고

그 순간   앞을 힐끗 보니 내 앞에 적이 있지 않은가?

북한제 AK소총을 메고 그 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땅에 내려놓은 소총을 쥐고 360로 땅에 딩굴며 소리를 쳤다

베트콩이다 베트콩이다 사격개시.......

교전이 10여분간 지속되고 한명 생포 한명 사살

정신을 차리고 얼마 후 우리는 간단히 야전식(C-레이션)으로 저녁을 먹엇다

내 무전병 김삼현이 갑작기 나를 보더니만

소대장님하고 나를 부른다

여기 정글복에 총구멍이 나 있네요 하며 소스라 친다

과연 내 왼쪽 심장을 살짝 비켜간 정글복만 뚫고 나간 아까 그 베트콩이 쏜

총알 구멍이였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 왔다 .한순간 생사가 그렇케 갈리는구나....

어찌 그뿐이랴  

투이호아에 챠이산이 있다

불란서 1개 사단이 호치민군에게 전멸 당 했다는 난공불락 요새였다 거길 우리 중대가 수색임무를 띠고 작전에 임했다

UH-1D헬리콥터를 타고 목표지점에 무사히 내리긴 내렸다

내리자 마자 소나기가 쏟아 진다

원래 열대 지방이라 날씨가 오락가락 하긴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해발 1천 메타가 넘은

원시림만 존재하는 정굴 속은 그야말로 태고의 정적만 감돌 뿐이다.

이따금씩 원숭이 울음소리같은 괴음이 간간히 정적을 깨트릴뿐 .....



그 때다 !

헬리콥터 랜딩 후 수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작기 첨병한테 연락이 왔다

방금 지나간 발자국이 빗물 진흙길에 찍혀 있다고....

그 높은 산에도 그들이 다닌 길은 반질 반질  나 있었다

첨병한테 연락이 왔다

갈매기 하나 여긴 갈매기 둘

베트콩이 아마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오버

알앗다 오버 ! 사주경계를 철처히 하면서 천천히 전진하라

중대장 명령이 떨어졌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방 1소대에서는 이미 충격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엎드린채로 사격개시!

그놈들 화력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 졌다

중대장과 나는 앞으로 나가 첨병소대 쪽으로 몸을 낮추면 기어갔다

김소위 이상 없는가?

키가 훤출하게 크고  미남인 S대를 나왔다는 김강욱 소위다

(둘째 아이 이름도 넘 멋있는 친구라 그사람 이름자를 따서  강욱이라 지었음)

네 ! 현재까지는 이상 없읍니다

김상호대위(중장예편)와 교체된 중대장은  월남 온 지 불과 몇 개월 않된 아직 신출내기다

공수특전단출신이긴 하지만 여기는 게릴라전에다 정글속이 아니던가?

 우리는 선채로 그 자리에서 비를 맞으며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때웠다

물론 사주경계는 철저히 하면서 말이다.

3-4분이 지난 후 중대장은 다시 소대장을 불러 작전을 숙의했다

현재 위치에서 그대로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명령이였다

지형 상 전방 100여메타에 봉오리가 있었다 말 안장처럼 우리는 움푹패인 그 지점에  중대가 길게 행군종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전투에서  높은 지형을 먼져 점령하는건 공격이나 방어에서 얼마나 유리한가?

베트콩 전술은 치고 도망가는 전술이다(hit & run)

이미 도망 갔겠지....

허나 앞에 보인 무영 고지가 맘에 걸린다

중대 관측장교는 중대 화력을 지원하는 임무이지만 항상 중대장 작전 참모 이기도 한다

신출내기 중대장에게는 특히 참모로써 역할은 부하들의 생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중대장님!

그건 않됨니다

한 방향으로 공격은 위험 합니다

많은 희생을 불러 올수 있습니다

2.3소대를 좌우방향으로 우회시키고 출발 시차를 2-3분 간격으로 먼저 출발시켜야 합니다

웃으면 금 이빨이 보인 약간 고집스럽게 생긴 중대장도 그 날 따라  순수히 내말을 수용해 줬다

출발 2-3분 됐을까?

쌍방간의 교전이 시작됐다

근접전에서 화력지원은 별 효가가 없어 포를 쏠 수도 없다

열심히 나도 엠16 소총 방아쇠를 당기고 있엇다



그런지 2-3분 후

피를 흔건히 흘리며 병사하나가 쓰러려 업혀 내려오고 있었다

고놈들이 굴린 수류탄 파편에 손목이 잘린 분대장 박 하사 

그는 고도의 흥분 상태에서 차라리 죽겠다며 절규하고 있었다

않돼 않돼 살아야해

김강욱 소위는 그를 안고 함께  울부짖고 있었다.

