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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태
작성일 2004-04-11 (일) 13:46
ㆍ조회: 75  
Re..석가모니


 
 

 요약
불교의 창시자. 생몰년에 관해서는 BC 463∼BC 383년설과 BC 563∼BC 483년설이 있다. 네팔 남부가 인도대평원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었던 카필라성(Kapila城)을 중심으로 사카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국왕인 정반왕(淨飯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내용

불교의 창시자. 생몰년에 관해서는 BC 463∼BC 383년설과 BC 563∼BC 483년설이 있다. 네팔 남부가 인도대평원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었던 카필라성(Kapila城)을 중심으로 사카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국왕인 정반왕(淨飯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석가라는 호칭은 이 종족이름에서 연유되며, 존칭하여 석가모니라 불리는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흔히 각자(覺者;깨달은 사람)를 뜻하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타(佛陀;Buddha) 또는 불(佛)이라 하며, 다시 여래(如來;진리의 완성자) 또는 승자(勝者;Gina)라 하기도 한다. 80년의 생애는 분명한데, 몰년에 관해서는 BC 483년 무렵과 BC 383년 무렵의 2가지 설이 유력하다. 사카족은 네팔계, 따라서 몽골계 인종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나, 당시 이미 압도적인 인도-아리아문화 영역내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19세기에는 계몽사상 등의 영향 때문에 석가의 실재(實在)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으며, 천문학상의 여러 설과 태양신화를 근거로 석가의 전기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었다. 1898년 네팔의 남쪽 국경에서 하나의 납석단지[蠟石壺]가 발견되었는데, 그 표면에 새겨진 BC 3세기 이전의 글은 <이것은 석가족의 불(佛), 세존(世尊) 유골의 그릇이며, 명예로운 형제자매 처자들의 봉납(奉納)>이라고 해독되었다. 이는 원시경전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오랜 전승(傳承)이 여기서 확증되었다. 그 밖에 1896년에 발견된 아소카왕 비문은 석가의 탄생지 룸비니를 증명하며, 후에 다른 뼈단지[骨壺]를 발굴한 것도 있으니, 석가의 실재(實在)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오늘날의 문헌학을 종합한다면 가장 오래된 경전은 석가의 손제자(孫弟子) 무렵에 성립했다고 한다. 즉 석가 입멸 직후에 불제자가 모여서 석가의 언행을 편집(이를 제 1 결집이라 함)하여, 그것이 구송(口誦)으로 전승되었고, 또한 확대되었다. 시대의 경과와 전파과정에서 잘못 전해지고 분식되었으며, 또한 증광(增廣) 및 변경되기도 하였다. 특히 석가에 대한 사모·존숭·신앙이 강화되어서 석가를 신비화하고 공상화했으며, 때로 잡다한 요소가 부가되었다. 또한 교설(敎說)도 나중의 발전 성과와 뒤섞였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초기 경전은 모두 석가의 입멸 후 100년 내지 200년 무렵에 교단이 보수파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파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하고 다시 여러 갈래로 분열한 끝에 성립한 20여 개 부파 중 몇 개 부파에서 확정한 것인데, 석가의 직접적 가르침을 가려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석가는 마가다어로 가르침을 전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마가다어는 팔리어와 표준어인 산스크리트로 바뀌었고, 산스크리트는 다시 다른 속어(예컨대 간다라어 등)로 옮겨졌다. 또한 많은 것이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일부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일부이기는 하지만 위의 고어 사본 단편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마가다어는 팔리어 문헌에 조금 그 어형을 남겼을 뿐이고, 마가다어의 종합된 텍스트는 현존하지 않는다. 이 초기 경전군을 아가마(A gama;傳來)라고 한다.


 1 출가(出家)와 성도(成道)
아가마에서는 석가의 전기(불전)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단편적인 회상(回想) 및 상상력에 의해 불전이 창작되었고, 그 종류도 늘어났다. 오늘날 전해지는 불전은 모두 그것들에 바탕을 둔다. 석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이후는 이모의 손에 자랐다. 왕자로서의 교양을 쌓았으며, 16세에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다. 그러나 부유한 생활을 버리고 괴로움의 본질 추구와 그 해방인 해탈을 목표로 29세 때 출가하였다. 갠지스강변의 선인(仙人) 2명을 찾아가 그 선정(禪定)을 배웠으나 마음에 흡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가야라는 고장의 산림에서 고행을 시작하였다. 극단적인 금식 아래서 고행은 6년간 이어졌다. 지친 몸과 마음을 가누기 위해 산림에서 나온 석가는 마을 소녀가 주는 젖죽을 받아먹고 체력을 회복한 다음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사색에 잠겼다. 여기서 깨달음을 얻어 성도(聖道)를 완성하였다.


 2 설법
석가는 베나레스 북쪽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에서 지난날 고행을 함께 하였던 5명의 출가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교화되어서 불제자가 되었다. 승가(僧伽)라 하는 교단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석가는 요청을 받는대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나가서 전하였고, 그들의 물음에 대답해 주면서 설법교화의 여행을 하였다. 경전에는 이때의 불제자가 1250명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것을 초과한 듯하다. 그러나 석가는 자설전도(自說傳道)나 교단 설립의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민중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여행하였다. 입멸한 뒤 민중들에 의하여 화장되었고, 그 유골(佛舍利라 한다)은 여러 왕들에게 나누어져 8군데에서 모시게 되었으며 스투파(塔)를 세우게 되었다. 석가의 직접적 교설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원시불교 교설의 원형 내지 핵을 간단히 들어보면 ① 현실직시와 그에 의한 다양성 승인 ②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주체적인 자기를 확립하며, 아집과 자기중심은 버린다. ③ 일체의 평등 ④ 실천을 목표로 하고 논의의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⑤ 보편적인 법을 중심으로 한다. ⑥ 삼법인(三法印) ⑦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 ⑧ 오온(五蘊) ⑨ 육입(六入) ⑩ 연기(緣起) ⑪ 니르바나(nirv na;열반)가 바로 해탈·깨달음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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