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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태
작성일 2004-01-05 (월) 12:50
ㆍ조회: 146  
우리 생활에서 살아저 가는 것들

▲ 엿장수

엿장수의 가위소리는 애들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철커덕 척척 철커덕 척척척척…”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 치는 소리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다 나와 뒤를 따릅니다.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더 흥이 나서 가위를 칩니다. 엿이 먹고 싶어서 입에서는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무얼 가지고 엿을 바꿔먹나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엿 장단으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소리를 지릅니다.
“엿이 왔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헌 고무신이나 빈 병삽니다. 고철도 삽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구수한 목소리로 흥을 돋우는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별의 별 것을 다 갖고 나옵니다. 놋그릇 깨진 것, 요강, 뚫어져서 못 쓰게 된 양은 냄비, 헌 고무신, 막 소주 됫병. 머리카락, 산에서 주운 탄피….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끌날 같이 생긴 도구를 대고 가위로 톡톡 치면서 엿판에서 엿을 끊어냅니다. 사람들이 ‘이게 뭐냐’고 더 달라고 하면 ‘에라 인심이다’ 하고 조금 더 떼 줍니다.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 입니다.




▲ 수레

흔들리는 소달구지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소몰이꾼과, 바쁠 것이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수레를 끌고 가는 황소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요즈음 한 폭의 그림처럼 「느림의 철학」을 일깨워 준다. 한여름 포플러가 늘어선 비포장 시골길을 지나가던 소달구지는 20~30년 전만 해도 가끔씩 마주쳤다.
바퀴도 차체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수레는 古代부터 인류가 써왔던 생활 도구였다. 수레는 끌어당기는 動力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소가 끌면 소달구지, 사람이 끌면 손수레, 말이 끌면 마차라 부른다.
나무바퀴 대신 고무바퀴를 단 수레가 등장해 힘 안 들이고도 많은 짐을 실어나를 수 있는 「개량형 수레」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자동차와 트랙터가 보급되면서 그나마도 보기 힘들어졌다. 가끔 북한의 농촌 실정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화보를 보면 아직도 소달구지가 오가고 있다




▲ 닭싸움

봄철이 되면 이집 저집 앞뒤 마당에서는 수탉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홰치며 하늘로 치솟아 예리한 부리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볏에서 피가 흐르는 등 보기에 처참할 정도의 싸움이다. 수탉들의 싸움은 멀리서 한가하게 먹이를 쪼아 먹고 있는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그런가 하면 닭이나 개를 파는 시장에 가면 눈매가 매섭게 생기고 다리가 길고 목이 긴 싸움닭(동남아産으로 일본에서 육종된 「샤모-Shamo」)들의 닭싸움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싸움닭을 기르는 집들이 생기면서 동네 마당에서도 가끔씩 닭싸움을 붙이곤 했다. 부리로 볏을 쪼고 발로 차면서 싸우는데, 주저앉거나 부리가 땅에 닿거나 도망을 치면 지게 된다. 싸움닭을 보면 오직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놈 같아, 미운 생각이 들어 근처에 얼씬거리면 냅다 발길질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습도 민속 장날 鬪鷄場(투계장)에서나 볼 수 있다.




▲ 풍구

날이 궂은 날, 젖은 솔가지나 왕겨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눈물께나 흘려야 했다. 기압이 낮으니 굴뚝으로 연기가 잘 빠지지 않는데다 젖은 땔감들이라 잘 타지도 않는다. 입으로 불고 부채질을 해대지만 연기만 날 뿐이었다.
아궁이에서 매운 연기가 새어나와 목이 아프고 눈이 매워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연신 훔쳐야만 했다. 이럴 때 풍구로 바람을 일으켜 불을 붙였다.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풍구는, 쭈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때던 아이의 장난감이 되곤 했다.
쇠로 된 풍구의 몸통 내부에는 네 개의 날개를「X자」모양으로 단 바람개비가 있고, 고무 줄로 연결된 바퀴를 이용해 바람개비를 돌리면 바람이 일어 아궁이 속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풍구는 농촌에서 탈곡을 한 낟알에서 검불이나 먼지를 날려버리고, 낟알을 고르는 데 썼던 농기구였다. 이를 작게 만들어 아궁이나 풍로, 대장간의 화덕에 불을 지피거나 불길을 살리는 데 썼다.
연료가 바뀌고 부엌의 조리, 난방 시스템이 바뀌면서 아궁이가 없어지자 풍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 참방짜 수저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우리 어머니들은 장농이나 찬장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유기(鍮器)를 꺼내 기와 빻은 가루를 짚에 묻혀 힘껏 닦았다. 이렇게 해서 시퍼런 녹도 제거하고 유기 본래의 황금색 광채를 되살려 냈다. 유기 그릇은 銅(동)과 朱錫(주석)을 10대 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만든 놋쇠가 원료. 놋쇠를 두들기고 늘리고 다듬어서 그릇 형태를 만드는 「방짜 제작법」과 「퉁짜 유기」라고 해서 鑄物(주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주물 제작법」이 있다.
良大鍮器(양대유기)라고도 하는 방짜 유기를 북한에서는 「양대」, 남한에서는 「방짜」라 부르고 있다. 유기는 견고할 뿐 아니라 모양이 정교하고 광채가 예뻐 대야, 그릇, 수저 등은 혼수감으로 빠지지 않았다. 일제시대 전쟁물자로 강제 공출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유기는 광복 후 한때 유행하는 듯 했으나 6ㆍ25 전쟁 후 집집마다 연탄을 때고 양은과 스테인레스 그릇이 나오면서 거의 사라졌다




