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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하웅
작성일 2004-12-14 (화) 23:06
ㆍ조회: 74  
Re..회원님들 한번 읽어봐 주십시요 계속입니다


  실업문제, 베트남 진출로 풀어
 
  당시 최고의 사회 문제는 실업이었다.
 
  마땅히 일할 데가 없어서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화투나 치고 있었다. 1962년 2월 金鍾泌씨와 石正善씨, 沈興善 장군, 李範俊 장군은 고딘 디엠 대통령의 초청으로 베트남에 갔다. 당시 베트남에 미국인들이 40∼50명 정도 들어가 있을 때였다.
 
  『石正善씨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50만명까지 들어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강원도 양구, 인제, 평창의 도로는 한국전쟁 때 미국 공병들이 다 닦은 거예요. 인해전술을 쓰는 중공군은 도로가 없어도 되지만 미국식 전쟁은 반드시 도로가 있어야 합니다. 탄약, 기자재를 들여오려면 비행장과 도로가 있어야지요. 한국전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도 군사특수가 일어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石正善씨는 한국에 돌아와 미국 건축회사 30군데에 「베트남에서 전쟁하려면 공사를 해야 하고, 일꾼들이 필요할 것이다. 1인당 임금을 500달러만 주면 10만 명이든 20만 명이든 보내겠다. 배관공·목수·벽돌공·정비공 다 공급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한 달 후 미국 건축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100명 보내 달라」, 「500명 보내 달라」, 「1000명 보내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전국에 불도저 운전사 모집 공고를 냈다. 1000명 모집에 1만 명이 오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불도저를 갖다 놓고 실기 시험을 쳤는데, 베트남에 보낼 인력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시동만 걸 줄 알면 다 합격시켰다.
 
  한국인 근로자 1명을 보낼 때마다 알선료로 100달러씩 받았다. 그때는 100달러만 해도 엄청난 돈이었다. 1만 명을 보내면 100만 달러라는 돈이 생긴다는 결론이다.
 
  그 돈으로 학교 부지를 하나 사서 「해외개발공사」를 설립했다. 해외에 가려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해외개발공사에서 베트남에 7만여 명, 서독에 간호사 6200명과 광부 수천 명을 보냈다.
 
  1965년에 비둘기부대가 베트남으로 파병될 때 기술자들이 함께 나갔다.
 
  『현대 鄭周永 회장, 한진 趙重勳 회장 등은 베트남에 가서 회사 명의로 공사를 땄어요. 비행장 건설, 항만 건설 등 베트남에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때 우리나라에 실업자들이 많았으니 임금을 100달러만 줘도 일할 사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베트남에서 컸고, 우리나라 경제가 베트남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그곳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기업과 기술자들이 1970년 초부터 중동으로 가서 중동붐을 일으켰지요』
 
 
  정부자금으로 보르네오 자원개발에 투자
 
  艾壽根씨는 『역사를 평가할 때는 당시 상황을 알고, 功過(공과)를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1964년 베트남에 살던 교포 김태성씨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편지를 보내왔다. 김태성씨는 남방목재개발회사와 신흥양행이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국가가 지원해 주면 목재개발을 해보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벌채권을 따내서 원목을 국내로 보낼 테니 국내에서 합판을 생산해 수출하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때는 뭐든지 내다 팔아서 외화를 벌어들여야 할 형편이었어요.
 
  김태성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내가 1964년 신흥양행 상무로 파견되었어요. 정부에서 자금을 댔으니 정부 관리가 나가서 관리를 하게 된 거죠』
 
  김태성씨가 지원을 부탁한 금액은 150만 달러였다.
 
  정부가 보증을 서고 미국 FNCB 은행에서 차관을 얻어 신흥양행에 제공했다. 대한민국 건국 후 정부 자금을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최초의 사건이다.
 
  우선 보르네오 섬에 파견할 인력을 선발했다. 공병대원 출신 30명을 선발한 뒤, 한순하 대령을 제대시켜 단장으로 임명했다. 당시만 해도 군인 출신이 아니면 정글 지역에 가겠다고 나설 사람이 없었다. 1964년에 150만 달러로 중장비를 마련하여 보르네오 섬으로 갔다. 현지주민 100여 명을 고용하여 정글로 들어갔다.
 
