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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하웅
작성일 2004-11-16 (화) 13:40
ㆍ조회: 42  
Re..역사속의 파병 ( 계속 )
국군파병②'역사속의 파병-조선'
작성일 2004.11.14 조회수 10
작성일
임진란 이전에 조선은 명나라와 공동으로 북방의 여진족을 15차례나 토벌하였다. 대규모 토벌이 이뤄진 적도 있었으나 명 측으로부터 대규모의 병력 파병 요구는 없었다. 후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의 파병
1616년, 여진족의 누르하치는 대금국(大金國·후금·청나라)을 선포한 뒤 명나라에 조공을 중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위협을 느낀 명나라는 조선군과의 협공을 통해 후금을 제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명나라는 사신을 보내 조선에 지원병을 보내라고 요구하였으나 광해군은 왜란 이후 피폐한 경제와 일본의 침략위협등을 핑계로 파병 요구를 받아들이 않다가  명나라의 강력한 요구와 출병에 동조하는 조정 대신들의 압력으로 결국 파병을 한다.

광해군은 1만3천여명의 원병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로 임명한 다음 강홍립을 은밀하게 불러 “정세를 잘 살펴보고 행동을 결정하라”(觀形向背)는 지령을 내렸다.
  
강홍랍은 서울에서 출발해 반년이 걸린 1619년 1월말쯤에야 압록강을 넘어갔다.  
 
계속되는 전투에서 명군들은 연달아 패전했다. 조선군은 1616년 3월 심하에서 후금군을 패주시킨 일도 있었으나 사르후에서는 명군을 따라 장수 김응하와 군사 수천명이 전사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명군 지휘관인 유정이 일선에서 죽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강홍립은 통역을 누르하치에게 보내 “마지못해 출병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투항한다.
 
후금에 인질로 잡힌 강홍립은 모든 전투과정을 적은 장계를 여러 차례 조정에 보고했다. 광해군은 이런 정보를 입수해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자료로 활용했다.  

광해군은 심하전투에서 죽은 김응하의 충절을 기려 호조판서를 내리고 모든 신하들에게 공적을 찬양하는 시를 짓게 한 뒤 명나라 사신들이 왕래하는 길가에 사당을 세웠다. 이런 일을 벌여 명나라에 대한 충성이 변함없음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또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위해 평안북도 가도에 그의 군사들을 머물게 해주었지만, 지원을 거의 끊어 후금에게는 모문룡의 군대를 묶어 놓는 효과를 제공했다며 교묘한 외교술로 나라의 위기상황을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1623년 광해군이 무력(인조반정)으로 쫓겨난 뒤 인조와 인조를 추대한 반정세력은 광해군을 군부의 은혜를 저버린 ‘망나니’라고 떠들며 평안감사 박엽과 의주부윤 정준 등 후금의 통로를 맡은 자들을 재빨리 처형했다.
이러한 외교로 인해 마침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유발하여 나라를 다시 쑥대밭으로 만들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나선정벌
나선은 러시안(Russian)의 음역(音譯)이다. 러시아는 13세기 이래 몽골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15세기 말부터 독립하여 시베리아를 정복하였다. 그들은 곡식을 생산할 땅과 광물자원을 찾아서 헤이룽강[黑龍江] 쪽으로 남진하였는데, 1644년에 포야르군프, 1649년에는 하바로프의 탐험원정대가 헤이룽강에 이르러 그 지세 등을 조사하였다. 1651년 헤이룽강 북쪽인 야커싸[雅克薩] 하구에 알바진성(城)을 건설하여 군사 ·식민의 근거지로 삼았다. 하바로프가 알바진성에서 다시 헤이룽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1652년(효종 3) 우쑤리강[烏蘇里江] 하구에 아찬스크(지금의 하바로프스크)성을 구축하자 그 지방의 원주민인 아창족(阿槍族)과 충돌하였다.

아창족은 당시 그들을 통치하고 있던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여 청나라와 러시아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그때 청은 중국 본토의 공략에 몰두하고 있어서 만주 수비가 허술했던 관계로 1차의 원병은 러시아군에게 패퇴당하였다.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남진을 계속하자 청나라는 사신 한거원(韓巨源)을 조선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효종은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의견에 따라 원병을 보내기로 하고 함경도 병마우사 변급(邊쇘)을 사령관으로 삼았다. 변급은 정예 조총군(鳥銃軍) 150여 명을 거느리고 1654년 3월 26일 두만강을 건너 영고탑(寧古塔:寧安)에서 출발하여 후퉁강[厚通江:混同江]에 이르러 러시아군과 접전, 호통(好通:依蘭)에서 격파한 뒤 그 자리에 토성을 쌓고 같은해 7월에 돌아왔는데, 이것이 제1차 나선정벌이다.

1658년(효종 9) 3월에 청나라는 재차 구원병을 요청해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선발된 정예군 200여 명을 인솔하였다. 조선군은 청군과 합세하여 같은해 6월 10일에 헤이룽강에 진주하여 격전을 벌인 끝에 적선(敵船) 10척을 불태우고 적군 270명을 사살하였다.  이것이 제2차 나선정벌이다.

효종은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씻을 생각으로 북벌계획을 추진중에 있었는데, 2차례의 나선정벌은 조선의 군사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비록 파견된 군사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조선군의 사기와 사격술이 뛰어났음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효종은 나선정벌 준비를 빌미로 산성을 정비하고 군비를 확충했다. 당시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청에 의해 군비확충이 금지됐었다. 그러니까 효종은 파병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최종 목표인 북벌의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출처: 야후, 국사편찬위
정리: 공보관실 사이버홍보팀 중위 이종만([URL]cyber@mnd.go.kr[/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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