 내 군대 동기(장흥섭) 동생이며 남원이 고향인 장동섭(지금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음)은

무릎관절에 관통상을 입은채로 바위틈에 나동그라져 누워 있었다

위생병을 불러 부목을 대고 압박붕대를 감아주고 위로를 시켰다

동섭아 넌 살앗어 ! 쬐끔만 기다려 곧 구급용 헬리콥터가 올거야 

나는 그의 머리맏에 앉어 그를 꼬옥 안아 줬다.

너나 나나 우린 살아야 해 

걱정마 동섭아....

네 알앗습니다 소대장님....

수분후 총소리가 멈첬다
그리고 급히 눈앞 고지로 올라갔다
베트콩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그들이 쏘고 난 탄피껍질만 수북히 쌓여 있었다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총을 걸쳐놓고 그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사격을했으리라

결국은 우리 병사만 피해를 입고 말았다

1명 전사 3명 부상

판쵸우의로 급히 말아싸서 구급용 헬리콥터를 공중에 띄워놓고

사상자를 호이스트로 감아 올리며  정글속 빈 공간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사상자를  후송했다

그날은 전진을 멈추고  내 부하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야영을 했다

한 밤중에 밀림속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목탁소리같은 괴음

마치 놈들의 연락 신호음처럼 들려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전쟁터에서는 생사가 넘 쉽게 갈라 선다

밥을 먹다가 ,길을 가다가 ,

아니면 휴식중 앉어있는 돌맹이에

뷰비츄랩에 걸리면 죽기도 한다 . 
 

병사 전투 수당은 하루에  고작 2달러도 않된다  지금 돈으로 2천원 남짓이다

물론 명분은 세계평화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우리 말단 병사에게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국가도 가난했고 개인도 가난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 부친 돈으로 우리나라가 이 만큼이라도 살게 됐으니 다행 안닌가?

이세상에 고통없이 얻어진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의 번영과 영광은 우리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역사는 그래서 말이 없는가 보다 .

우리 끼리라도 부지런히 역사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위대함과 용맹함을

우리 후손에게 전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자

10중대 전우들이여 그대들이 생각나,너무도 생각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그때 그 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우리 전우를 생각하며 조용히 명복을 빈다 

 

살아 남은 자 들에 의해  역사는 기억되고 또 기록되기 마련
나라의 부름을 받고 산화한 전우들이여 !
그대들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으리

부디 하늘에서도 우리들을 , 우리나라를 굽어살펴주소서


경일직업전문학교 전역자반 


 


 


 

이름아이콘 찹차이산
2009-10-14 15:47
전우검색란을 통해 당시 무전병 김삼현과 전화 연락이 됐읍니다
양주에 살고 있네요
단숨에 달려가 한잔하고 시퍼지만 후일로 기약했읍니다 .야튼 넘 기뻤읍니다
   
이름아이콘 최종상
2009-10-19 11:50
회원캐릭터
기억을 되살린...님의 수기..너무 생생 합니다.
참전 노병들의 전쟁터에서의 추억은 죽을때까지 지울수가 없겠지요.
찾으신 김삼현전우완......필히 한잔 하셔야 겠습니다.
건강 하십시오.
   
이름아이콘 산야초
2010-05-07 14:47
30여년전의 기억을 하시면서 쓴 님의 수기를 잘 읽었습니다. 저는 11중대 3소대 에 근무하다 68. 10. 17일 귀국한
사람입니다. 정말 우리 11중대 고생많이 하고, 전사한 전우를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건강합시다.
   
이름아이콘 정봉
2010-08-13 16:52
종상님.야초님 ㅎㅎ 반갑습니다 .참전 전우라는 말만들어도 가슴이 찡하네요
죽은자들의 음덕이 있어  살아돌아온 우리들은 그져 미안하고 죄스럽지요 .. 그래서 더 참되게 열심이 사는가 싶네요
산야초님은 11중대 베트콩 야간기습으로 ... 그 엄청난 일을 당하셨겟군요 우리중대가 그옆 무명고지에 주둔했었지요
11중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읍니다 .암튼 무사히 귀국하여 건강하시다니 축하드림니다 건강하십시오 두분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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