▲ 납활자

납으로 구워 낸 네모난 납 活字를 골라 組版(조판)한 후 잉크를 묻혀서 종이에 압력을 가해 찍어 내는 활판인쇄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금속활자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해 일부러 명함이나 간단한 서류 양식을 납활자로 인쇄해서 쓰고 있는 이들도 있다.
1884년(고종 21) 3월 廣印社(광인사)라는 민간 출판사가 일본으로부터 활판기와 납활자를 도입하여, 農政撮要(농정촬요)와 忠孝經集註合璧(충효경집주합벽) 등 농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책을 발간한 것이 우리나라 활판인쇄의 시작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신문제작에서는 납활자가 필수였다. 1990년 초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는 전산화된 신문제작 공정이 도입되면서 납활자를 고르고 조판을 하고, 다시 지형을 떠서 鉛版(연판)을 만들어 신문을 찍어 내던 활판인쇄 시대가 마감됐다.
인쇄소 밀집지역인 서울 중구 충무로 뒷골목에 가면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은 활판인쇄소가 두어군데 남아 있다. 변하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지만, 이런 인쇄소가 하나라도 살아남아 활판인쇄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검정고무신

땀이 차면 질컥거리고, 뛰어가다 보면 훌떡 벗겨지는 검정고무신. 옛날 어린이들은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어보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물론 검정고무신이 편리한 때도 있었다. 때가 묻어도 표가 안 나고, 汚物(오물)이 묻으면 빨래 비누를 묻힌 수세미나 짚으로 닦아내고 나서 물로 헹구면 그만이었다. 물이 새지 않는 고무신은 아이들에겐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다. 냇가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흙장난할 때 흙이나 모래를 퍼담아 부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멱을 감을 때는 바가지 대신 물을 퍼서 끼얹는 데 쓸 수도 있었다.
흰색 고무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무신이 검정색이었던 것은 廢타이어나 튜브 등을 主원료로 한 재생고무를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무신에 구멍이 나거나 해지면 고무조각으로 때워서 계속 신고 다녔다. 더 이상 때워서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무신이 낡으면, 아이들은 고무신을 고물장수에게 가져가 엿이나 강냉이 튀긴 것과 바꿔 먹곤 했다. 지난 날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鄕愁(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신기에 편리하고 가볍기 때문일까? 요즘도 집 안에서 마당을 거닐 때 신는 신발로 검정고무신을 애용하는 나이 드신 분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다




▲ 요강

어릴 때 밤중에 바깥의 뒷간을 가려면 부모님이나 형들을 깨워서 동행을 했다. 말로만 듣던 뒷간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한겨울 한밤중에 덜덜 떨면서 멀리 가지 않고도 크고 작은 일을 방안에서 볼 수 있던 편리한 도구가 요강이다.
예부터 상류층이건 서민층이건 요강은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 도구여서 혼수품 준비에 놋요강과 놋대야가 반드시 끼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요강을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져서 도기나 자기, 유기 외에 오동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쇠가죽에 기름을 먹인 것도 있었다.
최근세에 와서 깨지지 않고 세척하기 좋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요강이 등장했다. 아직도 한옥이나 시골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요강을 부시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 양은도시락

옆자리 친구가 보자기에 싸 온 양은 도시락. 쌀밥 위에 달걀 프라이가 얹혀 있으면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어쩌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날 점심시간에는 교실에 남아 있기가 쑥스러워 슬며시 자리를 떠 구석진 강당 입구 계단에 앉아 서울 시내를 처량하게 내려다보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겨울이면 양은 도시락을 난로에 층층이 얹어 데워 먹는데 맨 아래에 놓인 도시락은 속이 눌어붙고 타기도 해서 교실은 눌은 김치와 밥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렇게 해서 먹고 난 빈 도시락은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의 꾸지람감이다.

