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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하웅
작성일 2004-11-12 (금) 11:16
ㆍ조회: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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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월남파병 동의안이 통과된 3일 뒤인 1965년 8월16일 오후 김성은 국방장관은 파월전투사단부대창설 명령을 내리고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채명신 소장을 초대 사단장으로 결정,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신했다.

황해도 곡산 출신인 채명신은 조만식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옥사한 채은국 지사의 장남이다. 그는 6·25 당시 중령으로 ''백골병단''이란 유격대를 이끌고 적진에 침투, 1000여명의 적 사살 전과를 올렸고, 인민군 대남유격대 총사령관 길원팔과 참모들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김일성의 작전명령서를 압수하는 등 비정규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육군본부내 동료들도 채소장의 발탁에 "모택동의 유격전술과 쿠바, 월남, 중남미 공산주의자들의 게릴라 전술을 고루 익힌 그를 적소에 기용했다"고 평했다.

이미 며칠 전 김용배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채명신 장군을 파월 전투부대 사단장으로 추천받은 김성은 국방장관은 박대통령에게 "파월 한국군 사령관으로서 한국군을 대표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채명신 소장이 어떻습니까"라고 떠 보았다. 김성은 전 장관은 "조선경비사관학교 5기생인 채명신은 2기 출신인 박정희의 사관학교 후배인 동시에 5·16 혁명주체였던 점도 참조했는데, 박대통령이 아주 좋아하면서 흔쾌히 수락했다"고 회고했다.

채명신 소장은 8월23일 동부전선 수도사단(일명 맹호부대)에서 주월 한국군 사령관 겸 사단장 취임식에 참석했다. 채 장군은 이날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와 제1연대를 맹호부대의 주축으로 삼고 부대 편성식을 지휘했다. 주월 한국군 부사령관 겸 부사단장은 이남주 준장, 군수지원 사령관 이범준 준장, 참모장 최영구 대령, 제1기갑연대장 신현수 대령, 제1연대장 김정운 대령, 포병사령관 김창복 대령, 군수지원 사령부 참모장 장근 대령, 병원장 이규동 대령을 임명했다.

박정희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기자들을 만나도 외면해 버리지만 큰 계획이 순조롭게 해결되어 기분이 상쾌한 날이면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사소한 이야기까지도 곧잘 털어 놓곤 했다. 특히 박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때보다는 해수욕장 등 휴양지에서 기자들에게 흉금을 털어 놓고 소신과 고충을 이야기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해 주곤 했다.

1965년 8월17일, 박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진해 저도 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진해에 도착 즉시 육영수 여사는 해군 공관으로 수행기자들을 초청해 과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한 기자가 말했다.

"각하께서 원래 허식을 싫어하는 분이란 걸 알지만 기왕 카메라 맨이 사진을 찍을 때는 좀 포즈를 취하도록 충고해 주십시오."

수줍음이 많았던 박대통령은 어쩌다가 사진기자들이 기회를 포착해 카메라를 들면 어느 새 고개를 돌려 버리거나 엉뚱한 짓을 해버렸다. 그래서 항상 무뚝뚝한 표정만 지면에 실려야 했다. 육영수는 기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저도 몇 번이나 그렇게 일러 주었지만, 그 분은 도대체 듣지를 않으세요. 좀 쑥스러운 모양이에요"라고 했다.

내가 뜬끔없이 갑자기 채명신 장군 얘기를 꺼집어 낸 것은 오늘 향군행사를 마치고 채 장군님을 동지들과 함께 예방하니 당신의 지나간 가족사의 단면을 말씀하시기에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기위함이다.

채 장군님은 해방후 단신 월남하여 장교로 임관된후 6.25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운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런대 북한에 남아있던 동생(채명세)에게서 편지가 왔단다. 내용인즉 1.4 후퇴시 월남하여 군에 입대하였으나 형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위해 연락하지 않았으나 휴전을 앞두고 한치의 땅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가 위해 마지막 전투를 치열하게 전개하던 중 큰 전공을 세워 훈장을 탔기에 이제는 형님에게도 자랑스럽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근무처도 연대장인 채 장군(당시 대령)의 바로 인접 연대에서 소대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채 장군은 마음속으로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한다.
그리고 몇 개월후 밤에 인접 연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첫 마디가 "채 대령 내가 죽을 죄를 지었오"였는데 직감적으로 ''아차, 동생이 죽었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인접 연대장의 말에 의하면 "채 소위가 전방근무도 오래됐고 훈장까지 받았으니 당연히 후방으로 전보발령을 해야했슴에도 채 소위가 극구 반대하므로 계속 전투부대로 남아 있다가 며칠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며, 연대장 직권으로 전보조치하지 않은 내가 면목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동생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들은 채 장군은 북바치는 울음을 삼키고."무슨 말씀이요? 전쟁중에 군인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내 동생이 죽던지 내 아버지가 죽던지 누구에게도 탓할 바가 안 되니 쓸데 없는 걱정은 말고 부대 지휘나 잘 하시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채 장군의 가족사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지 안 했지만 6.25 전후로 최소한 부친과 동생을 잃은 것임에 틀림 없다. 공산당의 비인간성을 누구보다도 체험으로 알고 있기에 노 장군은 오늘도 나날이 붉게 물들어 가는 대한민국의 지도를 앞에 놓고 마음 아픔을 애써 달려고 있나보다.
221.145.195.221 정무희: 사령관님에 관한 글을 옮겨주신 회장님 감사합니다. 영원한 사령관님 이시지요.건강하게 살으시며 뜻하시는 바를 다 이루시어야 하실텐데...... -[11/12-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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