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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해수
작성일 2005-11-30 (수) 19:35
ㆍ조회: 213  
까불지 마라
까불지 마라
여성 경제활동 급증 …家長 역할마저 점점 위축
 
정승곤 기자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장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영역인 경제력에서마저 남편을 압도하는 아내가 늘고 있다. 남편은 ‘방콕 생활’을 하고, 아내는 외출중인 가정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아내들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자조와 한탄 속에 살고 있는 벼랑 끝 남편들의 이야기…
 
▲  드라마「불량주부」 한장면

      “방콕” 그리고 “外出”

얼마 전「불량주부」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손창민과 신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열연한 이 드라마는 한동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 특히 졸지에 백수가 된 남자들에게는 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불량주부」는 텔레비전 연속극 얘기가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남자들의 애환이다. 이른바 백수라고 불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백수가 되면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밥하네 설거지하네, 방 3개 침구 정리정돈에 청소, 빨래까지 하루에 오전·오후 4시간은 꼬박 서서 일을 해야 한다. 아내 팬티가 늘 큰방 화장실 앞에 던져져 있는 것도 짜증을 돋운다.

“곧 잘될 거야”라며 좋은 직장 소개시켜 준다고 이력서 달라는 등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말만으로 끝인 사람들 때문에 마음 상하는 것도 지겹다.

백수들도 주말을 눈 빠지게 기다린다. 주말은 세상 사람들이 다 쉬니 백수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가장 괴로운 시간도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월요일 아침이다. 남들은 다 출근하는데 어디 한 곳 갈 데 없는 자신이 확인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어차피 고해(苦海)가 아니던가. 한평생 항해하다보면 암초도 만나고 거센 폭풍우도 만나는 법. 그렇지만 언젠가 먹구름이 걷히고 항구에 안착하는 날은 오게 마련이리며 자위하고 살아간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장(家長)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영역인 경제력에서마저 남편을 압도하는 아내가 늘고 있다.
 
남편은 ‘방콕 생활’을 하고, 아내는 외출중인 가정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   헬스클럽에서 운동중인 여성


 
  까

  불

  지
 
  마

  라

 
광주시 광산구 우산동에 사는
박모(62·회사원)씨는
한달 전부터
퇴근을 해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일찍 들어 가봐야 반겨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물론 아내조차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집을 비워놓기 일수다.
 
신혼 초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조금만 늦어도 미안한 빛을 감추지 못했던 아내였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돌변했다. 직장에 매인 남편과는 달리 문화센터, 헬스클럽 출입에 각종 모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며칠 전 집에 들어온 박씨는 냉장고에서 아내의 메모를 발견했다.

“까불지 마라!”

까불지 마라는 “가스 조심하고, 불조심하고, 지퍼조심까지 하고 마누라 찾아 징징대지도 말 것이며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어.”의 약자.
 
요즘 뜨는 유머라고 가르쳐주더니, 급기야 아내는 메모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여행을 떠났다.
 
전화를 받았을 때만해도 농담이거니 하고 피식 웃어넘겼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아내는 3박 4일이라고 통보를 해왔었다.

아내가 이처럼 큰 소리를 치며 사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내는 3년 전 서구 상무지구에 아파트를 샀다가 박씨에게 무척 혼이 났다.
 
박씨가 모아놓은 2억원에 은행대출 1억원, 친지에게 다시 1억5000만원을 빌려 아파트에「올인 베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박씨는 할 말이 없어졌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아파트 투자가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요즘 박씨에게 “당신이 번 돈으로 살았으면 아직도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했다” “당신이 세상 물정을 뭘 아느냐”며 면박을 준다.

당연히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목소리 톤도 달라졌다. 과거 직장 다닐 때는 최종 결재권을 박씨가 가졌지만 지금은 ‘통보’ 받고 ‘추인’하는 일만 한다.
 
최근 딸이 결혼할 때도 그랬다. 혼수품부터 저축상품 들기까지 모두 아내가 결정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저항하고 싶었지만 이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말했다.

                                         여성 경제활동 급증
▲  미용실에서 한 컷

 
광주시 북구 오치동에 사는 김모(43)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 1층 상가에 미용실을 냈다. ]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의 교육비는 물론 생활비도 못될 형편이기 때문이다.

