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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태
작성일 2004-05-04 (화) 22:15
ㆍ조회: 90  
울진 성류굴
산 따라 전설 따라 바다로 간 청송, 울진 여행(4)-성류굴

성장 멈춘 종유석, 역사도 멈추다

남한 최초로 공개된 석회동굴

▲ 성류굴 입구 전경 (1)
왕피천이 굽이 돌아 선유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곳에 위치한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석류굴은 1963년 5월 남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민간에게 개방된, 굴 앞의 울창한 측백나무와 함께 사계절 관광객이 맞이하는 대표적인 천연 석회암 동굴이다.

총길이 472m에 왕피천과 통하는 12개의 광장과 5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임진왜란 때 불상을 피신시켰다는 데 유래되어 선유굴에서 '성류굴(聖留窟)'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신라 제31대 왕인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와 관련한 또다른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삼국유사> '명주(溟州) 오대산 보질도 태자전기'편에 나온 이야기의 개요는 이렇다.

"신문왕은 슬하에 보천과 효명 두 아들을 두었다. 어느날 이 두 아들은 속세를 벗어나고자 오대산으로 들어가 여러 부처의 진신을 참배하고 각각 암자를 지어 수도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신령스런 샘물을 길어 1만 문수보살에게 차 공양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왕의 동생이 왕권을 다투다 쫒겨나자 신하들은 오대산으로 찾아와 보천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하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울며 왕위를 거절하므로, 대신 효명태자를 왕으로 옹립했는데 이가 바로 성덕왕이다.

한편 왕위를 거절한 보천태자는 신령스런 샘물(우통수)을 매일 마시다 보니 어느날 육신이 공중을 떴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도를 닦기 위해 도착한 곳이 바로 예전에 장천굴로 불리웠던 성류굴이었다.

장천굴신과 보천태자

▲ 성류굴 입구 (2)
이 때 굴 안에 있던 장천굴신은 보천태자가 수구다라니를 암송하는 것을 듣고 감격하여 보살계를 받아 불교에 귀의했다. 장천굴신이 보살계를 받은 다음날 굴은 형적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장천굴신이 불교에 귀의한 후 성류사가 세워졌으며, 성류사라는 명칭도 보천태자가 이곳에 머물러 수도한 사실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성류굴 개발 당시 굴 입구에 면적 5~6평 가량의 공터가 발견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와 조각들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따라서 성류굴 입구 부근에 성류사로 보이는 암자가 세워져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


<삼국유사>에 나오는 울진국 장천굴은 한국이 아닌 중국 지명으로 보는 이도 있다. 보천태자가 득도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지장왕보살이 되었다는 이도 있지만, 당시 울진의 토착 세력에 불교를 전래하려 한 신라 왕실의 행보가 엿보이는 성류굴 전설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보천태자의 흔적을 따라 동굴 속을 들어갔다. 이곳 연무동 석실에서는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 휘하의 왜군이 침범했을 때 이곳으로 피난 온 이지역 주민과 의병 500명이 왜군과 싸우기 위해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석실을 지나니 오작교가 어서 오라며 객을 맞이한다.

반짝 반짝 빛나는 종유석의 추억

▲ 미륵동의 미륵불, 그 옆의 전화기가 이채롭다.
오작교 주위의 은하천은 원래 왕피천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피천의 물이 마르면 이곳의 물도 마르고 밖에서 비가 오면 이곳의 물도 불어났다. 요즘 가물어서인지 은하천의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하천을 지나 미륵동을 거치면 제4광장 탑실이 나온다.

다른 석회암 동굴과 비교했을 때 종유석의 규모나 아기자기함에서 다양함을 자랑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의 흔적으로 생긴 독성 때문에 종유석 변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개방된 지 얼마 안된 영월의 고씨동굴 안에 들어간 적이 었었다. 그 때 물이 뚝뚝 흐르면서 반짝 반짝 투명하게 빛이 살아있던 종유석이 나의 뇌리에 강하게 기억되어 있다.

그 후 단양의 고수동굴과 같은 석회암 동굴에 들어갔을 때 말라서 돌이 되어 버린 종유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했다. 마르다 못해 검은 때가 밴 성류굴의 종유석들의 상태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모든 게 나를 포함한 못된 인간들이 알게 모르게 내뿜은 이산화탄소 때문이리라.

이럭저럭 제4광장 탑실을 지나 제5광장에 이르면 '용신지'라는 연못이 나온다. 보천태자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 못 안에 살고있는 용을 타고 건넜다고 하는 곳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신 온 주민을 왜군이 감금해, 주민 모두가 굶어 죽은 끔찍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실제로 목숨을 잃은 인골이 화석으로 변해서 군데군데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 성류굴 내부도
ⓒ2004 울진군

성장이 멈춘 나이테

불귀에 죽은 넋을 위로하며 제6광장 지옥동의 지옥다리에 당도했다. 전설에 의하면 보천태자가 이 다리를 건너 마지막 광장까지 가서 불도를 닦고 돌아왔다고 한다. 인간 세상에서 죄 지은 사람은 죄를 다 사한 후 건너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모습의 종유석과 석순군이 배치되어있다. 제7광장 만불상에서부터 제10광장 여의동을 지나니, 제11광장과 12광장은 동굴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 표시가 보인다. 아쉽다기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 나가려다 보니 자꾸만 10광장에서 본 나이테 석순이 떠올랐다. 더이상 늘어나지 않는 나이테, 나이테의 수도 커지고 동굴도 계속 자라나야 할 텐데. 그 멈춰져 있는 나이테는 성장이 멈춘 채 고사되고 있는 동굴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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