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작성자 최종상        
작성일 2008-11-22 (토) 13:32
ㆍ조회: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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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 베트남전쟁 파병일지 "


베트남전쟁 파병일지

한국군 월남파병(國軍派越) 

베트남 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1964년
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8년
8개월간에 걸쳐 자유월남을 돕기 위하여
국군을 파병 하였다.  

비둘기부대 환송식. (1965년 2월)     


부산항을 출발하는 파월장병.


채명신 장군의 안내로 박정희대통령이월남참전부대를 순시하고 있다


맹호부대를 사열하고 있는 박정희대통령.

한국과 자유월남은 공산집단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양단된 점에서 비슷하였으며,
승공통일을 국가의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도 입장이 비슷하여 오래전 부터
서로 깊은 우호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본디 월남전쟁은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으
로, 1960년 베트콩이 결성되고 1962년 부터는 미국이 참여함으로써 전선없는 전쟁
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2월 미국이 월맹(越盟)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전쟁이 급속히 확대되어 갔다. 이때 베트콩과 월맹의 배후에는 소련,중공등이 도사리고 있었고 자유월남은 미국등 6개국으로 부터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 그 양상은 날로 국제전의 성격이 짙어가고 있었다.

【국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한국정부는 1964년9월, 이동외과병원(移動外科病院)
장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을 처음으로 베트남에 파견하였다. 이어 1965년
1월 8일에는 각의(閣議) 결정에 의해 베트남에 비전투원 2,000명으로 구성된 군사
원조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파견결정은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고 있던 미국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이 군사원조단은 전재복구를 위한 공병부대와 자체 경비병력으로 이루어 졌으며,
부대 명칭은 ‘
비둘기부대’였다. 비둘기부대는그해 1월 26일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
이 가결되고 2월 5일에 결단, 2월25 일에는 제1진이 사이공에 도착하였다.

비둘기부대의 파견에 이어 베트남 정부는 다시 전투부대의 파병을 요청해 왔다. 이
에 한국정부는 1965년 7월 2일 ‘6 ·25전쟁 당시의 우방의 파병에 보답한다’는 명분
으로 파병을 결정하고 육군2개 연대규모의 ‘
청룡부대’를 각각 편성하였다. 청룡부대
는 그 해 10월 9일 베트남에 도착하여 나트랑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맹호부대’는 10월22일 서울에서 환송식을 갖고 11월20일 퀴논에 도착하여
여기에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군 전투부대가 대거
베트남에 파견되고 또 그 활약상이 내외에 알려져 국위를 높이 선양하게되자, 점차
한국군 증파의 필요성이 인정되었으며

1966년 2월22일에는 험프리 미국 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다시 한국군 1개 연대와
1개사단,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지원부대의 증파를 요청받게 되었다. 이에 국회 본회의는 여야간의 많은 논란끝에 3월20일 증파 동의안을 가결하였다.

같은해 4월16일 먼저 ‘혜산진부대(惠山鎭部隊)’가 퀴논에 상륙하여 맹호부대와 합류,
1개 전투사단을 편성하였으며, ‘
백마부대’는 그 해 8월 15일 제1진이 나트랑에 상륙
함으로써 주 베트남 국군의 수효는 군단급 규모로 증가 되었고, 미국 다음가는 많은
파병국이 되었다. 이리하여 각 전선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국군의 베트남 철수】 1971년 11월 6일 한국과 자유 월남정부는 각각 서울과 사이
공에서 동시 발표된 공동성명을 통해 1971년 12월부터 주베트남 한국군 가운데 1만
명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킨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그 해 12월9일 청룡부대 일부 병력
의 개선을 필두로 단계적 제1차 철수가 시작되었다.

이어 1973년 1월24일의 베트남 휴전협정조인에 즈음하여 주베트남 한국군의 제2차 철수가 발표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73년 1월 말부터 3월 말까지 2개월 사이에 주베트남 한국군은 철수를 완료했으며, 주베트남 한국군사령부도 3월14일 철수하였다.


  
월남파병환송 국민대회 환송사(1965년 2월9일)  


 


 

 

 

 

 

 


친애하는 월남파병장병 여러분!
내외귀빈, 그리고 반공애국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 국민 전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자유월남으로 떠나는 국군장병 여러분들의 장도를 축복하고,
무운을 빌면서, 여러분을 환송 하는 우리들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는 감회에
가득차 있읍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있게 되는 이 월남파병의 역사적 장거
에 즈음하여 우리 정부나 온 국민은 우리 장병들이 오직 조국의 명예나 반공
의 대의를 위하여, 그 맡은 바 책임을 충실히 완수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
는 바입니다.

