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30 (금) 15:55
ㆍ조회: 1602  
IP: 222.xxx.80
짜빈동전투 ~ 2

아 ~ 짜빈동이여 고이 잠드소서 !!



유일하게 남은 부대 건물
"이미 3소대의 외곽방어망이 완전 뚫린 상태였기 때문에
1소대 방어망도 돌파당하면 중대는 전멸할 위험이 있었다.
11중대 1소대장 신원배소위는 11중대1소대 2분대장 이준재 하사와 함께
화염방사기를 든 적병을 직접 공격하여 화염방사기 3문(혹은 2문)을 노획하였다.
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적이 1소대 진지 중에 한곳만 돌파했음을 알고
조명탄이 터지는 순간에는 1발식 정조준 사격을 하도록 하고,
조명이 끊기는 순간에는 일제 사격을 돌파구에 집중시켰다.




"적이 11중대1소대 방어망을 완전 돌파하지 못하고 공세가 주춤해진
새벽 6시무렵 1소대 병사들은 전방 100m 지점의 바위 뒤에 적병들이
대 전차포와 척탄통으로 사격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소대는 적의 대전차포를 공격하기 위해 수류탄으로 무장한 임시
특공조를 편성했다. 1소대 선임하사관 김용길 중사와 이진 병장,
통신병 조용구 상병은 수류탄 2발식을 들고 진지 밖으로 나가 포복으로
바위에 접근하였다.
김용길 중사 등 3명은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들을 폭사시키고
대전차포
3문을 노획하였다. 결국 적은 공용 화기를 많이 상실하여
11중대 1소대 지역을 완전히 돌파하지는 못했다"




짜빈동의 흙 한줌 소중히 퍼 담는 ~ 後 靑龍 / 해병혼(해병414기)
"수세에 몰려 방어전을 펼치던 한국군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육탄돌격을 감행하자 진지 내부로 침투한 월맹 정규군들은
돌파구 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7시20분 무렵 1,2 소대 혼성 병력이 3소대의 돌파구를 완전 차단하자
진지 내부에 침투한 적들은 완전히 포위되어 버렸다.
11중대 병사들은 로켓발사기와 수류탄을 동원하여

잔존한 적들을 완전히 폭사 시켜 버렸다.




날이 밝아오자 미해병대 소속 AC-47 4대가 출격하여 기지밖의 적들을 맹폭하였다.
전투가 끝날 무렵 청룡부대 소속 O-1 관측기가 중대기지 상공에 나타나
날개를 흔들며 11중대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이윽고 청룡부대 2대대 6중대소속 지원병력이 헬기에 탑승하여 기지로 이동해왔다.
마침내 혈전이 끝난 것이다.

적 시체 확인 246명, 추정 사살 60명, 포로가 2명이었다.
노획품은 대전차포 6문(혹은 3문), 기관총 2정, 기관단총 6정,
AK-47 자동소총 17정, 소총 12정이었다.

아군 전사자는 전사15명 부상33명이었고 전사자의 대부분은 3소대 소속 병사들이었다.





짜빈동 신화를 이룩한 정경진 11중대장을 격려하는 주월 한,미 해병 수뇌부
"작전이 끝난 다음날인 1967년 2월16일에는 월남군 최고 사령부 참모부장과
주월 한국군사령부 작전 참모가 부대를 방문했고 17일에는 정일권 국무총리
해병대 사령관 출신의 김성은 국방부장관 신상철 주월 한국대사가 방문했다.

또한 21일에는 월남공화국 국가원수인 티우 대통령과 구엔 카오키 수상 및
월남군 1군단장인 람장군 일행이 방문, 장병들을 격려해 주었으며,
특히 월남군과 미군사령부에서는 연구반까지 파견하여 진지 견학과
방어 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월남전 사상 중대단위 부대로선 최대의 전과를 올린 청룡 11중대
장병 전원에게 일계급 특진이 내려졌고 중대장 "정경진"대위와 1소대장
"신원배" 소위에겐 태극무공 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배장춘" 하사, "김용길" 중사 에게는 을지 무공훈장이 "김기홍" 중위
이영복일병 김성부소위등 수훈을 세운 장병8명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이같이 전 부대장병에게 일계급 특진이 내려진것은 대한민국 건군사상 두 번째 일이었다.
그 첫번째는 6·25당시 진동리 지구전투에서 해병대의 '김성은'부대
전장병에게 내려졌던 일계급 특진이었다




"살아남은 전 중대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 도착한 여단장은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각 병사들의 손을 잡으며 목이 맨채 말을 잇지 못했다.

"참으로 훌륭히 싸웠다"




생과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11중대의 전장병과 중대장은 고개를숙이고 있을뿐이다.
한참 말문을 닫고 있던 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여단장님! 부하들이 전사해서 칭찬 받을 면목조차 없습니다.
중대장의 보고하는 목소리는 역시 눈물로 끝을 흐리고 있었다.
이에 여단장 김연상장군은 중대장의 손을 잡으며 전사자가 10명선에서
멈춘 것은 귀관의 탁월한 지휘력과 책임감 때문임을 감사한다.
전사한 靑龍(청룡)은 軍神(군신)으로서 청사에 빛날 것이다.

그대들의 공적은 세계만방에 울려 퍼질 것이다




181기 아리랑 선배님은 짜빈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신다.
"2중대 방석에서 황폐한 황무지 벌판너머가맣게 보이는 열한중대 짜빈동
월남 신삐 특공중대 엄호조 3번탄약수는 개인군장에다가 L.M.G 실탄 두통을
양쪽어께에 메고는 저기 저들판 어디쯤을 건기의 땡볕아래서 뛰고 기었는데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개활지를 철버덕 거리며 흙먼지속을 뛰고 굴러면서
안 죽을만한곳에 V.C총알을 한방만 맞고 실려갔으면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고

열 한중대 방석 아래로 길게 뻗은 벌겋게 녹슨 철뚝길에 배치 붙어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
고국의 반공포스터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울긋불긋 열차가 달리는구만
너와나 우리모두의 아픈세월을 푸르런 들판에 묻고서는




짜빈동 ~ 짜빈동을 거기에 두고
남으로 남으로 몇 시간을 내려왔는데
거기 또 ~ 짜빈동 -- 그
광고판의 이름만으로도 가슴 뜨겁다.
짜빈동이여 ~ 영원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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