시커멓게 눌어붙은 반찬 찌꺼기며 밥알을 떼어 내려면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손길이 더 갔을 터이다. 나중엔 찌그러지고 녹이 나는 양은 도시락 대신 반영구적인 알루미늄 도시락이 등장했다. 책가방의 무게와 부피를 더해 주던 도시락. 김칫국물이 흘러 책과 가방을 적시고 진한 냄새를 피우던 도시락은 우리 모두의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靜物 가운데 하나다




▲ 목도장

圖章(도장) 대신 서명이 보편화하면서 개인, 단체, 관직 등의 이름을 새긴 木圖章이 보기 힘들어졌다. 말이나 글로 하는 약속의 최종 완결편이라고 할까. 계약서 등 각종 서류에 圖章을 찍는 것은 「법이 보장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印鑑(인감)제도가 있어서 圖章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명에 떠밀린 木圖章은 후미진 서랍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木圖章을 새겨 주던 도장집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도장 파는 기술도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고 있다. 컴퓨터에 입력된 글자 모양에 따라 기계가 정교하게 도장을 파주는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아직 보급이 안 된 중소도시에나 가야 木圖章 집을 볼 수 있다.




▲ 물지게

50代 이상의 나이에 여간한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도시에 살았건 시골에 살았건 물지게를 져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변두리 산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公衆(공중) 수도에서 물지게로 물을 져 날랐다. 시골 사람들도 집안에 우물이 없으면 우물물을 물지게로 져다 먹어야 했다.

긴 작대기의 양 끝에 쇠고리를 달고, 나무 등받이에 천이나 짚을 꼬아 멜빵을 만들면 물지게가 된다. 물을 가득 채운 양철통을 양 끝 쇠고리에 걸고 일어나려면 壯丁(장정)이라야 가능한 일이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어른들이 지는 큰 물지게를 지고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누군가 『요즈음 아이들은 물지게를 지지 않아서 키가 장대처럼 크다』고 했다.





▲ 함진아비(일명 함재비)

어둠이 내린 초저녁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函(함) 사세요』
아파트 숲속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어쩌다 들려오면 동네 꼬마들이 신기한 듯 몰려나와 낄낄거리며 기웃거린다. 전통혼례 절차 가운데 하나로 식을 올리기 전에 신랑의 四柱와 청혼서, 분홍 저고리감과 가락지 1쌍을 禮緞(예단)으로 마련하여 사주함에 넣어 신부집에 보낸다. 신랑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함을 진 친구들로 구성된 「함재비」는 함을 그냥 신부집에 내려 놓는 것이 아니라 신부집 앞에서 대문으로 들어서기까지 길에다 돈을 깔게 한다. 이처럼 함값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관습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신부집 앞에서 함재비들이 과도한 함값을 요구하다가 신부집 친인척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신부 친구들의 勸酒(권주)와 아양에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이날 함재비를 맞아들였던 신부 친구들도 질세라 함재비 측에 「꽃값」을 요구했다. 혼례식을 간소화하다 보니 초저녁 골목길에 마주치던 婚前(혼전) 절차인 「함」을 보내고 맞아들이는 함재비 행렬은 이젠 시골에서도 마주치기 힘들다




꽈리불기

가을이면 담장 밑에 줄지어 자란 꽈리 가지에 꽃받침이 커지면서 열매를 완전히 감싼 짙은 오렌지색의 꽈리 열매가 꽃보다 더 아름답게 달린다. 꽈리는 가지科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잘 익은 꽈리 열매를 손으로 주물러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 바늘이나 성냥개비로 꼭지를 찔러서 속에 가득찬 씨를 뽑아낸다. 속이 빈 꽈리 열매에 바람을 불어넣은 다음 입에 넣고 혀와 이와 잇몸으로 가볍게 눌러 소리낸다. 「꽈르르 꼬르르」 길을 가면서 꽈리를 입에 넣고 연신 불어대던 이런 꽈리 소리는 마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 하여 어른들은 꽈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고 꾸지람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꽈리불기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실뜨기 등과 함께 10代 소녀들의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 한때 천연 꽈리 대신 고무로 만든 인공 꽈리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 이후 꽈리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추억의 소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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