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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동빈        
작성일 2004-08-08 (일) 22:34
ㆍ조회: 136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오늘은 저가 1979년 4월 전방 근무를 맞히고 서울 00부대로 발령받아 근무지 신고를 하고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위해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보다가 부대위치가 가까운곳으로 정하기로 하고 정해진곳이 서울 중구 약수동이라는 달동네입니다>

이곳에월세15.000원하는 단칸방을 얻고 15일후 이사를 하고 항시 저녁만 먹으면 이제 내가 살곳을 찾았구나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어떻게 하면 서울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냐가 나에게는 관건 이었습니다

 왜야하면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전에도 기고했듯이 여식아이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전역을 해서 수술해야하는 강박관념에 항시 가슴을 눌러오는 그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시 집사람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새벽기도회 역시 하루도 빠지지않고 다니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특히 우리진형이에게 하루 속히 수술을 받아 정상인답게 생활할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라고 매일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이르 열심히 믿음생활했습니다.

 그때 같이 지내었던 주위의 나그네들과(달동네 거주자중구신당3동35통거주 일부자들과 마당친목회를 조직하여 지금까지 지내오고있습니다

오늘이 그들과 같이 친목회 월례회를 하고 모처럼 전방을 견학하자고 제안으로 서울을 출발하여 의정부를 거쳐 동두천으로 해서 봉암리란 곳에서 식사를 하고 태풍 관망대를 돌아보기위해 다시 차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곳은 제가 상급부대근무하다가 근무잘못 섰다고 하여 밀리어난곳이 기도합니다. 36년만에 그곳에 가보니 정말 바뀐것 하나도 없고 오직 철조망 그대로입니다

언제 우리는 통일이 될까

멀고도 가까운 북녁의 하늘도 파랏고 남쪽의 하늘도 파란데 왜 인간의 사상이념으로 이렇게 갈라져서 50년이 넘게 지내야하는가 그리고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하는가 저들과 대화하면서 진정으로 저들이 요구사항을 수없이 들어주기도 했지만 늘 우리는 저들한테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을 제대로 실행해본적이 없음을 잘알고 있을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저들을 포용해야하는가 자아비판 해보면서도 그래 같은 동포이니 감싸주고 저들을 달래서 우리의 사상이념속으로 끓어드릴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것은 없습니다,

 헌데 저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송의 전망대에서 보고 느낀 점 하나도 변하지 않아습니다 . 우리일행은 총 여석 가정으로 12명이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소초병으로 부터 브리핑을 듣고 느끼는것은 아직도 저들은 말로는 다하고 약속도하고 하지만 돌아서면 그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 6.25때 치열한 베티고지 전투개념과 적사항 아군 사항 을  적어 보렴니다

베티고지 전투
개요: 일시 1953년 7월15일-16일
        지역:연천군 서남면 고장리 베티고지일때
         부대 :아군 (제1사단1연대 2대대 6중대)
                 적군(중공군 제1.2.3. 대대)

작전경과 :6중대 베티고지 임무수행
              7.15일 19:30. 적1차 격퇴
              7.18일:07:30 적 2개대대 격퇴
 전과 :적356명 사상 기타 화기 노획

교훈 :조국수회의 투철한 군인정신
        결사적인 진지사수
        지혜롭고 융통성있는 상황판단으로 우리 는 적을 격퇴
그리고 인접해있는 노리고지 역시 많은 전과을 올렸습니다 중공군 2.700명을 사상시키는 전과를 올려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선배 전우님들은 이 나라을 사수 하였건 만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요즈음 보안법 페지 운운하며
나라을 사랑한다고 하고 간첩으로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을 민주투사다 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이지요? 다시 한번 이 정부에 묻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 개혁이다(진보세력) 부르짓는 네티즌 여러분 보시고 잘 판단하시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인가를 판단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만술(金萬述) 육군대위(1929.10.28∼1991.5.28)


김만술 육군대위는 1929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일본 오사까 공업학교를 졸업, 광복이후 1947년 6월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였음.
6·25전쟁이 일어나자 평양탈환전투 등 주요 전투에 하사관으로 참전, 탁월한 지휘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53년 7월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 국군 1사단 11연대 6중대 2소대장으로 경기도 연천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베티고지(Betty고지)에 투입됨.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전 전선에 걸쳐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전개하던 시기, 베티고지는 1사단의 전초기지로 최대의 전략 요충지였음. 1953년 7월 15일 소대원 35명과 함께 베티고지를 지키고 있던 김만술 소위는 야음을 타고 인해전술로 공격해 오는 중공군 제1군 1사단 2개 대대 규모의 적군을 맞아 5번의 공방전을 벌이며 13시간동안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그는 초인적인 지휘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포병의 진내사격을 요청, 적을 제압하고 또 선두에서 육탄전을 벌여 적 314명을 사살, 450명을 부상시키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음.


김만술 소위는 이 전투에서 탁월한 리더쉽과 용감한 전투정신을 인정받아 금성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십자훈장을 받았으며, 1960년 대위로 예편한 후에는 1977년 시흥에 상이군경용사촌을 건립하고 대한상이군경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다 1991년 타계하였음.


220.117.239.43 최 성영: 김 만술 씨는 베티고지 전투당시 일등상사로 혁혁한 그이 공노로 인해 소위로 특진 한걸로 알고 있읍니다. 아이젠하워 미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방문시 그에게 미국 십자훈장을 직접 수여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08/1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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