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emain
메인홈 적용보드
이 보드는 게시물을 올리기 위한 보드가 아니라 메인 홈페이지와
연동하기 위해 생성된 보드입니다.
보드를 삭제하면 안됩니다.
작성자 김일근        
작성일 2005-11-06 (일) 01:35
ㆍ조회: 94  
"이곳은 사람사는 곳이라 할 수 없다!"
"이곳은 사람사는 곳이라 할 수 없다!"
written by. konas
월북 미군병사 젠킨스의 자서전 '고백(告白) - To tell the Truth'

 번역·요약 = 최해일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필자가 일본 출장 중이던 지난 10월 12일 아침 NHK 뉴스시간에 젠킨스(Charles Robert Jenkins) 씨의 고백에 관한 인터뷰가 있었다. 즉시 근방 서점에 찾아갔더니 그에 관한 책이 출판되어 나왔기에 사서 단숨에 읽었다. 10월 15일 초판 발행인데 정식 출간 3일전이었다.
 생지옥과도 같은 동토 북한 땅에서 겪었던 쓰라린 경험을 생생하게 진술해놓은 글을 읽으면서, 평소에 듣던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에 그중 중요한 대목 몇 개만을 정리하여 독자들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자 한다.

 제1장 슈퍼 젠킨스

 1960년 9월 하순 한국의 제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비무장지대(DMZ)에 배속됐다. 그 이듬해 6월 이등상사로 진급했고 한국에서 1년 근무를 마치고 1개월 휴가를 얻어 뉴욕에 들렀다가 서독에 가서 3년간 근무를 마쳤다. 그후 다시 한국에 배치돼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월남에 파병될 것이 두려워 월북(越北)을 결심하게 됐다. 서독에 근무할 때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 동독으로 탈출했다가 소련으로 압송되어 본국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기에 나도 북한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귀국해서 군법회의에 넘겨진다면 적어도 월남 파병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산했던 것이다.

 1964년 성탄절 나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그리고 1965년 1월 5일 북한땅으로 넘어갔다. 나는 10여 명의 북한군인들에게 잡혀 어떤 막사에 갇히게 됐다.

 제2장 북한땅에서

 군사경계선 근처의 외딴 집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고 1m×3m 되는 작은 방에 갇혔다. 방문 앞에 감시원이 지키고 있었다. 방이라기보다는 작은 감방 같았다.

 저녁 때가 되자 몇 명의 병사들이 들어와서 나를 소련제 지프에 싣고 개성의 군사기지에 도착했다. 조사를 받고 다시 지프에 실려 약 10분 달려가 어떤 민가에 갇혔다. 저녁 7시쯤 도착하니 7, 8명의 군복 차림의 북한인과 함께 대좌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하가 밥을 날라 왔다.

 방안에는 인민군 대좌와 통역관 그리고 두 사람의 감시원과 또 한 명의 장교가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너희 부대는 어디에 있느냐”는 등의 심문을 한 다음 열차에 태워 평양으로 향했다.
 열차에서 내려 다른 차가 올 때까지 약 30분간 대위와 두 사람의 감시원과 기다렸다.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500m 떨어진 작은 오막살이에 도착했다. 그 집에서 약 10일간 머물렀다. 평상복을 입은 두 사람이 매일 찾아와 심문을 계속했다.

 약 10일간 심문이 끝나자 의복을 가져온 대좌가 다시 나타나 짐을 꾸리라고 명령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다른 미군 병사와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세 사람은 나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라리 알렌 아프샤 상등병, 제임스 조셉 도레스노크 이등병 그리고 제리 윈 바릿슈라는 특기관(特技官) 등의 악명 높은 인간들이었다.

 토요일 나는 북한 담당관의 안내로 병원에서 아프샤를 만났다. 이 세 명의 탈출병은 싫든 좋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북한의 실태도 잘 알지 못하면서 DMZ를 넘어온 것이었다.

 그들 역시 북한에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자들도 아니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든 탈출할 생각뿐이었고 북한에 영구히 수인(囚人)이 될 운명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 뒤로 수십년간 우리는 때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했다.

 그후 북한에 체류하는 40년간 여러 차례 이사를 했다. 처음에 사동(寺洞)에 체류한 것은 불과 62개월인데 조잡하기 그지없는 가옥에 있었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에게는 항상 감시원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김일성 교시를 배우는 일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혁명가의 제일 중요한 임무는 그의 교시를 학습하는 일이다. 만일 그 교시에서 한마디라도 틀리면 혼이 난다. 북한에서는 감시원들의 거동까지도 감시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북한에 친구라 불러도 좋을 만한 간부가 2, 3명은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외적인 존재였고 겁쟁이들이었다. 그밖의 간부들은 우리를 증오하고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냉혹한 자들이었다. 월북해서 평양까지 인도하던 장교 역시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이 작은 움막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40년 가까운 세월, 우리가 눈 앞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몇가지 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난 다음 나는 그곳 아가씨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우리는 참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는 아가씨들은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북한의 대다수 국민들은 기아와 영양실조, 강제노동 그리고 재판 없이 투옥 또는 처형당하는 위험에 일상 직면하고 있다.