처녀 때 미용실에서 근무를 하며 자격증을 따두었던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지금 김씨 집의 경제권은 완전히 김씨에게로 넘어갔다.

김씨의 솜씨를 알아주는 손님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제 생활비를 보태는 것은 물론이고, 딸 교육비, 은행대출 상환을 하고 저축까지 한다.

남편은 1년 전 회사에서 퇴직했다. 그의 전직(前職)은 중소기업의 상무였었다.
 
이력서를 몇 곳 제출해봤지만 좀처럼 취직이 되지 않아 집에서 살림을 돕고 있다. 김씨는 아침 일찍 밥을 먹자마자 집을 나선다.
 
그 사이 남편은 점심을 알아서 차려 먹고 집안을 청소한다.
 
지금 남편은 가정에서 전혀 존경받고 있지 못하다. ‘방콕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콕이란 방에 콕 들어앉아 산다는 뜻의 은어다.

남편 정씨(46) “1년에 딱 한 번인 동창회 모임이 가장 중요한 외출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 외에도 일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家長 역할마저 점점 위축

남자들이 작아지고 있다.

남편은 ‘방콕 생활’을 하고, 아내는 외출중이다.

오륙도(오십대 육십대에회사에서 근무하면 도둑놈), 사오정(사십대 오십대 정년퇴직), 삼팔선(삼십 팔 세를 넘기지 마라),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더니 어느새 2000년을 호령해온 남성의 권력은 저무는 해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장(家長)의 역할 역시 점점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영역인 경제력에서마저 남편을 압도하는 아내가 늘고 있다.

한 몸 회사에 바쳐 일하며 평생직장을 꿈꿔 왔던 시절이 있었다.

주중에는 밤 11시, 주말엔 종일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골프 치러 다녀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하숙생 같은 생활을 했어도 삐딱한 아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외환위기 당시 조기 퇴직 열풍이 일면서 조기퇴직을 뜻하는 ‘조기’, 명예 퇴직을 일컫는 ‘명태’ 황당하게 직장에서 쫓겨난 ‘황태’, 잘리지 않으려다 퇴직위로금도 못 받고 내몰린 ‘북어’, 최종시험 합격 후 입사도 하기 전에 정리해고 당하는 ‘노가리’ 등 생선 이름이 동원된 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생계를 위한 영위수단이었던 직장에서 남편들이 내몰리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반면에 아내들의 경제활동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전에는 주로 집안 일을 맡았던 여성들이 이제는 남편의 실직과 자녀들의 고용 불안정 등 때문에 경제활동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상시 구조조정 시대에 장년 남성의 재취업은 쉽지 않은 반면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장년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활동을 시작한 아내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커졌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남편들도 많다.
 
▲   여행중인 여자들이 늘고 있다

 
 
 
 
 
 
 
 
 
 
 
 
 
 
 
 
 
 
 
 
 
 
 
 
아내의 힘이 집안에서만 과시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A여행사 관계자는 “여행상품 문의는 대부분 ‘사모님’이 하고 결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업체 단체연수 등을 제외한 친목 목적의 단체여행 80~90%가 주부 등 여성의 계모임이나 동창회 여행이 된 지 오래다. 이 관계자는 “나이 든 여자 손님들은 부부동반 여행을 물어오면서 ‘솔직히 같이 다니기 귀찮다’고 한다”고 전했다.

은행이나 증권사의 주 고객 역시 여성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B은행측은 “금리가 높은 금융 신상품이 나오기가 무섭게 전화가 걸려오곤 하는데 십중팔구는 나이 든 사모님들”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은 이제 고백해야 한다. 백기부터 들라는 게 아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우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말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절실하게 따스한 이해가 필요할 때다. 한심하고 갈수록 엉망이 되는 남자라 해도 지금쯤 잘 다독거려야 앞으로 우리 삶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통통 튀는 여자 유인경이「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란 책을 통해 자신이 지켜본 중년 남자들에 대한 관찰기를 우악스럽지 않고, 마치 수다 떨 듯 표현해놓았다.

굳이 그녀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미 남자들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 남성들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

아내들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자조와 한탄 속에 살고 있는 벼랑 끝 남편들….
 
드라마 ‘불량주부’처럼 역할을 바꿔버린 남편들이 오늘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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