  『정글에서 원목 벌채 작업을 했습니다. 환경이 정말 열악했지요. 정글에다 천막을 쳐놓고 생활했는데, 뱀이 득실거리고 모기가 온몸을 물어뜯었습니다. 생필품은 싱가포르에서 조달했습니다. 정글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원시인들처럼 지냈죠.
 
  원주민들에게 원조품을 지급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지급하면서 유대관계를 맺었습니다. 우리가 대우를 잘해 줘서 현지에서 뽑은 일꾼들의 생산성이 높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예요. 거기서 서울과 연결하는 관리업무를 했지요』
 
  원목을 벌채한 뒤 운반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하천을 40km나 내려가야 항구가 나옵니다. 우리나라 배가 없어서 3000t급 외국선박을 빌려서 인천항과 부산항으로 보냈지요』
 
  국내 동명목재, 광명목재 등의 회사가 원목으로 합판을 만들어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했다. 그전까지 일본이 최대 합판 생산국이었으나, 대한민국이 세계 최대 합판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 말 인도네시아가 직접 합판을 생산하면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원목을 싸게 구할 수 없게 될 때까지 합판은 우리나라의 主力 수출상품이었다.
 
 
  베트남에서 만난 鄭世永·鄭仁永·趙重勳
 
  艾壽根씨는 1964년에 1년간 보르네오에서 일한 뒤 1965년에 베트남으로 진출했다. 베트남에서는 해외개발공사 동남아지국장을 맡아 국내 기술요원 송출 사업을 도왔다.
 
  『1965년 3월9일에 베트남에 갔어요. 현대·대림·한진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었지요. 鄭周永 회장의 동생인 鄭仁永씨와 鄭世永씨가 태국 도로공사를 하다가 베트남에 왔는데 얼굴이 새카맣더군요. 기업체 사장이지만 얼마나 검소한지 몰라요. 1달러짜리 토스트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곤 했지요. 거기서 호강한 사람 없어요.
 
  아침마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면 인사가 「공사 따셨소. 돈 좀 벌었소」였어요. 송금하려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가야 했는데, 趙重勳씨와 함께 많이 다녔어요. 趙重勳씨는 자신이 대한항공 사장이면서도 절대 1등석을 안 탔어요.
 
  鄭仁永씨와 몇 번 외국에 같이 다녔는데 이 양반이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녔어요. 넥타이에 늘 때가 끼어 있어서 내가 놀렸더니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며 웃더군요. 기업체 사장들하고 다녔지만, 그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그릇 못 얻어 먹었어요. 뒷골목에서 우동 한 그릇을 사 주곤 했죠. 훌륭한 분들입니다』
 
  대사관 직원들과 파월 군인들이 우리 기업을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때 우리 외교관들이 참 훌륭했어요. 駐越대사관 외교관들이 낮에는 나라 일 하고 밤에는 한국 기업들이 공사를 많이 따도록 돕기 위해 뛰어다녔어요. 한국 부대 부대장들은 물건이 세 트럭 필요하면 미군들에게 여섯 트럭 받아서 세 트럭은 우리 기업들에게 그냥 나눠 줬어요. 공사를 원활하게 하라고.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艾壽根씨는 『그때를 돌아보면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싫어하는 군사독재下에서 벽돌 하나 쌓은 사람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일만 하다가 해외에 나갔으니 떳떳합니다. 오랜만에 고국에 왔는데 요즘 마음이 혼란합니다』
 
  艾씨는 『盧武鉉 대통령이 朴正熙 대통령처럼 준비 없이 출발한 건 비슷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첫째, 朴대통령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실력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았어요. 계획없이 시작한 만큼 일 잘하는 사람 찾는 일에 비중을 많이 두었지요. 盧정권은 코드가 맞는 사람만 찾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은 「잘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똘똘 뭉쳤어요. 지금은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라는 구호를 국민들이 공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艾壽根씨는 이런 당부를 했다.
 
  『지금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념 다툼과 정쟁을 중단하고, 다시 한 번 뭉쳐야 합니다. 5·16 당시에 비하면 얼마나 여건이 좋아졌습니까.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이 일어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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