 이에 비교하면 40년 가까운 체류기간 나는 나름대로 자유와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을 향유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동거인들은 대체로 충분한 식량을 얻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당시 나의 생활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이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DMZ를 넘어온 우리 네 명은 북한으로서는 냉전시대의 전리품이었다. 때문에 전쟁 포로들처럼 구속되는 일도 없었고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전용 포스터에 나오는 스타이기도 했던 우리 월북자는 행복해 보여야만 했다. 적어도 건강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체재하는 가운데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 왔다. 선전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사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조국(미국)을 배반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심정은 말로는 전달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당초 우리의 작업이란 학습이었다. 선전용 책자가 많이 있었다. 우리는 종일 북한의 역사 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활약했던 게릴라들의 무용담, 김일성의 교시에 관한 책을 읽어야만 했다. ‘인민의 수령’이니 ‘인민의 가운데서’라는 책들뿐이었다. 그런 책들을 읽고 지도원에게 보고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우리는 각각 결혼하기 전 까지 요리인(가정부)과 동거했다. 대개의 경우 그 가정부란 지도 조직의 감시원이었고 요리를 하는 것은 둘째였다. 1965년 6월 어떤 간부 하나가 찾아와서 조직에서 이 집을 써야 하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해서 살던 집에서 약 30m 거리에 있는 만경대 근처의 좀 더 큰 건물로 이사를 했다.
덕분에 바릿슈와 나는 함께 살게 되었고 도레스노크도 같은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방 하나는 북한의 감시원이 쓰게 됐다.

 집 한가운데 탁구대도 있었고 집은 컸지만,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난방시설도 수도도 없었고 150m나 떨어진 언덕에 올라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다 사용하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가옥이었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흐르고 있었지만 불과 몇 ㎞ 상류에서 하수가 흘러들어 사용할 수도 없었다. 두레박도 없어서 어느 날 근처에 있던 군부대에 가서 양동이 하나를 빌려다 물을 길어 사용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동이는 근처 옥수수밭에 똥물을 퍼다 붓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671 자동차를 이용해 범죄행위시 반드시 운전면허 취소 김일근 2005-11-09 85
1670    Re..헌법재판소 위헌결정 김일근 2005-11-29 40
1669 ~강해져라~ 백 형렬 2005-11-07 168
1668 한국속담 500선 1 김일근 2005-11-06 169
1667 아 ~ 가을속에 나~그리고 아버지 김주황 2005-11-06 148
1666 위 70% 절제 암환자 알고보니 궤양 김일근 2005-11-06 76
1665 "이곳은 사람사는 곳이라 할 수 없다!" 김일근 2005-11-06 94
1664 보훈처, 독도 현충시설 지정요청 보류? 거부! 김일근 2005-11-05 59
1663 안병직 “현 정권은 아무 일도 안하는 건달정부” 김일근 2005-11-05 74
1662 아내의 브래지어 박영희 2005-11-03 240
1661 마누라가 예쁘면!??? 鄭定久 2005-11-03 219
1660 살아가는야그 주준안 2005-11-02 131
1659 줄건 안주고 요구만 한 북한 김일근 2005-10-30 87
1658 재치있는 인생 살기 2 김일근 2005-10-30 130
1657 동의보감 찾아보기 1 김일근 2005-10-28 144
1656 UN묘지옆 <평화공원> 준공 김일근 2005-10-28 92
1655 우리들의자화상 산할아부지 2005-10-24 163
1654 잠이 안 오면---- 김일근 2005-10-24 184
1653 자유넷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링크된 다른 단체 홈페이지 1 김일근 2005-10-22 125
1652 지금은 그리움의... 3 김선주 2005-10-22 161
1651 이영수전우가 영면하였습니다. 10 김일근 2005-10-21 184
1650    Re.. 영천 호국용사묘지에 안장됩니다. 1 김일근 2005-10-23 80
1649 구름같은인생 주준안 2005-10-21 147
1648 박정희 대통령이 육여사님을!... 1 鄭定久 2005-10-20 153
1647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난다. 김일근 2005-10-19 137
1,,,41424344454647484950,,,116
대한민국 베트남참전 인터넷전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