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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해수
작성일 2005-07-01 (금) 10:09
ㆍ조회: 141  
어느 시인의 고해
 어느 시인의 고해
 


▲ 김광일·문화부 부장대우
싸락눈이 흩날리는 추운 날이었다. 서울 변두리의 한 책
 
방 안에서 어떤 꼬마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나이 든
 
 여주인은 무슨 일인가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둥그렇게 등짝만 보였다. 꼬마를 바라보
 
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꼬마는 책이 욕심 났다. 조용한 주변을 확인한 꼬마는 얇

은 점퍼 안으로 책을 슬쩍 밀어넣었다. 그 순간 다른 쪽

서가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겁에 질린 아이의 눈망울이 화등잔보다 커졌다. 아이는

 황급히 책을 내려놓고 서둘러 책방을 빠져나갔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꼬마는 한겨울인데도 얇은 옷차림이었다. 사내는 책방 문을 닫고 달아나는 아이

를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아이가 훔친 책보다는 그 얇은 옷이 눈에 밟혔다. 저

만치 뛰어가는 아이를 뒤쫓아가 어깨를 움켜쥐었다. 하얗게 얼굴색이 변한 아이

는 윗동네에 산다고 몸을 떨며 말했다.

사내는 그 윗동네를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더욱 바람이 거센 곳이다. 아이가

 걸치고 있는 얇은 옷조차 인정사정 두지 않을 것이다. 사내는 그 찬 바람 때문

에 그만 마음까지 시려졌다. 사내는 “앞으로 네가 보고 싶은 책은 다 사주겠

다”고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제 입성 또한 기름기 없기는 마찬가지인 사내

로서는 참 무책임한 약속이었다.

사내는 집으로 돌아와 궁리를 거듭하다가 S전자 회장님 앞으로 편지를 썼다. 보

름쯤 지났을까. 담당 여직원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회사로서는 이 같은 개인적

인 일에 일일이 배려를 할 수는 없다”라고 서두를 꺼낸 후, “그러나 제가 개인적

으로 책값을 보내주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S전자의 여직원 또한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고민 하다가 이 여직원은

 오래 전에 헤어진 첫 애인에게 사연을 풀어놓았다. 왜냐하면 그 첫 애인이 책방

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 곳에 살고 있는 첫 애인은 15년 만에 새로 연결된

 옛 여인에게 밝게 웃으며 “그렇게 해주마”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꼬마가 읽고 싶은 책들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본인에게 전해졌다.

 공간적으로는 꽤 멀리 돌아온 책들이었다. 사실은 책방 여주인과 그 꼬마는 아

주 가까이 몇 집 건너 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를 뿐이었다.

이 꼬마는 훗날 시인이 됐다. 이름이 박철(朴哲)이다. 박 시인이 최근 여섯 번째

 시집 ‘험준한 사랑’(창비)을 펴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도둑 사건을 고해하고

 있다.

박철 시인의 부인은 미학사라는 출판사에 다녔다. 한때 잘 나가던 그 출판사는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 닫던 날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부

인은 남편을 위해 용달차를 불러 원고용지를 ‘횡령’했다. 남편이 평생을 쓰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이 횡령 사건은 출판사의 실제 주인이었던 박의상 시인도, 그

리고 사장이었던 배문성 시인도 감쪽같이 모르는 일이었다고 한다. 부인은 무모

하고 용감했다.

박철 시인은 “원래 그런 여자였다”고 쓰면서, 부인은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고,

 자신은 김포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버스-마을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아내는 논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남편은 노을진 논둑에 앉아 있다

가 아내를 마중한다고 한다. 지금 그 원고용지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언제나 그

렇듯이 각단지지 못한 시인에게 지금도 세상은, “한 생애를 사랑으로 보내기에

는” 그저 험준할 뿐이다.

 


61.41.111.121 상파울러 강: 김해수님. 아름다운 사랑은 누구도 모른답니다...그 꼬마가 나중에서 커다란 꿈을 안고 시인이 되어건만 지금은 그사람은 누구을 위해 노력을 해본것 있습니까???.... -[07/01-14:00]-
218.158.55.170 대평정: 가슴이 저리도록 예쁜 동화같은 이야기 이군요. 모두들 엿같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아직은 세상을 살만하지 않습니까 ? -[07/04-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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