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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태
작성일 2004-05-04 (화) 22:21
ㆍ조회: 84  
월송정
 전설 따라 바다로 간 청송, 울진 여행(3)-월송정, 망양정

바다 밖은 하늘이요 하늘 밖은 무엇인가


월송정, 남아 이십칠세에 이루고자 했던 일

▲ 월송정 전경
누각(樓)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고(登樓遊子却行路)
낙목이 가로 놓인 조국을 탄식하네(可歎檀墟落木橫)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男子二七成何事)
문득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暫倚秋風感慨生)
- 신돌석 -


소나무 오솔길을 걷다, 월송정 누각에 올라 드넓은 송림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호연지기라 했던가? 굳이 이 누각에서 겨우 27세의 나이에 이루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세좋게 읊조리던 의병 신돌석은 아니라 해도 고깃배가 보일락 말락하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과연 내가 27세 때 이루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나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된다.

▲ 월송정에서 바라다 본 바닷가
예로부터 신라시대 술낭(述郞) 등 화랑 4명이 달을 벗삼아 송림사이를 노닐었다고 해서 월송정이라 불렀다지만 또 일설에는 월국(越國)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정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월송정은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많은 굴곡과 사연을 지니고 있다.

여행정보

백암온천 심도 77~300m에서 솟는 국내 유일의 방사능, 유황 복합 온천인 백암온천의 강알칼리성 온천수의 수질은 전국적으로 손꼽을 만큼 좋습니다.

백암 온천에는 다음과 같은 민담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신라 시대에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그 다음날까지 쫓아갔습니다. 전날 쫒기던 사슴이 쉬고 있다가 사냥꾼이 오는걸 보고 달아났는데 이곳 주변에 뜨거운 샘물이 용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백암사 스님이 온천을 만들어 환자를 목욕시켜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졌고 고려시대 현령이 지방민을 동원하여 화강암으로 석함을 만든 후 그 위에 집을 지어 온천탕을 공개하면서 이곳이 본격적인 온천이 되었습니다.

특히 신경통,류마티스,근육통,당뇨병,부인병,중풍,동맥경화,소화불량,빈혈,피부질환,피로회복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입욕료는 5,000원입니다.

관동팔경 동해안에 있는 명승지 8곳을 이르는 말로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입니다. 월송정 대신 흡곡(谷)의 시중대(侍中臺)를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고성의 삼일포와 통천의 총석정은 북한 쪽에 있어 볼 수 없고 현재는 6경만 볼 수 있습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차례대로 내려오면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 순으로 볼 수 있는데 6경 중에 청간정, 경포대, 낙산사, 죽서루는 강원도 쪽이고, 월송정과 망양정은 경북 울진에 있습니다.
원래 고려 충숙왕 때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세워져있던 것을 조선시대 중종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반정 전 강원도 관찰사였을 당시 중건한 이래 계속 돌보지 않아 오랜 세월동안 퇴락한 것을 지방 유지들이 다시 중건하였다.

그러나 구한말, 군사요충지라는 이유로 일본군이 다시 철거했다가 해방 후인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했는데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다시 해체하고 1980년 7월 당국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등 해체와 신축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현판 글씨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썼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박원종에서부터 신돌석, 최규하에 이르기까지 이 조그만 정자 하나에 정말 많은 역사 인물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박원종 하면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옹립한 희대의 사건인 중종 반정의 주역 중에 주역이다. 일설에는 월산대군 사망 후 수절하고 있다가 연산군에게 능욕당한 월산대군의 처 승평부대 부인 박씨가 자살하기 전에 친정 동생인 박원종을 불러 원수를 갚아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 후 목을 매어 자살하자 원통한 누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박원종이 중종 반정을 결행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부부인 박씨가 사망한 해가 바로 중종반정이 일어난 1506년이고 보면 시기상 야담의 이야기와 썩 일치하지 않고 있다.