일찌기 정부는 중공의 지원을 받은 월맹 게릴라의 악랄한 침공에 직면하여 힘겨운 반공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자유월남공화국으로부터 군사지원 요청을 받은 바 있었읍니다. 여기 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월남전쟁이 지니는 성격을 대국적인 시야에서 예의검토한 끝에, 우 리의 국가 안전을 더욱 공고히 하며, 자유우방의 결속된 반공 노력에 크게 기여하겠다는 견지에서,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회에 그 동의를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국회의 동의를 얻어 이제 월남파병은 우리의 국가의사로 확 정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없이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된 이유는,
첫째로,
이것이 전 자유아세아 '집단안전보장'에의 도의적 책임의 일환이라는 판단과,
둘째로는,
만약에 월남이 공산화하는 경우에는 아세아지역 전체에미칠 공산위협의 증대는 필연
적인 사실이므로 월남을 지원하는것은 바로 우리의 간접적인 국토방위가 된다는 확신,
그리고 세째로는,
과거 6.25공산침략을 당했을때,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자유우방의 지원을 받아 위기
일발에서 조국의 운명을 구출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다른 우방이 공산침략의 희생이
되는것을 피안의 화재처럼 방관할 수 없다는 공동운명 의식과 정의감에 입각한 우리
의 대의명분인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판단과 결의가 지극히 정당 하다는 것으로 확신하는 바이며, 또 앞
으로의 역사가 반드시 우리의 이 숭고한 결심을 의롭고도 영광스러운 처사였다고 증명
해 줄 것을 확신해 마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이 국내외로 당면한 여러 문제가 매우
어렵고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의 가장 귀중한 한국의 아들들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될 월남전선에 파견하는
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물심양면으로 크나큰 걱정과 부담이 되지 않
을 수 없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는 응당 지녀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요, 또 한 의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25동란 때 수많은 우방의 젊은이들이 낯설은 이땅에 와서 아까운 청춘과 고귀한 생명
을 아낌없이 바쳐가면서, 우리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수호하기위한 십자
군 이었읍니다. 오늘날 월맹 게릴라를 뒤에서 조종하고 지원하고 있는것은 중공입니다.
6.25동란때 북괴를 뒤에서 조종하고 지원한것은 바로 중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력
히 기억 하고 있읍니다. 중공은 월남에서 꼭 같은 불장난을 저지르고 있읍니다.

지금 자유월남은 우방의 도움을 바라고 있읍니다.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 국민은 용기를 상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없이 그들을 도와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 니다. 여러 우방들이 그들을 도와서, 그들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들 국 민은 용기백배할 것입니다. 그들이 공산주의와 싸우는 데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이는 곧 승공의 제1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월남사태 해결의 관건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합니다.
다시 한번 6.25 때 우리의 처지를 회상해 봅시다.
초기에 적 이 남침을 개시하자 우리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읍니다. 유엔군의 선봉으로 미24사단이 즉각 출병을 했으나 초기에는 전세불리하여 한국군과 같이 낙동강전선까지 후퇴를 했읍니 다. 한때는 우방 국가들 중에도 한국 사태를 거의 절망적이라고 보는 때도 있었읍니다. 그 러나 우리 국군과 우리 국민들은 조금도 용기를 잃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읍니다. 왜? 유엔 16개국 우방군이 계속 참전을 하여 우리를 돕고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상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6.25 때 공산침략을 막을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우방의 지원과 우리 국민의 용기였던 것입니다.

출정장병 여러분!
여러분들은 6.25 때 우리를 도와 준 자유우방의 전우들과 꼭 같은 자유수호를 위한 십자 군이라는 것을 자부하십시오. 침략자를 막고 선량한 우방을 도우러 가는 것입니다. 5천년 역사를 통해서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침략한 일은 단 한번도 없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침략자를 누구보다도 증오하는 민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로운 일이라면 남보다 앞장서겠다는 드높은 기개를 가진 민족이란 것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웃 집에 강도가 침입한 것을 보고 그대로 방치해 둔 다면, 이웃집을 털고는 다음에 우리 집에 침입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닙니까. 자유월남의 반 공전선은 우리의 휴전선과 바로 직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정장병 여러분!
여러분들 양 어깨에는 조국의 명예와 2천7백만 민족의 한결같은 기대가 걸려 있다는 것 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국군 중에서 선발된 가장 정예라는 긍지를 가지십시오. 여러분에게 부하된 임무를 훌륭하게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군기엄정하고 용감 무쌍한 국군 의 전통을 더욱 빛나게 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여러분을 떠나 보낸 우리 국민들은 여러 분의 노고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도록 더욱 분발해서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유의 십자군인 여러분의 장도에 반드시 가호가 있을 것이며, 영광을 베풀어 주 실 것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건투와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파월장병 개선 환영사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국군 장병여러분!

       돌이켜보면 우리가 우방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자유 월남을 도우기 위해서 우리의 국군을 이억만리 월남전선에 보낸
       지도 벌써 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국경 없는 전장에서 세계 그 어느 전선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커다란 승리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은 30년의 전쟁으로 얼룩진 월남 땅에  자유를 심고, 평화를
       심고 그리고 또한 대한의 얼을 심어놓고 이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장한일은 우리 역사에도 일찍이 없었거니와 인류 역사상에도 보기 드문 자유와 평화를 숭상하는 십자군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떳떳이 자랑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이 기쁨과 명예를 온 국민의 이름으로 승화 시켜서 길이 빛
       나게 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국토수호에 중책을 다하기 위한 결의를 새로히하고 유신과업 완수에 앞장설 것을 굳게 다짐
       합시다. 감사 합니다.

                                                                                                         대통령   박     정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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