월송정은 박원종이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전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좌천당해 한직인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했을 때 중건했으니 추측컨대 이 때부터 박원종은 이 월송정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마음속으로 반정의 밑그림을 차근차근 그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름대로 개혁을 꿈꾸며 중종반정에 성공한 그도 말년에는 무소불위한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초호화판 주택을 짓는 등 개혁과는 담을 싼 호사스런 생활을 하다가 중종 5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삶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초심을 지닌 채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바다 밖은 하늘이요 하늘 밖은 무엇인가

▲ 울진 해안도로의 아침.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는 미역을 말리기 위해 꽂아놓은 막대기들만 을씨년스럽게 보일 뿐 한적하고 조용해 보인다.
망양정을 가기 위해 7번 국도를 달리다 망양휴게소를 지나 우측으로 달리면 울진군 덕신에서 근남까지 이르는 총 13.3km의 유명한 해안도로가 나온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해안선 따라 달리노라면 늘 푸른 바다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아침이라서 인적이 드믄 바닷가에는 미역을 말리기 위해 꽂아놓은 막대기들만 을씨년스럽게 보일 뿐 물새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는 언제나 한적하고 조용해 보인다. 이런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곳에서 작은 집을 짓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살가운 그런 삶을 꿈꾸지 않을까? 그러나 꿈은 꿈일 뿐 우리에게 현실의 삶은 꿈처럼 살갑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 해안도로를 달리다 본 촛대바위
스무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촌에 작은 낚시집이나 하나 열어서 살아가는 꿈.
또는 땡중이나 수도승이 되어 산사의 목어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꿈.
백두대간 봉우리 하나쯤 잡아서 산장지기를 하며 늙어가는 꿈.
그때는 그게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중략)
마흔 무렵이 되면 다시 이런 글을 쓸 것이네.
서른 무렵에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로 시작하는 글 말일세.
당신이 부럽네. 축하하네. 이제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게.
다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싸우고 토악질하고 부둥켜 안고 울기를 바라네.
그래야 마흔이 되어도 이런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네.
안 그런가?

새로운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 中


▲ 출항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아저씨들
촛대바위에서 자동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저만치에서 출항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니 아저씨의 눈에는 그런 내가 구경거리였나보다.

"어디서 왔소?"
"서울에서요."
"뭐 볼게 있다고 이런 걸 찍나?"
"아저씨 모습이 멋있어서요. 그럼 고생하세요."

그물을 열심히 손질하느라 열중하고 있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그들이 멋있어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아마 멋있다는 것, 삶이 멋있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때가 듬뿍 묻혀져 맨질맨질하게 닳아있다는 것일게다. 마치 푹 곰삭은 젓갈의 깊은 맛처럼…. 해풍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말리는 황태의 폭신함처럼….

나는 언제쯤 그렇게 곰삭아질수 있을지…. 그러려면 한참을 더 부대끼고 더 싸우고 또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 망양정
망양정 솔숲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天根(천근)을 못내 보와 望洋亭(망양정)의 오른 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무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銀山(은산)을 것거 내여 六合(육합)의 나리난 닷
五月 長天(오월장천)의 白雪(백설)은 므사 일고.
정철 / 관동별곡 中


숙종이 겸재 정선이 그린 관동팔곡 화첩 중 망양정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내린 것으로 유명한 망양정은 원래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있었다.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망양정이 오래되고 낡았다고 해서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기고 그 후 1858년(철종 9년)에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현 위치로 옮겼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정철의 관동별곡이나 숙종이 '관동제일루'라 칭한 망월루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곳 또한 높은 곳에서 바다를 아우르는 특유한 모습이 있는데 바로 파도소리 같은 솔숲소리였다.

▲ 바닷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들꽃이지만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람 부는 망양정을 오르려다 보니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애절하게 들린다. 이 애절한 파도소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솔숲에 부는 바람소리였는데 듣기만 하면 영낙없는 파도소리로 오인할 만큼 비슷했다.

비록 정철의 관동별곡 속 망양정이 이 곳이 아니라 해도 파도소리를 닮은 솔숲의 바람소리와 함께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정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정도로 광활했다. 문득 고래를 볼 수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오라는 고래는 보이지 않고 간간이 물고기를 낚는 고깃배만 보일 뿐이다.

솔숲의 바람소리를 파도소리로 착각하여 배를 타고 나가는 상상에 빠졌다가 상상에서 깨어나 보니 벌써 정오, 또 다른 목적지인 성류굴을 향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말 디쟈 학(鶴)을 타고 구공(九空)의 올나가니, 공중옥소(空中玉簫) 소리
어제런가 그제런가. 나도 잠을 깨여 바다를 구버보니, 기픠랄 모라거니 가인들 엇디 알리.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의 아니 비쵠 대 업다.
정철/관동별곡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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